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2) 지속되는 악몽
국과수에 공채로 들어온지 1년 남짓.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업무 자체는 자체는 평화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최근 1~2년은 나에게는 인생의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룬 시기였다. 그 요란한 사건 후 연구소가 와해되는 와중에도 교수님 밑으로 다시 들어가며 박사학위도 어떻게 마쳤고,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정국이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공채에도 1년 만에 철썩 붙었다.
그렇게 일하게 된 국과수에서 1년은 그동안의 모든 고생을 보상받는 듯한 달콤한 1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정국이와 저녁을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누고.. 주말에는 같이 나들이도 다니고..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김태형에게 납치되었을 때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악몽과 싸우며 새벽부터 자기전까지 공부만 했던 1여년간의 공시생 시절에 비하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그런데, 그래... 문제는 바로 악몽이었다.
나의 악몽을 몰아내는 온기가 옆에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악몽 자체가 사라지질 않았다. 정국이는 자다가도 내가 악몽에 시달리는 듯 식은 땀을 흘리고 있으면, 살살 나를 깨워서 달래주고는 꼬옥 안고 잤다. 정국이가 한번 달래주면 한동안은 악몽을 꾸진 않았지만, 정국이가 없는 날에는 다시 그런 꿈을 꾸진 않을지 난 무척이나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다가 그가 없는 날 정말로 악몽을 꾸고 나면, 내가 철저하게 이 순간 혼자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너무나 외롭고 서러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 깨닭은 것 같다. 홀로 이 무서운, 두려운 감정에 맞서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은 그거였다. 혼자 맞서야 한다. 그러니까.. 혼자 지내보자.
정국이는 내가 혼자서 악몽을 꾸고 힘들었다는 것을 알면 좀더 신경을 써주기도 했다.
[해주야, 잘 잤어..?]
"응... 이제 일어나려고.. ㅎㅎ"
외근을 나가있던 정국이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한번 악몽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인지 아침에 내가 일어날 무렵이면 잊지 않고 전화가 오곤 했다. 전화를 받으면 바짝 올라있던 긴장이 스르륵 사라졌다. 창 밖으로는 어둔 밤의 끝을 알리는 먼동이 트고 있었다. 그애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다가도 이렇게 전화가 오면 너무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때? 좀 진전이 있어?"
[글쎄.. 정보가 잘못된 건지 미리 알아차린 건지.. 허탕쳤어. 지난번에도 허탕이어서 한동안 현장 출동은 안할 것 같아.ㅎㅎ 정보의 출처 부터 다시 처음부터 검토하게 되겠지..]
정국은 허탈한 듯 웃었다. 최근 불법 도박 경기를 벌이는 조직이 생겼는데, 수사가 잘 진행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거야..?"
[원래 조직 하나 소탕하려면 몇 년씩 공을 들여야해.. 너도 스파이활동 1년 넘어했잖아. 우린 네가 발들이기 전부터 오랫동안 수사하고 있었다고.. 서장님이 강력계에 있을 때부터 했으니깐..]
"하긴.. 그렇네... ㅎㅎㅎ"
[오늘은 악몽 안 꿨어?]
"그냥 악몽 꿀까봐 불안해서 잘 못잤어.. 그래도 니 목소리 들으니까 좀 났다. 그럼 오늘은 들어올꺼야..?"
[응 아마 회의만 잘 끝나면 오후에 일찍 들어갈 것 같아.. ㅎㅎ 있다가 저녁 같이 먹자.. 내가 들어갈 때 장 봐서 들어갈께]
"응 알았어~"
오늘은 정국이가 들어온다고 하니 약간 안심이 되었다. 오늘은 할 일이 뭐 있더라.. 얼른 끝내고 칼퇴근해야지..! 뭔가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났다.
. . .
정국이는 훌륭한 남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책임감도 있고, 같이 지내는 것도 편안하고, 무엇보다도 나를 돌봐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걸까..?
정국이는 항상 이 상태가 영원할 것 처럼 노래했지만, 나는 모든 관계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정국이도 내 곁을 떠나게 되겠지. 그 생각만 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아이가 진심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이 생각들, 불안함은 모두 내가 문제인거 아닐까..?
정신과도 가보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잘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지금 생활은 평화롭고 좋은데 악몽은 왜 꾸게 되는 걸까..?
그 지긋지긋한 끈적한 시선을 계속 느낀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비참했다.
. . .
그래서 교도소에 면회를 갔다. 김태형을 만나러..
나의 악몽을 지속시키는, 나를 두렵게 만드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은 별 거 아니었다고.. 그런 것을 확인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정국이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말릴 것이 뻔했으니까... 정국이는 내 악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상담을 갈 때도 가끔 같이 갔었다.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던 그는 나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말릴 것이 더욱더 뻔했다.
막상 교도소에 가보니 생각보다 삭막한 분위기에 나는 약간 위축되었다. 면회실도 그닥 따듯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긴, 교도소가 따듯한 건 좀 이상하려나... 그래도 이 곳에는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같은 사람들이 서로 눈물의 면회를 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차갑고 딱딱한 배려 없는 곳이었다. 면회실 문을 들어가는데 마치 커다란 괴물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감에 침이 절로 삼켜졌다.
면회실에 들어가자 김태형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우아하게 머리를 넘기고 질 좋은 슈트를 입은 모습이 아닌 죄수복에 헝크러진 머리에 수염이 삐죽삐죽한 그의 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빛 만큼은 이글거리는 것 같아서 그의 모습은 섬뜩해보였다. 접이식 철제의자에 앉자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면회장을 울렸다.
막상 마주 앉자 나는 그의 눈빛에 위축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주 하고 나니 별 거가 아니기는...나에게는 별 거였다. 내가 한참 말이 없자 김태형이 먼저 입을 뗴었다.
"그래서.. 우리 해단이형 딸은 왜왔을 까...?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닐테고..."
하.. 우리.. 감히, 우리 해단이 형이라니..나는 기가 막혔다.
"...자꾸 우리 해단이형이라고 하지 마, 너는 그렇게 부를 자격이 없어."
내가 쏘아붙이자 김태형은 얕게 탄식했다.
"뭐.. 법정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거기에 배고픈 짐승들을 풀어뒀을 뿐이야. 자격이라니, 원래 나랑 해단이 형은 엄청 절친한 사이였다고... "
김태형은 어께를 으쓱하며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괜히 더 열이 받았다. 이 대목은 법정이 길어지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직접 살인을 저질렀는가 아닌가.. 일부러 김태형의 변호인은 실수로 거기에 배고픈 동물들을 풀어놨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감형을 위한 거였겠지... 지긋지긋한 놈들...
"아이씨!! 어쩃든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말라고..!"
내가 소리를 뺵 지르자 김태형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왠지 더 열이 받았다.
면회자, 정숙하십시오. 뒤에 있던 교도관은 내가 지른 소리에 놀란 듯 우리 쪽을 쳐다보며 주의를 주었다.
"워워.. 그래그래.. 뭐, 알았어.. 안하면 되잖아.. 그치? 그래서, 해주야, 너는 나를 왜 찾아왔을까...? 어렸을 때 날 알던 기억으로 오진 않았을테고.."
나를 살짝 어르고 달랜 김태형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
"오호라, 그래그래.. 너, 내가 여기에 잘 있나 확인하러 온거구나..?"
김태형의 말에 나는 순간 눈빛이 멈짓했다. 그러자 김태형은 내 표정에 포인트를 잡은 냥 갑자기 화색을 띄웠다.
"캬~ 그래, 내가 이 꼬라지로 있는 거 보러왔구만?
이 꼴을 보면 우리 해주가 집에가서 두다리 쭉 뻣고 잘 수 있나...? 아, 내가 부모님 복수에 성공했구나... 그제? 평생 숙원을 풀었다 아이가? 이런 건가?
뭘 굳이 두 눈으로 확인했어야 할까..? 법정에서 형받고 나가는 나를 똑똑히 봤을 텐데...."
김태형은 내가 흥미로운 듯 턱을 쓰다듬었다. 책상 아래로 안보이게 감춘 나의 두 손은 저절로 힘이 들어가서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 형사놈이 지금은 안 지켜주나? 그래서 막 걱정되드나? 내가 여기에 없을 까봐... 그래서 안심할라꼬 예까지 왔드나?"
김태형은 특유의 고향 말씨를 툭툭 내뱉으며 내 표정을 관찰했다. 아 씨발... 욕을 읍조렸지만, 사실 나는 불안했다.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느껴지는 불안을 들킬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기 온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나보다...
"니는 내한테서 못 벗어난다.
아마 평생 날 원망하며 살것지. 난 니가 그랬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제 남은 인생, 여기서 조용히 사라질 인생인데, 기억에라도 남을 수 있으면 그걸로 나는 목표를 이뤘다..ㅎㅎㅎㅎ "
김태형이 비소섞인 말들을 내뱉자, 뒤에 있던 교도관이 주의를 주었다.
"951230죄수, 말 주의하십시오..!"
"아아, 그만 하이소, 알았다 아입니까..?"
김태형은 귀를 후비적거리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나는 갑자기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갈께, 아저씨가 어떻게 생각하던 상관 없어. 맘대로 생각해."
나는 드륵, 철제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김태형은 내가 일어나자 살짝 아쉬운 듯 송충이같은 눈썹이 쓰윽 올라갔다.
"흐흐흐... 해주야, 니는 여기 다시 올끼다. 그때 또 보자꾸나... 오늘은 이만 잘 들어가고..."
내가 나가는데도 김태형은 끝까지 여유를 부리며 웃었다. 재수없는 새끼.. 욕을 읇조린 나는 그런 김태형을 한번더 쳐다보고는 바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