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10화 - 만나자고, 나랑

[ 집 도착했어? ]

[ 자냐 ]

[ 아니면 씹는 거야? ]

 

침대에 누운 채로 연달아 오는 진동에 알림만 확인했다. 구태여 톡을 열지는 않았다. 답장을 보내는 건 어렵지 않다. 잘 도착했다고 한마디 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면 이상원은 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다음에는 뭘 할지 물어보겠지.

 

그럼에도 이렇게 답장 하나를 고민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소문과. 낮에 들었던 말. 이상원을 따라다니는 소문.

 

이번에는 얼마나 가냐.

 

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늘 들었던 말이다. 여태까지와 비슷하게, 다른 남자였다면 별로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가든, 누가 먼저 질리든 그때 끝내면 됐다. 원래 늘 그렇게 만났으니까.

 

 

“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 마음이 이때까지와는 다른 게 느껴졌다. 재미로 시작한 관계가 정말 재미로 끝날까 봐. 이상원이 나보다 먼저 흥미를 잃을까 봐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더 싫었다.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고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

 

 

 

이상원에게서는 다음 날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먼저 씹은 건 나인데, 막상 조용하니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게 됐다. 화면을 켰다가 새로운 알림이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끄길 반복한다. 이상원이 일하는 RESET에도 가지 않았다. 친구가 술을 마시자며 연락했지만 피곤하다는 핑계로 회피하기 바빴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이 정도면 이상원도 내 뜻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더이상 연락이 오지 않기도 했고. 먼저 달라붙는 성격도 아니고, 여자 하나가 연락을 씹었다고 아쉬워할 놈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싱숭생숭했다. 나 진짜 없어보인다.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수업을 마치고 본관을 나왔다. 내일은 이상원을 마주치는 교양 수업이 있는데. 어떡하지. 하는 찰나의 생각을 하며 정문으로 가는 길을 걷던 순간이었다. 커다란 가로수 옆, 건물의 하얀 벽에 기대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상원이었다.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휴대폰을 보고 있던 상원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벽에서 등을 뗀다. 못 본 척 방향을 틀려는데 상원이 먼저 앞을 막았다.

 

 

“뭐야.”

“너 기다렸는데.”

“날 왜.”

“왜 연락 안 받아?”

“바빴어.”

“사흘 내내?”

“응.”

“거짓말.”

 

 

상원의 옆을 지나가려는데 손목이 붙잡혔다. 세게 잡은 건 아니었다. 뿌리치면 쉽게 놓일 것 같았지만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놔.”

“싫어.”

“사람들 보잖아.”

“보라고 해.”

 

 

주변을 오가는 학생들이 한 번씩 우리를 쳐다봤다. 또 쟤네야? 하는 시선이 박힌다. 상원은 신경도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손목을 놓고 내 앞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나 버린 거야?”

“우리가 뭐였다고 버려.”

“아무 사이도 아냐? 키스를 두 번이나 했는데.”

“야……!”

 

 

상원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고, 그걸 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대놓고 이쪽을 돌아봤다. 황급히 양손으로 상원의 입을 막았다. 손바닥에 입술이 닿았다. 상원은 눈만 내린 채 나를 쳐다봤다.

 

 

“조용히 해, 미쳤어?”

 

 

손바닥 아래에서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상원은 잠시간 얌전히 있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 손목을 양쪽에서 잡아 천천히 떼어냈다. 시선이 잠깐 아래로 향했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럼 만나.”

“뭐?”

“만나자고, 나랑.”

“…….”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이 미친놈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상원을 보고 있으면 꼭 둘만 남은 것처럼 다른 모든 게 흐려졌다.

정작 신경 쓰이는 건 다른 것이었다. 늘 남들의 안 좋은 시선만 받아온 내가 이상원에게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 역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여자 중 하나가 될지. 입술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상원이 내 얼굴을 살폈다.

 

 

“뭐 신경 쓰이는거라도 있는거야?”

 

 

내 마음을 읽은건지, 네가 먼저 물어왔다. 결국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사흘동안 엉켜버린 속을 결국 장본인 앞에서 풀어내다니. 나답지 않다.

 

 

“…네 친구 말이 맞을 수도 있잖아.”

“뭐?”

“이번에는 얼마나 가냐고.”

 

 

말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함에 두 눈을 꾹 감고, 입을 앙 다물었다. 내가 먼저 버려질까 봐 연락을 피했다는 말을 돌려서 고백한 꼴이었다. 괜히 말했나. 찰나의 순간에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짧은 웃음이 터졌다. 열받아서 삐딱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이상원이 환하게 웃고있었다.

 

 

“웃어?”

“아니.”

“웃었잖아.”

“그런 거였나 싶어서.”

 

 

아까까지 무섭게 굳어 있던 이상원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상원은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못 믿겠으면 직접 봐.”

“뭘.”

“얼마나 가는지.”

 

 

정말 소문처럼 금방 질리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싫증을 낼지. 삼킨 뒷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려 근사하게 웃으며, 잠시 말이 없던 상원이 입을 열었다.

 

 

“말해두는데.”

“…….”

“난 사귀지도 않는 여자랑 키스해 본 적 없어.”

 

 

말문이 막혔다. 누구는…! 아무랑 키스하고 다니는 줄 아나. 이상원은 붉으락푸르락하는 내 얼굴을 재밌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자 한숨을 내쉬곤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나도 없어.”

 

 

상원은 만족한듯 웃으며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내 손등을 스치고, 곧 빈틈 사이로 들어왔다. 이내 깍지가 끼워졌다.

키스할 때도 멀쩡했던 얼굴이 뒤늦게 뜨거워졌다. 얼굴을 들지 못해 괜히 맞잡은 손만 내려다보는데, 옆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와. 먼저 키스까지 해놓고 손 하나 잡았다고 얼굴 빨개지네.”

“닥쳐.”

 

 

고개를 돌려버리자 상원의 웃음소리가 더 짙어졌다. 재수 없기는.

…그래도 손은 놓지 않았다.

 


 

Truyện phổ biến với fan của SANG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