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제이 (현진) 단편 모음

잠금화면 뒤의 우리

“야, 김하은. 어디 가?”

룸메이트들이 시끌벅적하게 진실 혹은 거짓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틈을 타, 하은은 살며시 기숙사 방 문을 열었다.

“화장실! 금방 올게!”

대충 핑계를 대고 나온 하은은 조용한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심장이 이미 갈비뼈를 두드리듯 가파르게 뛰고 있었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잠옷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휴대폰을 꺼내자 어두운 복도 안에서 화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현진: 기숙사 뒤편 자판기 앞이야. 조심히 와.]

낮 동안 그들은 그저 동갑내기 평범한 ‘친한 친구’인 척 연기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한 달째 비밀 연애 중인 연인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가로등 불빛조차 겨우 닿는 기숙사 뒤편의 어둡고 한적한 곳으로 향했을 때, 하은은 자판기의 은은한 불빛에 기대어 있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코너를 돌자마자 하은을 알아챈 현진이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밤공기 속으로 그의 낮은 목소리가 장난스레 파고들었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방 애들이 잠을 안 자서.” 하은이 그의 품으로 다가서며 투덜거렸다. “겨우 빠져나왔단 말이야.”

하은이 투덜거리자 현진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가 커다란 손을 들어 하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낮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제대로 손조차 잡지 못했기에, 단둘이 마주 선 지금 이 순간의 공기는 순식간에 말도 못 하게 달콤해졌다.

“하은아.”

현진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 순간, 그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간데없이, 그의 시선은 오직 하은에게만 고정된 채 진지해져 있었다. 마침내 맞닿은 그의 입술은 하은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촉촉했다.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나뭇잎 사각거리는 소리마저 멀어지고, 오직 서로의 얽히는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달콤하면서도 깊은, 그들의 첫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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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하은!!! 얼굴이 왜 그래? 밖에 무슨 일 있었어?!!”

하은이 기숙사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룸메이트들이 하이에나처럼 그녀를 에워쌌다. 완전히 하은의 실수였다. 화장실에 간다던 하은이 살짝 부어오른 붉은 입술과 터질 것처럼 붉어진 뺨을 하고 돌아왔으니 말이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은이 뒤로 물러서며 더듬거렸다.

“거짓말 마! 지금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잖아!” 룸메이트들이 그녀의 침대로 바짝 다가왔다. “얼른 말해, 얼른! 밖에서 누구 만났어?”

친구들의 끈질긴 추궁과 장난 섞인 찌르기, 그리고 본격적인 간지럽히기 공격에 결국 하은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불 속으로 얼굴을 푹 파묻은 채, 하은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 현진이랑 사귀어.”

“뭐?!?! 대박!!!!! 너네 맨날 투닥거리고 싸웠잖아—이거 진짜야?!”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복도 끝에 계신 선생님이 들으실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도 밤새도록 하은을 놀려댔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어제 너네 둘이 서로 쳐다보는 눈빛이 좀 묘하다 했어!” 한 명이 낄낄거리자 다른 애가 이불을 콕콕 찔렀다. “뽀뽀했지? 했네, 했어!”

그동안 하은은 부끄러움과 은근한 행복감이 뒤섞인 채 베개에 얼굴을 완전히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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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차례로 올라탔다. 룸메이트들의 갑작스럽고도 지나치게 친절한 배려 덕분에, 하은과 현진은 자연스럽게 맨 뒷줄 바로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야, 현진아. 과자 먹을래?”

바로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돌아앉으며 두 사람을 향해 짓궂고 눈치채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어젯밤 하은의 고백을 들은 터라 두 사람을 아주 예리하게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버스 안의 다른 아이들에게 들킬까 봐 하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그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무릎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현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했다. 그는 완벽하게 평소대로 대답했다.

“어, 줘 봐. 야, 김하은, 너도 먹을래?”

아무렇지 않은 척 평범하게 말하는 현진이의 태도를 보며 현진의 태도를 보며 하은은 가슴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앞자리 친구들이 다시 몸을 돌려 높은 등받이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순간……

툭.

현진의 커다란 손이 좌석 사이의 좁은 틈으로 슬그머니 미끄러져 들어왔다. 말도 없이 그의 손이 하은의 작은 손을 찾아내더니, 빈틈이 전혀 없을 정도로 손가락을 단단히 얽어쥐었다. 버스 앞쪽을 똑바로 바라보는 현진의 옆모습은 여전히 무심하고 지루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귀끝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갑작스러운 온기에 얼굴이 다시 화끈거렸지만, 하은은 남몰래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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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운행 끝에 버스는 마침내 익숙한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짐을 챙기고 인사를 나누는 학생들의 번잡함 속에서, 하은과 현진은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맞잡고 있던 손을 아쉽게 놓아야 했다.

“야, 김하은. 잘 가라.”

현진이 가방을 툭 걸쳐 메고 평소처럼 담담한 인사를 건넸다. 바로 옆을 걷던 룸메이트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가늘게 웃으며 하은의 등을 쿡 찔렀다. 하은은 모르는 척 내색하지 않으며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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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반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종례가 끝나고, 마침내 모두가 집으로 향했다. 하은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교문을 나섰다. 바로 그때, 주머니 속에서 익숙한 진동이 울렸다.

[현진: 교문 앞 편의점 골목에서 기다리는 중. 같이 가자.]

하은은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걸음을 재촉했다. 좁은 골목 모퉁이를 돌자, 커다란 학교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현진의 모습이 보였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에 현진이 고개를 들었고, 그의 얼굴에 금세 다정하고 환한 미소가 번졌다.

“들킬까 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현진의 곁에 다다라 숨을 몰아쉬며 하은이 말했다. “버스에서 애들이 전혀 눈치 못 채겠지?”

현진이 다가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하은의 무거운 가방을 빼앗아 대신 들어주었다. “어? 음…… 아마도? 애들 보니까 전혀 모르는 눈치던데!”

하은은 어젯밤 이미 룸메이트들에게 다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대신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목덜미에 식은땀을 흘렸다.

“다행이다.” 하은이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이번 주말에 우리 둘이서 제대로 데이트하자. 수학여행 때는 다른 애들 눈치 보느라 같이 시간도 별로 못 보냈잖아.” 현진이 조금 장난스레 말했다.

따스한 노을빛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쏟아지는 가운데, 하은은 자신을 꽉 쥐어오는 현진의 손을 맞잡으며 다가올 주말을 마음 깊이 기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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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기다리던 토요일, 빳빳한 교복 대신 편안하고 예쁜 사복을 차려입은 두 사람은 작고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약간의 속닥거림 끝에 두 사람은 현진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이 마침 자리를 비우신 터라, 조용하고 텅 빈 집은 둘만의 완벽한 데이트 장소였다.

거실 불을 어둡게 낮추고 커다란 화면으로 영화를 틀었다. 하지만 푹신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팝콘 통을 나눠 갖는 동안, 공기 중에는 묘하게 짜릿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나 버스에서처럼 눈치를 보거나 뒤를 돌아볼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이토록 조용하고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너 영화에 전혀 집중 못 하고 있지?”

현진이 낮게 숨을 몰아쉬며 풋 웃었다. 팝콘을 집으려 손을 뻗던 그의 손이 하은의 손가락끝에 살짝 스쳤고, 그의 피부는 따뜻했다. 순간적으로 민망해진 하은이 빛나는 화면으로 시선을 확 돌려버렸다.

“아니거든! 엄청 집중하고 있거든! 진짜 재밌단 말이야!” 하은이 빽 소리를 질렀다.

바로 그때 현진이 슬그머니 몸을 움직여 커다란 팔로 하은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고 제 옆구리로 확 끌어당겼다. 하은도 반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현진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의 옷에서 기분 좋고 깔끔한 향기가 풍겨왔다. 현진이 하은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고, 그의 품이 주는 완벽한 편안함 속에 긴장이 풀린 하은은 영화를 배경음악 삼아 조분조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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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가볍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은 뒤,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그의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다. 부드러운 돗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웠을 때, 서울 하늘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별들이 맑고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원하고 상쾌한 밤바람이 두 사람의 달아오른 뺨을 스쳤다.

“수학여행 때 우리가 밤에 이렇게 같이 누워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하은이 끝없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현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때 그 자판기 뒤에서 니 기다릴 때, 난 진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는데."

현진의 말에 하은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현진 역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너무 가까이 누워 있어서, 도시 불빛에 어렴풋이 반짝이는 서로의 눈이 단숨에 맞부딪쳤다. 고요한 순간, 현진이 몸을 살짝 일으켜 하은의 위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고 짧게 제 입술을 꾹 눌렀다가 떼어내며, 쪽 하는 소리를 냈다. 간지럽고 사랑스러운, 어두운 기숙사 뒤편에서 나누었던 깊고 오랜 첫 키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키스였다.

“와, 갑자기 뭐야!”

깜짝 놀란 하은이 얼굴을 붉히며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현진 역시 환하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하은의 이마를 가볍게 툭 쥐어박았다.

“그냥…… 예뻐서.”

두 사람은 다시 나란히 누워 장난을 치며 긴장감을 녹여냈다. 어깨와 팔이 닿을 만큼 가까이 누운 채, 손가락을 단단히 맞잡았다. 밤하늘의 별을 다시 올려다보는 그들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고요한 옥상 위로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하은과 현진만이 아는 달콤한 주말의 밤이 깊어갔다.

옥상 데이트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둘만 아는 비밀의 징표를 나누었다. 옥상에 나란히 누워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깊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실루엣만 살짝 보여서, 꽉 맞잡은 두 손을 중심으로 찍힌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하은과 현진은 둘 다 그 사진을 휴대폰 잠금화면으로 설정했다. 아직 세상에 당당히 연인임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휴대폰을 켤 때마다 서로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그들만의 비밀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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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돌아온 교실 안의 남학생들은 여느 때처럼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러웠다. 현진은 친구들과 책상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장난을 치며 크게 웃고 있었다.

“야, 박현진! 아까 네가 유튜브에서 말한 그 영상 링크 좀 보내줘 봐.”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다가와 현진의 어깨에 묵직한 팔을 툭 걸쳤다. 현진은 별생각 없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고 화면을 탭해 깨웠다.

“어? 야, 이거 뭐야?”

친한 친구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현진의 어깨에서 팔을 내리며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휙 낚아채 갔다. 주변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순식간에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하고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몰려들었다. “뭔데? 무슨 일이야?”

“야, 이 손 누구 손이냐? 너 누구 사귀냐? 와, 박현진 여자친구 생겼네!”

“야, 이 사진 분위기 장난 아니다. 손 잡은 것 좀 봐. 누구야? 우리 학교 애야? 얼른 말해봐!”

교실 안에 장난 섞인 추궁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현진의 귀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완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그는 친구의 손에서 휴대폰을 빠르게 빼앗아 오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쿨한 척 연기하려는 발버둥이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인스타그램에서 예쁜 사진 있길래 저장한 거야. 신경 쓰지 마.”

하지만 그의 예리한 친구들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 줄 리 없었다.

“에이, 거짓말 마!”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 사진 속 시계, 완전 네 거잖아! 그리고 옆에 여자 손 좀 봐—손가락에 작은 점 하나 있네…… 어? 잠깐만.”

친구가 화면을 확대하려 손가락을 갖다 대는 순간, 현진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원래 그는 남들의 이목을 피하느라 비밀 연애를 하는 동안 하은이 상처받거나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친구들이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을 보며, 이제 비밀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현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는 차분하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친구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해. 사진 속 여자, 하은이야.”

“……어? 김하은? 저기 앉아있는 김하은?”

교실 전체에 찬물을 끼얹은 듯, 남학생들은 순간적으로 완전히 침묵에 빠졌다.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진은 그들과 다시 눈을 마주치며 쐐기를 박았다.

“나 김하은이랑 사귀어. 그러니까 그만 까불어.”

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남학생들은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너네 진짜 언제부터 만난 거야?!”

현진의 폭탄 발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실 전체로 충격파가 번져나갔다. 현진이 무리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까지 소식을 듣고 하은의 책상 주변으로 먹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수십 쌍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온통 하은에게 꽂혔다.

“야, 김하은! 너 진짜 박현진이랑 사귀는 거 맞아?!” 한 반 친구가 흥분한 목소리로 책상을 쾅 치며 물었다.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정신없는 목소리들이 뒤섞였다. “대박, 진짜야?” “너네 이거 언제부터 숨긴 거야?” 갑작스러운 소동에 완전히 허를 찔린 하은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 왜 갑자기……” 하은이 목소리가 목에 걸린 듯 더듬거렸다.

하은이 당황해 머뭇거리자 친구들은 더욱 안달이 나며 확실한 대답을 요구했다. “진짜 맞지?! 얼른 말해줘!”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듯, 하은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북적이는 교실 너머로 현진을 바라보았다. 현진 역시 수많은 친구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함과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는 하은에게 슬쩍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리 말 안 하고 갑자기 터뜨려서 정말 미안해 '라는 그의 소리 없는 사과였다.

그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자 하은의 가슴을 짓누르던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하은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을 에워싼 친구들을 돌아보며, 수줍지만 아주 또렷하게 대답했다.

“응, 맞아. 우리 사귀어……”

하은의 입술에서 확답이 떨어지는 순간, 교실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처럼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은 마치 자기 일이라도 성공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하은의 어깨를 붙잡고 장난스레 흔들어댔다.

“와, 진짜 대박!! 언제부터 사귄 거야??? 빨리 자세히 말해봐—나 진짜 궁금해 죽겠단 말이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은의 시선이 교실 안을 맴돌다 칠판에 멈추었다. 다음 교시 숙제를 발견한 하은은 칠판에 적힌 분필 글씨를 가리키며, 뽈은 여전히 새빨갛게 물든 채 일부러 쿨한 척 연기하며 화제를 돌렸다.

“나중에. 나중에 다 말해줄게.” 하은이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받아쳤다. “지금은 종 치기 전에 다들 저 에세이 쓰는 거에나 집중하시지?”

하은의 재치 있는 대답에 친구들은 일제히 야유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선생님 오시기 전에 빨리 말해줘! 안 그러면 현기증 난단 말이야~!"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음 너머로, 현진은 멀찍이 서서 하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깊은 애정이 담긴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비록 그들의 비밀 연애는 공식적으로 끝이 났지만, 바로 이 순간—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진짜 연애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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