“이번엔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어서.”
그 말 이후로 민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침 햇빛은 여전히 밝은데 이상하게 방 안 공기만 무겁게 가라앉았다.

전원우는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민규는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진짜 힘든 얘기 꺼낼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민규가 낮게 물었다.
“…무슨 뜻인데.”
전원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불안했다.
한참 뒤 전원우가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아버지 쓰러지셨어.”
민규 눈이 천천히 흔들렸다.
“얼마 전에.”
“많이 안 좋아?”
“응.”
짧은 대답이었다.
근데 그 한마디 안에 너무 많은 게 담겨 있어서 민규는 괜히 숨이 막혔다.
전원우 아버지는 예전부터 엄했다. 아니, 엄한 수준이 아니었다.
늘 전원우를 망가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공부도, 진로도, 살아가는 방식도 전부 통제하려 했다.
민규는 고등학생 때 그런 전원우를 옆에서 지켜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티다가 혼자 무너지는 사람.
전원우는 벽에 기대어 작게 웃었다.
“웃기지.”
“뭐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연락 오니까 또 바로 오게 되더라.”
민규는 아무 말 없이 전원우를 바라봤다.
전원우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근데 한국 오자마자 네 생각났어.”
“….”
“솔직히 무서웠거든.”
민규 숨이 조용히 멈췄다.
전원우가 무섭다고 말하는 건 처음 들었다.
“아버지 일 정리하고 나면 진짜 너랑 완전히 끝날 것 같아서.”
민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상하게 자꾸 눈 앞이 흐려졌다.
전원우는 그런 민규를 보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서 보고 싶었어.”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근데 그게 더 아팠다.
민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너는 진짜 비겁하다.”
전원우 눈이 느리게 흔들렸다.
“맨날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어떻게 밀어내냐고.”
민규 목 끝이 뜨겁게 잠겼다.
“나 너 아직도 좋아해.”
결국 말해버렸다.
숨겨봤자 의미가 없었다. 비 오는 새벽에 뛰쳐나간 순간부터 이미 다 들킨 마음이었다.
민규는 눈을 피한 채 웃었다.
“근데 진짜 싫었어. 너 혼자 떠난 것도, 이제 와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나타난 것도.”
전원우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근데 더 싫은 건… 그래도 너 보면 아직 좋다는 거야.”
순간 전원우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처음이었다.
늘 차분하고 느긋하던 사람이 그렇게 흔들리는 얼굴을 하는 건.
전원우는 천천히 손을 뻗어 민규 손을 잡았다.
이번엔 민규도 피하지 않았다.
손끝이 맞닿자마자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웃음이 날 정도였다.
전원우가 아주 낮게 말했다.
“나 이번엔 진짜 안 놓쳐.”
민규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사라지면 죽여버릴 거야.”
전원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눈까지 휘어질 만큼.

민규는 그 웃는 얼굴 보다가 괜히 울컥했다.
진짜 오래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전원우는 민규 손을 꼭 잡은 채 이마를 천천히 맞댔다.
가까워진 숨결 때문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안 가.”
“….”
“비 와도.”
민규는 결국 웃어버렸다.
창밖에서는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이번 장마는 하나도 우울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