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연숩/ 연준 수빈] 붉은 둥지

[연숩] 붉은 둥지 6화

 

손등에 닿았던 연준의 입술이 떨어졌지만, 그 잔향처럼 차가운 온기는 오랫동안 수빈의 살결 위에 남아 있었다.

수빈은 황급히 깍지 끼었던 손을 빼내며 침대 옆으로 물러섰다.

손등을 반대쪽 손으로 꼭 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수빈의 모습에, 연준은 어깨의 통증도 잊은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티 내지 않아도 다 보여, 수빈아.”

“...뭘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귀 끝부터 목덜미까지 붉어져서 온몸으로 나한테 신경 쓰인다고 말하고 있잖아.”

연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정돈했다. 조금 전 치료한 어깨 때문에 움직임이 아주 약간 둔해졌지만, 그 나른하고 위압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연준은 바닥에 어지럽게 부서져 있던 가구 조각들과 하급 놈들의 잿더미를 훑어보았다.

“이 방은 당분간 못 쓰겠네. 다른 방으로 옮기자.”

연준이 앞장서 걸어가자, 수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복도는 어수선했다.

저택의 하인들이 부서진 벽면을 치우고 핏자국을 닦아내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빈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주인의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등 뒤를 지켜낸 인간.

단순한 먹잇감이나 사육 대상인 줄 알았더니 주인의 신임을 받게 된 이질적인 존재. 그들의 눈빛에는 경계와 호기심이 번갈아 스쳤다.

연준이 수빈을 데려간 곳은 저택 가장 깊은 곳, 그의 개인 집무실과 연결된 본인의 침실이었다.

어젯밤 수빈이 머물던 방보다 훨씬 크고 넓었으며, 서늘한 장미 향이 짙게 가배어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지내.”

“네? 연준 씨 방이잖아요.”

“또 하급 놈들이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차라리 내 눈앞에 두는 게 제일 안전해.”

연준은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라는 듯 무심하게 말하며 집무실 책상에 털썩 앉았다.

책상 위에는 습격 사건 보고서와 가문 간의 관계를 적은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번 습격으로 인해 순혈 뱀파이어 세력 내부에서도 수빈의 존재를 두고 잡음이 커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빈은 침대 옆 소파에 가만히 앉아 연준을 바라보았다.

서류를 넘기는 연준의 찌푸린 미간과 굳게 다물어진 입술. 밤의 지배자로서 저택과 영역을 지켜야 하는 그의 어깨가 어딘가 지쳐 보였다.

‘나 때문에... 사태가 더 복잡해진 건가.’

수빈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헌터 가문에서는 능력 없는 실패작으로 짐이 되더니, 이곳에 와서도 연준에게 위기를 가져오는 짐이 된 것만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복잡하게 해.”

어느새 서류를 내려놓은 연준이 수빈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소파 헤드에 팔을 올려놓은 채 수빈을 내려다보는 연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한층 덧없고 아련했다.

“내가 짐이 되는 것 같아서요.”

수빈이 솔직하게 읊조렸다.

“가문에서도 짐이었는데... 여기서도 나 때문에 침입이 일어나고, 연준 씨가 다쳤으니까.”

연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올려 수빈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살포시 쓸어내렸다.

손가락 마디가 수빈의 머릿결을 지나 뺨에 부드럽게 닿았다.

“착각하지 마, 최수빈.”

연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네가 짐이라면 어제 그 자리에서 버렸어. 널 지킨 건 내 선택이었고, 넌 내 등 뒤를 지켜줬잖아.”

“......”

“나한테 넌 짐이 아니라... 이 재미없는 영원 속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숨을 쉬게 만드는 존재야.”

연준의 붉은 동공이 은은하게 빛났다.

포식자의 집착이나 탐욕이 아닌, 기나긴 삶의 고독 끝에 유일하게 찾은 온기를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연준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수빈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어젯밤의 다소 위협적인 스킨십과 달리, 이번에는 지극히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축복과도 같은 입맞춤이었다.

수빈은 감도는 정적 속에서 눈을 감았다. 연준의 입술이 이마에서 떨어지고 뺨을 지나 목덜미 근처에 닿았을 때도, 이번에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감싸는 차가운 장미 향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연준의 깊은 진심에 심장이 끊임없이 뛰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던 헌터와 뱀파이어라는 거대한 벽이, 이 침묵의 온도 속에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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