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t Count》

《Silent Count》1화

서머나 가문은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귀족 가문이었다.

넓은 영지와 광산, 수많은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대대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이토록 부유한 가문에도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전통이 하나 있었다.


가문의 자녀는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에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


정해진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 자녀는 오래된 계약에 따라 다른 귀족 가문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그 상대는 언제나 같았다.


미루즈 가문.


미루즈 가문 역시 오래된 귀족 가문이었지만, 그 평판은 서머나 가문과 정반대였다.


하인들을 함부로 대하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귀족들을 협박했으며, 가문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들을 마법으로 침묵시킨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특히 미루즈 가문으로 시집간 사람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느 겨울날.


서머나 가문의 장녀, 은비에게 미루즈 가문의 혼인 요구서가 도착했다.


"은비."


서머나 백작의 집무실.


백작은 무거운 표정으로 책상 위의 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루즈 가문에서 혼인을 요구해 왔다."


은비는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상대는…… 미루즈 가문의 장남인가요?"


"그래."


은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거절할 수는 없나요?"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오래된 계약이 있다."


그때 집무실 문이 열렸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은호였다.


서머나 가문의 차남이자 은비의 남동생.


은호는 두 사람의 굳은 표정을 보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누나, 무슨 일이야?"


은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백작이 결국 편지를 건넸다.


은호는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은비를 바라보았다.


은비는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은호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갈게요."


은비가 고개를 들었다.


"……뭐?"


"제가 미루즈 가문으로 가겠습니다."


"안 돼."


은비가 곧바로 말했다.


"은호,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은호는 은비에게 작게 웃어 보였다.


"누나가 가는 것보다는 내가 가는 게 낫잖아."


"하지만 너는 내 동생이야."


"그러니까 가는 거야."


은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호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백작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검은 마차가 서머나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미루즈 가문의 둘째 영애, 베리였다.


베리는 차가운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은호 서머나?"


"네."


"그럼 출발하기 전에 하나 해야 할 일이 있어."


베리가 손을 들었다.


은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순간.


보랏빛 마력이 폭발했다.


"……!"


은호의 목에서 목소리가 사라졌다.


동시에 무언가가 목을 감싸는 감각이 느껴졌다.


리온은 본능적으로 목을 만졌다.


그곳에는 붉은 끈 하나가 묶여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목을 감싸고 있었다.


은호는 당황한 채 끈을 잡아당겼다.


풀리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


숨이 턱 막혔다.


공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은호는 눈을 크게 뜨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다시 숨을 들이쉬려 했지만 이번에도 충분한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은호는 한 손으로 목을 감싼 붉은 끈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가슴을 짚었다.


베리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침묵 마법이야."


은호는 베리를 바라보았다.


베리가 붉은 끈을 가리켰다.


"그 끈이 저주의 표식이야."


은호는 힘겹게 숨을 고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말을 하려고 하면 호흡이 막혀."


베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억지로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 마."


은호는 다시 말을 시도하려다가 멈췄다.


아직도 가슴이 답답했다.


조금씩 호흡을 가라앉히자 그제야 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베리가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은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이 마법은 풀리지 않아."


은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직접 풀어주기 전까지는."


은호는 자신의 목에 묶인 붉은 끈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완전히 베리의 마법에 묶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루즈 저택.


은호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문이 닫혔다.


찰칵.


잠금장치가 걸렸다.


은호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자신의 목에 선명한 붉은 끈이 묶여 있었다.


그는 끈을 잡아당겨 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말을 하려고 하자—


"……!"


다시 숨이 막혔다.


은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숨을 들이쉬려 했지만 가슴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책상에 손을 짚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몇 번 천천히 호흡하고 나서야 조금 편해졌다.


은호는 붉은 끈을 바라보았다.


'말하면 안 돼.'


그날부터 은호는 침묵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며칠이 지났다.


어느 밤.


은호는 벽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톡.


톡.


톡.


그가 벽을 두드렸다.


톡.


잠시 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새로 온 사람이야?"


은호는 대답하지 못하고 벽을 두드렸다.


톡.


"말 못 하지?"


톡.


"나도 그랬어."


벽 너머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기에는 너처럼 목에 빨간 끈이 묶인 사람들이 많아."


은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미루즈 가문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침묵 마법을 걸어."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벽 너머의 목소리가 급히 사라졌다.


문이 열렸다.


베리였다.


"누구와 이야기했어?"


은호는 고개를 저었다.


베리는 그의 목에 묶인 붉은 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 끈이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마."


문이 닫혔다.




며칠 뒤.


은호는 저택을 돌아다니다 지하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음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내려가봤다.


그곳에는 수많은 서류가 쌓여 있었다.


은호는 문서를 하나씩 살폈다.


그러다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서머나


은호는 문서를 읽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서머나 가문과 미루즈 가문 사이의 혼인 계약은 이미 오래전에 종료된 상태였다.


하지만 미루즈 가문은 계약서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된 빚을 핑계로 서머나 가문의 자녀들을 계속 데려오고 있었다.


은호의 손이 떨렸다.


'누나도 이런 일을 당할 뻔했어.'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네."


은호가 돌아섰다.


베리였다.


은호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베리는 조용히 말했다.


"나도 이 가문을 끝내고 싶어."


은호가 손짓으로 물었다.


'그럼 왜 나한테 침묵 마법을 걸었어?'


베리는 붉은 끈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내가 직접 걸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았어."


은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베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 마법을 풀 수 있는 것도 나뿐이야."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미루즈 가문의 거짓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며칠 후.


미루즈 가문의 대규모 연회가 열렸다.


수많은 귀족들이 모였다.


미루즈 가문의 당주는 은호를 사람들 앞에 세웠다.


"서머나 가문의 차남입니다."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목에 빨간 끈이 있네."


"침묵 마법을 걸었나 봐."


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보십시오."


"이제 서머나 가문은 우리 가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베리가 앞으로 나왔다.


"아버지."


당주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베리는 서류를 펼쳤다.


"이 계약서는 위조됐습니다."


연회장이 술렁였다.


베리는 조작된 계약서와 다른 증거들을 차례로 공개했다.


귀족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건……."


"계약서가 조작됐어."


"우리 가문도 피해를 입었잖아!"


당주가 소리쳤다.


"베리! 그만둬!"


하지만 베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그만할 거예요."


그리고 은호를 바라보았다.


은호는 자신의 목에 묶인 붉은 끈을 만졌다.


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


베리가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풀어줄게."


베리가 손을 뻗었다.


붉은 끈이 희미하게 빛났다.


베리가 주문을 외우자 끈이 서서히 느슨해졌다.


그리고—


툭.


붉은 끈이 은호의 목에서 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끈은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은호가 눈을 크게 떴다.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런 막힘도 없었다.


한 번 더 깊게 숨을 쉬었다.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은호는 자신의 목을 만졌다.


붉은 끈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베리."


목소리가 나왔다.


베리가 미소 지었다.


"응."


은호는 한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하듯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고마워."


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네 목소리는 네 거야."


은호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저는 은호 서머나입니다."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누나를 대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은호는 조작된 계약서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곳에서 알게 됐습니다."


"미루즈 가문의 혼인 계약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그의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이제 이 거짓을 끝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루즈 가문의 악행은 왕실에 알려졌다.


조작된 계약서와 불법적인 침묵 마법에 대한 증거가 모두 공개되었다.


미루즈 가문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머나 가문의 오래된 강제 혼인 전통도 폐지되었다.


은호는 마침내 서머나 저택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는 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은호!"


은호는 웃으며 은비에게 다가갔다.


"누나!"


은비는 동생의 목을 바라보았다.


붉은 끈은 없었다.


"정말…… 없어졌구나."


"응."


은호가 웃었다.


"베리가 직접 풀어 줬어."


은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은호는 은비를 바라보았다.


"누나가 그곳에 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은비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은호야."


은호는 미소 지었다.


"별거 아니야."




그날 밤.


은호는 자신의 방 창가에 서 있었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런 막힘도 없었다.


목을 만져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끈도.


침묵의 저주도.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정말 자유네."


자신의 목소리였다.


누구에게 빼앗기지도 않았고,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은호는 미소 지었다.


한때 그의 목을 묶었던 붉은 끈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그 끈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은비를 지키기 위해 감당했던 희생의 흔적이었으니까.


그리고 훗날 사람들은 은호를 이렇게 불렀다.


침묵을 깨뜨린 백작.


은호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미소 지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은 날.


동시에 오래된 거짓의 침묵까지 깨뜨렸으니까.

Truyện phổ biến với fan của Eun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