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저 좋아하는 거 맞잖아요.

3화_비가 오던 날

우산을 피니 운학 선배가 옆으로 왔다.

우리는 우산을 나눠 쓰며 걸었다.

그런데 키가 작은 나와 달리 180cm가 넘는 운학 선배에게는 우산이 낮았는지, 머리에 자꾸 우산이 닿았다.


운학 “내 머리를 계속 때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가 들게 해주는게 나을 텐데ㅋㅋ”

여주 “아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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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운학 선배에게 우산 손잡이를 넘겨주고 어색한 분위기가 찾아왔다.

우산이 큰 편은 아니라 자꾸 어깨가 맞닿는 것이 신경 쓰였다.

운학 선배는 우산이 작은 걸 인지했는지 은근 손잡이를 내 쪽으로 기울여 우산을 잡았다.

우산을 안 기울여도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내 우산인데 내가 좀 젖는 게 억울하다 생각이 들어 말을 하지 않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운학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이 정말 내 이상형이긴하다.

웃을 때 되게 예쁜 그런 눈에 완전 두부같은…

정신을 놓고 운학 선배를 빤히 쳐다보니 선배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인지 심장이 뛴다.

아니야. 이건 그냥 비오는 날에 남녀 둘이 우산을 쓰니까 자동적으로 그러는거야.

계속해서 맞닿는 어깨에 괜히 움직임을 의식하게 된다.

눈치 없는 귓볼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운학 “너 이쪽으로 걸어. 차 많이 다닌다.”


선배가 자연스럽게 내가 차도 쪽으로 걷지 않도록 자리를 바꿨다.

사소한 배려가 오늘따라 좋다.

활발한 성격 탓에 조용한 이순간을 참지 못한 듯한 운학 선배는 스몰토크를 남발한다.


운학 “너 김여주 맞지? 어제 신입생 환영회에서 본 것 같은데”

여주 “아 네. 어떻게 아셨지? 완전 반대편에 있었는데?”

운학 “아 자고 있길래 눈에 띄어서ㅋㅋ”

여주 “아ㅠㅠ 그때 보셨구나ㅠㅠㅋ 하필ㅠ”


여주는 운학 선배한테 술 먹다 뻗은 후배로 이미지가 보이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운학 “난 김운학. 4학년이야.”

여주 “알고 있어요. 워낙 유명하시잖아요”

운학 “? 내가 왜 유명해?”

여주 “몰라서 물으세요? 그…”

운학 “아니 왜 뭔데?? 나 4년 동안 사고 하나도 안 쳤는데?”

여주 “귀엽다고…ㅋㅋㅋ”

여주 “자기 자랑하려고 계속 물어보신건가ㅋㅋㅋ“

운학 “아니 그런거면 좀 뻘쭘해지는데..” 

여주 “ㅋㅎㅋㅎㅋㅋㅋㅎㅋㅋㅋ”

운학 선배의 말투와 이 상황, 표정까지 너무 웃겨 박장대소해버렸다.


운학 “아하잇 너무 웃네? 선배가 귀엽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질 않나 이렇게 비웃질 않나 너무 선배를 물로 보는 거 아니야??ㅋㅋ”

여주 “앜ㅋㅋ 죄송해요ㅋㅋㅋ”


겉으로 봤을 땐 그저 시끄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상하게 기분을 좋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뭐라는거야 진짜..


운학 “그래서 너 어디 쪽으로 가는데?”

여주 “저 ~~역 쪽으로 가요”

운학 “난 저기 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주면 돼”


조금만 더 걸음을 옮기면 도착할 수 있는 버스정류장을 보고 왜인지 아쉬워졌다.

이게 무슨 감정이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데.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운학 선배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가야했는데 발걸음이 잘 안 떼졌다.

그러다 운학 선배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운학 “전화번호 좀 줘. 비 오는 날에 우산도 빌려줬는데 보답해야지”

굉장히 놀라 2초 동안은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급히 선배의 핸드폰을 잡아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여주 “여기요..”

운학 “그래 조심히 들어가!”


운학 선배는 금방 와 버린 버스를 타고 갔다.

하지만 내 심장은 아직 여운이 남는 듯 뛰고 있었다.


‘어..? 진짜 왜 이러지?’


집으로 걸어가면서 감정을 정리해 보니, 명확히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알게 되었다.


‘아 나 운학선배 좋아하나 보다‘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해도 선배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뭘 좋아할지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21년 모솔 김여주가 단단히 김운학에게 빠진 것 같다.

주고받은 연락처를 보며 혼자 웃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다.

이 도파민 터지는 사건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친구라곤 태산과 다빈밖에 없는 나란 사람.

다빈은 만난 지 2일밖에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저번에 내 스타일 아니라고 말해 놓고 번복하는 것이 가볍게 보이지 않을까?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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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띠리링
통화 연결음이 울린다.

태산 “여보세요?”

여주 “야 한태산“

태산 “왜”

여주 “내가 재밌는 거 들려줄까? 너한테만 얘기하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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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자신에게만 이야기해준다는 것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태산 “뭔데”
여주 “나 좋아하는 사람 생긴 듯”

태산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도 없는 애가?

말을 하지 못한 이유는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여주 “야! 안 들려?”

난 너를 좋아하는데. 넌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태산 “… 끊어”

여주 “? 뭐여 그래 끊는다”

뚜뚜뚜-
통화 종료음이 울린다.


여주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염치없이 알고 싶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알게 되는 순간 정말 끝날 것 같아서.

그런데도 자꾸 궁금하다.

10년 동안 난 무엇을 해왔던 걸까.

좋아하면서도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네 곁에 있는 것에 만족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란 걸 알면서도.

이게 진정한 음침함이지 않을까?

핸드폰 화면에는 아직도 여주와의 통화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한참 동안 그 화면을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나는 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할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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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뭐야.. 왜 다짜고짜 끊재’

왜 갑자기 한태산이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으니까.

여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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