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대신 지켜드립니다

최종화 - 죽이지 않는 킬러

철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고모부의 고함이 뚝 끊겼다. 어둠에 잠겨 있던 통로 너머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하고 느긋한 구두 소리 사이로 군화가 바닥을 긁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먼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백발이 섞인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값비싸 보이는 구두가 축축한 바닥을 밟았다. 구두 앞코에 천장의 희미한 전등 빛이 번들거린다. 남자는 창고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고모부 앞에 멈춰 섰다.

 

 

“회장님.”

 

 

고모부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말씀하신 대로 전부 데려왔습니다. 저 여자도, 배신자도요. 그러니까 이제 이것 좀 풀어주십시오.”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모부의 비뚤어진 안경을 내려다보다 옆에 선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건넸다.

찰칵.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고모부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덜덜 떨리는 입이 열리기도 전, 회장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제 자네가 할 일은 없네. 시끄럽군….”

 

 

탕ㅡ, 이윽고 총성이 창고 안에서 울려퍼졌다. 고모부의 몸이 의자와 함께 옆으로 넘어갔다. 뒤늦게 깨어난 고모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바닥으로 몸이 고꾸라졌다. 기절한 모양이었다. 바닥으로 번진 피가 얕게 고여 있던 물과 섞인다. 나도 내 앞에서 사람이 죽는 광경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감히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더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시야에선 회장의 허리춤까지만 보였다. 회장은 총을 든 손을 가볍게 털었다.

 

 

“언제까지 자는 척 할 생각이지.”

 

 

여유로운 저음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회장이라 불리는 남자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이윽고 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냄새는, 담배보다 더 독한 냄새. 시가의 냄새였다. 회장은 제 부하에게 총을 맡기곤 시가를 태우기 시작했다.

 

나의 왼쪽, 움푹 들어간 벽쪽의 바닥에 쓰러져있는 우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열리고, 우진이 벽을 짚고 일어났다. 굳은 피가 검은 머리카락과 엉겨서 이마에 달라붙었다.

 

회장 주변의 남자들이 일제히 총을 들었다. 여러 개의 총구가 우진을 향했지만, 우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역시 멀쩡했군.”

“머리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멀쩡해 보이나.”

“입을 놀리는 걸 보니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야.”

 

 

회장은 시가레터를 제 옆 남자의 손에 비벼 껐다. 경악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지러운 시가 냄새와 피 비린내를 맡으며 나도 간신히 정신을 붙들어매고 있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첫 만남에 죽이지 않은걸 보면 분명, 살아나갈 구석은 있을거다.

 

 

남자 하나가 작은 테이블을 끌어와 창고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은빛 2G폰이 놓여 있었다. 내 주머니에 있던 것을 가져간 모양이었다. 회장이 휴대전화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더군.”

 

 

나는 반사적으로 우진을 바라봤다. 우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풀어.”

“몰라.”

“그 놈과 꽤 가까웠다지.”

 

 

회장은 우진의 답은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 아까 잠시 맡겨두었던 총을 부하에게서 다시 받아들었다. 그리곤 저벅저벅 우진의 앞까지 다가간다.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손잡이부터 내밀었다.

 

 

“너는 쓸모가 많아.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우진은 묵묵히 그 총을 내려다보고있었다. 회장은 입은 웃고있었지만, 처음부터 날카로운 눈을 하고있었다. 언뜻 살기가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저 여자를 죽여서 충성을 증명해라. 그러면 지금까지 네가 빼돌린 놈들에 대해서는 눈감아주지.”

 

 

창고는 숨소리 하나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처음부터 말하는 사람은 저 회장 뿐이었으니 당연한걸까.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을 두드린다. 습한 공기가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가만히 총을 내려다보던 우진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차갑고 무심한 얼굴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서 마주쳤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내게 총을 겨누고, 금고의 열쇠를 내놓으라고 했던 그때처럼. 그렇지만, 묘한 믿음이 생겼다. 날 죽이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

 

우진이 회장의 손에서 총을 받아 들었다. 주변에 선 남자들의 총구가 조금씩 내려갔다. 그는 곧장 나를 겨누는 대신, 테이블로 가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작은 화면에 잠금 창이 나타났다. 우진의 손가락이 숫자 버튼 위로 움직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꾹꾹, 그렇게 몇 번이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머지않아 잠금이 풀렸음을 알리는 짧은 음이 들렸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우진을 바라봤다.

 

 

“어떻게…….”

 

 

아빠의 생일도, 내 생일도, 엄마의 생일도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숫자를 저 남자가 알고 있다. 나는 눈 앞에 닥친 두려움도 모르고 고갤 들어 우진을 쳐다봤다. 우진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살아난 날이지.”

“하지만 엄마 기일은…….”

“네가 알던 것과는 다르지.”

 

 

우진은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곤 싱긋 웃었다.

 

 

“산다면 들려주지.”

 

 

날 죽이겠다는 뜻일까. 아니, 살려주겠다는 뜻이다. 여길 빠져나가면 알려주겠다는 의미야. 일부러 중의적으로 말한 게 틀림었다.

그렇지만, 듣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빠와 엄마를 꽤 오랜 기간 못 봤을 때. 그러다 돌아왔을 땐, 아빠 혼자였다. 내가 고작 초등학생일 때. 영문도 모르고 검은 한복을 입고선, 엄마의 장례를 치렀었지. 이제야 어렸을 때 느꼈던,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다.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온 그 긴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찾아다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엄마의 기일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는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회장은 비밀번호가 풀린 핸드폰을 보며 반색했다. 역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흡족한 얼굴을 하며 다시 시가를 한 대 입에 문다.

 

 

“가져와.”

 

 

우진은 냉정한 얼굴로 회장을 쳐다보더니, 휴대전화 버튼을 몇 차례 더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회장에게 그대로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회장은 왼손으로는 시가를, 오른손으로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화면을 내려다보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영문을 모르는 채 고개를 들어 회장과 우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비밀번호를 풀어서 줬음에도 개운하지 않은 저 얼굴. 뭔가 아슬하게 흘러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이 고개를 치켜들더니 회장을 똑바로 쳐다보곤 입을 열었다.

 

 

“네가 찾던 건 없어.”

 

 

그 순간 우진의 손에 들린 총이 움직이고, 총성이 울렸다.

회장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두꺼운 쓰리피스로 된 정장임에도 그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던 회장이 무릎부터 꺾여 바닥에 쓰러졌다.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는데, 곧이어 사방에서 총성이 터졌다. 천둥처럼 터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우진과는 떨어져있었지만 총을 맞을 것 같아 온몸이 벌벌 떨렸다.

몇 발치 떨어져있던 우진은 쓰러지는 회장의 몸을 붙잡아 방패처럼 세웠다. 총알이 회장의 등에 연달아 박혔다. 우진은 몸을 낮춘 채 가장 가까운 남자의 다리를 쏘았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곧장 그의 총을 빼앗았다.

 

화약 냄새가 눅눅한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벽과 바닥에 총알이 박힐 때마다 콘크리트 가루가 사방으로 튄다.

나는 온몸으로 의자를 흔들며 손목을 비틀었다. 넘어지기라도 해야해. 아니면 빗겨나간 총알을 맞고 죽을 지 모른다. 거친 밧줄이 살을 긁었다. 움직일수록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한 번 더 힘을 실어 의자를 옆으로 기울였다. 중심을 잃은 의자가 이내 내 몸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넘어지며 어깨가 세게 부딪혔다.

 

 

“윽…….”

 

 

이를 악물고 몸을 굴렸다. 손가락 끝에 차가운 돌부리가 닿았다. 손에 잡히는 작고 가루형태의 돌들을 만지다가, 이내 날카롭고 한 손에 잡히는 돌을 집었다. 손목을 묶은 밧줄 사이로 밀어 넣어 날카로운 끝으로 밧줄을 긁었다. 끊이지않는 총성 속에서 속이 타들어갔다. 그만큼 헛나가는 돌부리에 손등이 함께 긁혀 피가 났다. 이내 손이 자유로워졌을 때, 몸을 바닥에 바짝 웅크리며 기절한 고모와 사촌에게로 다가갔다. 다행히 총격을 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안전해보였다. 정 안 되면 우릴 배신한 고모를 방패로 쓰면 그만이다.

 

한 편 우진은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가 빠르게 총을 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쓰러져갔다. 눈 앞에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모두 바닥에 엎어졌을 때,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낼 수 있었다. 쟤도 괴물이구나. 그 순간, 우진의 사각지대인 기둥 반대편에서 남자 하나가 우진을 향해 총을 겨눴다.

 

 

“우진아!”

 

 

내 목소리에 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총성이 울리고, 우진의 몸이 한쪽으로 밀렸다. 옆구리에 붉은 피가 번졌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우진은 곧바로 몸을 돌려 남자를 쏘았다. 마지막 남자가 바닥에 쓰러지자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총격 소리로 예민해진 귀 안쪽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화약 연기 사이로 깜박이는 전등만 희미하게 보였다. 우진은 쓰러진 회장 앞으로 다가갔다. 옆구리를 누른 손가락 사이로 피가 계속 흘렀다. 이마엔 땀이 한가득 들러붙어있었다.

 

회장은 끈질기게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징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보스를 하는걸까. 역겨운 피가 섞인 숨을 몰아쉬며 우진을 올려다보며 입을 연다.

 

 

“너는…바깥에선 못 살아.”

 

 

우진은 잠시 회장을 내려다봤다. 회장은 눈도 감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것 같았다. 우진은 그의 말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낀건지, 아니면 생각이 많아진건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변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나름의 위로이고 고맙단 표시였다.

 

 

“저 말 하려고 여지껏 버틴거야? 독하네.”

 

 

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의 손이 경련하며 쥐고있던 총을 놓았다. 비틀거리며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우진에게 빠르게 다가가 팔을 붙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뜨거운 피가 느껴졌다.

 

 

“어깨 빌려줄게.”

 

 

우진의 팔을 내 어깨 위로 올렸다. 묵직한 몸이 기울어졌다. 뒤늦게 일어난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고, 삼촌이 고모를 업고 한 손으론 작은 조카를 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창고의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밤이 거의 걷혀가고 있었다. 짙은 남색 하늘 끝으로 희미한 빛이 번졌다. 밤새 내린 비로 땅은 젖어 있었고, 차가운 새벽 공기에서는 흙냄새가 났다.

 

어두운 창고 안에서 빠져나온 우진의 얼굴 위로 처음 떠오르는 햇빛이 닿았다.

 

 

 

*

 

 

 

아빠의 조직은 그날을 끝으로 해체됐다. 물론 그 회장의 조직도 수장을 잃어 완전히 파멸했다.

아빠가 남긴 서류를 통해 조직 안에 숨어 있던 배신자들을 찾아냈고, 피로 이어지던 일도 모두 정리했다. 합법적으로 운영되던 회사와 재산만 남았다. 고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결혼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거짓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배신한 것인지 이제는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아빠가 평생 지키려 안간힘을 쓴 것을 내가 지켜낸 기분이었다. 그게 아빠의 뜻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아빠가 내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은 이런 세계가 아니었을 거라 믿었다.

 

 

2G폰은 완전히 초기화됐다. 그 안에 있던 문자도 사라졌다. 우진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있다는 건 내가 죽었거나, 널 지켜주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겠지.”

 

 

병원 침대에 누운 우진이 천장을 바라보며 아빠의 문자를 읊었다.

 

 

“여주야. 아빠가 남긴 것들에 얽매이지 마라. 전부 버리고 살아. 네가 원하는 곳에서, 네가 원하는 사람들과.”

 

 

그게 전부였다. 암호화된 금고 비밀번호도, 숨겨진 재산의 위치도 없었다.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은 살아남으라는 부탁뿐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우진은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퇴원한 날, 사라졌다.

 

 

 

*

 

 

 

계절이 한 번 바뀌었다. 나는 아빠의 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재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붉은 융단도, 체리나무 책상과 책장도, 침대 옆의 작은 소파도 건드리지 않았다. 육아일기는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었다.

 

마지막 상자를 차에 싣고 별장을 돌아봤다. 따뜻한 햇빛이 붉은 지붕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별장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였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차우진!”

 

 

남자의 걸음이 멈췄다. 놓칠까 봐 팔을 붙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단단한 팔이 느껴졌다. 남자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모자 아래로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우진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봤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한쪽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숨이 차올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것은 하나뿐이었다.

 

 

“고마워.”

 

 

우진이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잠시 후 모자 아래로 드러난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느와르 너무 어렵네요 ㅠㅠㅠㅠ;;;; 힘도 너무 빠져서... 빠르게 완결해버렸어욥..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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