你来的时候

第 4 集 - 我可以问你要电话号码吗?

그날 이후로 서윤은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무조건 고개가 들렸다.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만 나면,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먼저 갔다. 그러다 김태형이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하던 일을 했고, 김태형이면 괜히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문제는 그게 너무 티 난다는 거였다.

 

“서윤 씨.”

 

사장님이 우유를 냉장고에 넣으며 불렀다.

 

“네.”

“요즘 문지기야?”

“네?”

“문 열릴 때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서윤은 바로 정색했다.

 

“안 쳐다봤거든요.”

“봤어.”

“손님 들어오니까 보는 거죠.”

“그 손님 기다리는 거 아니고?”

“…사장님.”

 

사장님은 아주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알겠어, 알겠어. 아니라고 하자.”

 

하필 그 말을 끝내자마자 문 위 종이 딸랑 울렸다.

서윤은 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김태형이었다.

사장님은 그걸 보고 바로 웃음을 참는 얼굴이 됐다. 서윤은 괜히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어서오세요.”

 

태형은 늘 그렇듯 조용한 얼굴로 카운터 앞으로 왔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네. 그리고.”

 

태형이 메뉴판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덧붙였다.

 

“치즈케이크도요.”

 

서윤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또요?”

“또요.”

“은근 좋아하시네요.”

 

태형이 아주 잠깐 웃었다.

 

“서윤 씨가 맛있다고 했잖아요.”

 

그 말에 서윤은 괜히 케이크 포크를 집다 말고 손을 멈췄다. 별말 아닌데 이상하게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네.”

 

 

 

태형은 음료와 케이크를 들고 창가 자리로 갔다. 서윤은 계산대에 서서도 몇 번이나 그쪽을 힐끗 봤다. 태형은 오늘도 차분했다. 책을 조금 읽다가, 케이크를 먹다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랑 조금 다른 게 있었다.

예전엔 그냥 카페에 머무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가끔씩 분명하게 서윤 쪽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무심히 보는 게 아니라, 뭔가 확인하는 것처럼.

 

서윤은 괜히 더 바쁘게 움직였다.

괜히 컵을 닦고, 필요 없는 뚜껑 정리도 다시 하고, 포스기 화면도 쓸데없이 몇 번 눌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손님이 좀 빠졌을 때였다.

태형이 빈 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윤은 당연히 쓰레기 버리러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태형은 컵을 정리대에 놓고도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카운터 앞에 선 채로,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오늘 몇 시에 끝나요?”

 

서윤은 눈을 깜빡였다.

 

“네?”

“퇴근이요.”

 

갑자기 그런 걸 물을 줄 몰라서, 서윤은 괜히 명찰 끝만 만지작거렸다.

 

“왜요?”

 

태형은 잠깐 서윤을 보더니 대답했다.

 

“물어보면 안 돼요?”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럼 다행이네.”

 

또 다행이었다.

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열 시쯤이요. 왜요?”

 

태형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끝나고 잠깐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순간 서윤은 진짜로 아무 말도 못 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더 이상했다. 꼭 별거 아니라는 듯, 그런데 전혀 별거 아닌 말은 아닌 톤으로.

서윤은 괜히 주변을 한번 봤다. 사장님은 저쪽에서 컵 닦는 척하고 있었지만, 분명 다 듣고 있을 것 같았다.

 

“저를요?”

“네.”

“왜요?”

 

그 질문은 정말 궁금해서 나온 말이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고 나니까 더 바보 같았다.

태형은 잠깐 입꼬리를 올렸다.

 

“관심 있어서.”

 

이번엔 서윤이 정말로 말을 잃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잠깐 카페 안 소리가 다 멀어진 것 같았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도, 얼음 녹는 소리도, 저쪽에서 사장님이 괜히 잔 부딪히는 소리도 다 흐릿했다.

 

조용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무뚝뚝하고, 말수 없고, 그냥 가만히 창밖만 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직구를 던지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서윤은 겨우 입을 열었다.

 

“되게 갑자기 말씀하시네요.”

“갑자기 아닌데.”

 

태형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전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뭘요.”

“서윤 씨한테 말 걸고 싶다고.”

 

서윤은 결국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져서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서윤은 속으로만 아, 진짜. 하고 생각했다.

태형은 그런 분위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부담 주려는 건 아니에요.”

 

서윤은 천천히 그를 돌아봤다.

얼굴을 보니 심장이 또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쯤 되니 부정도 잘 안 됐다. 그냥 기분 좋은 말 정도가 아니라, 너무 분명한 고백 전 단계 같아서.

서윤은 괜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한테 왜요?”

 

태형이 대답했다.

 

“처음엔 그냥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서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근데 보다 보니까, 그것만은 아니더라고요.”

 

태형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차분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진심처럼 들렸다.

 

“카페 말고, 밖에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서윤은 손에 쥔 펜을 더 세게 쥐었다.

진짜 큰일이었다.

 

이건 그냥 설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얼굴이 빨개진 게 분명한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당황해서 웃어야 할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태형은 그런 서윤을 잠깐 보고 나서,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번호, 물어봐도 돼요?”

 

서윤은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지금요?”

“네.”

“이렇게 갑자기요?”

“아까도 말했잖아요. 갑자기 아니라고.”

 

이번엔 서윤이 진짜로 웃고 말았다.

이상했다. 분명 당황스러운데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너무 좋아서 더 놀라는 쪽에 가까웠다.

 

“싫어요?”'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태형이 말했다.

그 말에 서윤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싫냐고 물으면 또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아니, 전혀.

서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작게 말했다.

 

“…안 싫어요.”

 

태형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서윤은 괜히 더 빨리 덧붙였다.

 

“근데 카페에서 이러니까 좀 민망해서.”

“그럼 카페 끝나고 물어볼까요?”

“그것도 민망하거든요.”

“그럼 지금이 낫겠네요.”

 

서윤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원래 이렇게 말 잘하세요?”

“아니요.”

 

횡설수설 무슨 말을 하며 서윤은 포스기 밑에 놓인 메모지 한 장을 잡아 뜯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아서, 응. 뭐라도 적어야할 것 같아서. 그리고 핸드폰을 전해주다 손이라도 닿으면 심장이 폭발할까봐. 얼굴이 더 빨개질까봐.

 

그 위에 번호를 적고,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태형 쪽으로 내밀었다.

태형도 조용히 그 종이를 받아 들고 내려다봤다.

 

 

태형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 안에 넣었다. 별것도 아닌 동작인데, 이상하게 그게 너무 소중해 보였다. 마치 대충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

고맙다느니 뭐니, 진짜 줄 줄 몰랐다느니 등등의 말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담백하게 번호만 받아가서 당황스러우면서도 놀라웠다. 그건 배려였을까?

 

지갑을 자켓에 넣은 태형은 카페 문으로 나가기 전, 한 번 돌아봤다.

 

“이따 연락해도 돼요?”

 

서윤은 괜히 시선을 피한 채 대답했다.

 

“…네.”

 

태형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카페를 나갔다.

 

딸랑.

 

문이 닫히자마자 창고에 조용히 있던 사장님이 다가왔다. 조용히 있어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와.”

 

서윤은 바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장님,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아니, 우리 카페에서 이런 날이 오네.”

“사장님.”

“서윤 씨.”

“왜요.”

“좋지?”

 

서윤은 대답을 못 했다.

 

좋았다.

엄청.

문제는 그게 너무 티 날 것 같다는 거였다.

 

그날 마감 내내 서윤은 휴대폰만 괜히 뒤집었다 엎었다 했다. 연락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자꾸 화면을 확인하게 됐다. 괜히 메시지 알림 소리도 크게 해 두고 싶었지만, 그러면 너무 티 나는 것 같아서 참았다.

 

그런데 마감이 거의 끝나 갈 때쯤, 진동이 한번 울렸다.

서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화면을 켰다.

아직 저장되지 않은 번호 하나.

그리고 짧은 메시지.

 

[집 가는 길이에요?]

 

서윤은 그 문장을 한참 보고만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용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