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연(氷煙)의 성채

2화: 성소

변방 지대의 살을 찢는 듯한 혹독한 서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온기가 대신 채우며 나를 깊은 의식 속에서 고요히 깨워냈다. 나는 말도 안 되게 폭신한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다. 은은한 소나무와 삼나무 향이 기분 좋게 배어 있는 두꺼운 벨벳 이불 무덤 밑에 포근하게 파묻힌 상태였다.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침대 머리맡 쪽에서 들려오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들이 흐릿한 의식 틈새로 가만히 스며들었다.

"진짜라니까.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영지 출신도 아니야."
다급한 목소리가 숨이 죽은 채 빠른 속삭임이 되어 흘러나왔다. 안에는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 같은 에너지가 한껏 실려 있었다.

"옷을 짠 직조 방식부터가 완벽하게 달라. 만약 정말 위험한 시공간 균열을 뚫고 떨어진 거라면 어쩌지? 주방에 말해서 기력을 회복시켜 줄 약탕이라도 좀 끓여오라고 할까? 형, 말 좀 해봐!"

"숨 좀 쉬어라."

두 번째 목소리가 가볍게 웃음기 어린 한숨과 함께 낮고 부드럽게 감겨들며 말을 가로막았다.

"왕실 치유사가 이미 열은 완벽하게 내렸다고 했잖니. 그저 정적이 필요한 것뿐이야."

나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눈을 깜빡였다. 거대한 석조 벽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불꽃이 웅장한 석조 방의 높고 아치형으로 솟은 천장 위를 아름답게 수놓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불이 들썩이는 작은 움직임에, 방 안은 순식간에 완벽한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완벽하게 낯선 세 쌍의 시선이 단숨에 내가 누워 있는 방향을 향해 꽂히듯 돌아갔다.

가죽 코트를 입은 첫 번째 젊은 남자가 거의 침대 가장자리로 날아들듯 다급하게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는 즉각적이고도 극도로 집중된 걱정으로 크게 치켜떠져 있었다. 불꽃의 선명한 오렌지빛 불빛이 그의 오른쪽 귀에 착용된 청각 보조 장치와 왼쪽 귀의 인공 와우 장치 위로 반사되어 날카롭게 번쩍였다.

"정신이 들어요?"

그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내 눈높이에 맞춰 매트리스 바로 곁의 바닥 위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팔뚝은 침대의 나무 프레임을 단단히 딛고 있었다.

"저기, 몸은 좀 어때요? 아직도 추워요?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요? 너무 빨리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지는 마요.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나한테 다 말해줘요—"

"저기,"

내가 나직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추위 탓에 목소리는 갈라져 거칠었지만, 그의 팔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내 입술 끝에는 작은 미소가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

"진정해.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야."

젊은 남자는 그 자리에서 단숨에 얼어붙듯 굳어버렸다.
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지극히 편안하고 격식 없는 말투가 그의 뇌리에 완벽하게 인식되는 그 순간, 그의 입술 끝에서 끝없이 쏟아지던 질문의 파도가 거짓말처럼 툭 끊어졌다. 그의 두뇌가 완벽하게 단락을 일으키며 작동을 멈춘 모양이었다. 이 왕국에서는 신분이 높은 귀족을 대할 때는 물론이고,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엄격하게 짜인 존댓말과 딱딱한 격식만이 절대적인 규칙이었기 때문이었다. 생판 처음 보는 이방인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모든 격식을 단숨에 내려놓고 말을 걸어오자, 그는 완벽하게 허를 찔려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였다. 순간 그의 뺨 위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홍조가 폭포수처럼 번져 나갔고, 그는 어색하게 뒷목을 긁적이며 숨 가쁜 부끄러운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귀 끝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진짜로……."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다른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툴툴거리듯 아련하고 달콤한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금 막 깨어났으면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사람을 이렇게 무방비하게 흔들어 놓다니."

침대 반대편에서, 두 번째 젊은 남자가 소리 없이 가만히 발걸음을 옮겨왔다. 그는 방안의 고요한 분위기에 온전히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청각 보조 장치를 조절해 둔 상태였고, 덕분에 벽로에서 타오르는 장작의 탁탁거리는 소음조차 깨끗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내가 완전히 깨어난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그의 얼굴 가득 눈부시고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 미소 하나만으로 차가운 석조 방 전체가 수십 배는 더 포근하게 체감될 정도였다.

"거 봐라. 저 녀석은 이 방안에 한바탕 폭풍을 몰고 오지 않고도 손님을 다정하게 환영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잖니."

세 번째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놀리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도자기 머그잔을 손에 든 채 벽로 쪽에서 걸어왔다.

하얀 튜닉 차림의 이 남자는 사령관의 위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하고 헐렁한 옷이었음에도 그의 넓은 어깨를 훨씬 더 다부지게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고, 정교하게 제작된 두 개의 은색 인공 와우 장치가 불꽃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내 베개 곁의 텅 빈 공간 위로 가만히 걸터앉았다. 나를 압도하던 그의 단호하고 명령조의 분위기는, 내 시선이 그에게 닿는 바로 그 자찰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완전히 증발해 버렸고 그 자리를 눈이 멀 정도로 환한 태양 같은 미소가 대신 채웠다.

그는 내가 도움이 필요한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그는 커다랗고 따스한 한 손을 내 허리 뒤편으로 매끄럽게 밀어 넣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는 단단한 강인함으로 내 등을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그리고 내가 푹신한 베개 위로 편안하게 기댈 수 있도록 몸바탕을 부드럽게 인도해 주었다. 그는 내게로 따스한 머그잔을 내밀었고, 그의 손가락 끝이 내 손가락에 가만히 스치며 지나갔다.

"천천히 마시거라."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한순간 깊고 달콤하게 가라앉으며 가슴속을 위험할 정도로 거차게 뒤흔들었다. 그가 안심시키듯 다정한 시선을 건넸다.

"우리를 마치 오래된 고향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걸 보니, 우리도 이만 소개를 해야겠구나. 나는 이 성채의 최고 사령관, 이찬연이다."

그가 바닥에 앉아 안절부절못하던 남자를 향해 따스한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조잘조잘 쉬지 않고 떠들던 녀석은 박현진이야."

현진은 팔짱을 낀 채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이내 얼굴 가득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찬연은 시선을 아래로 돌려, 여전히 내 손을 소중하게 맞잡고 있는 더 어린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조용한 친구는 김지석이란다."

지석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내 손을 부드럽고 완고하게 꼭 쥐어 오며 흔들림 없는 다정한 다독임을 건넸다.

찬연이 내게로 조금 더 가까이 상체를 가만히 숙였고, 그의 엄지손가락은 내 어깨 위로 덮인 이불의 가장자리를 따라 느릿하게 선을 그렸다.

"서리 속에서 발견되었을 때는 정말 대원들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단다. 하지만 이제 이 성벽 안에서는 안전하니 아무 걱정 말거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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