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1화 - 쓰레기들

뺨을 맞았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갈 만큼 세게.

 

 

“남의 남편이랑 붙어먹으니까 좋아?”

 

 

여자는 성이 잔뜩 난 얼굴을 하곤 울고 있었다. 눈가가 온통 번진 채로 내 팔을 붙잡았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프잖아.

남편이라는 새끼는 그 뒤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나랑 있을 때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던 얼굴이 지금은 세상 억울하다는 듯 일그러져 있었다.

 

 

“여보, 난 진짜 억울해. 얘가 계속 따라다닌 거야.”

“허.”

 

 

기가 막혀서 남자를 쳐다봤다. 터져나오는 헛웃음을 구태여 막지도 않았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거야?

 

 

“내가 몇 번이나 밀어냈는데도 계속 연락했다고.”

 

 

우스웠다. 클럽에서 내 번호 따간게 누군데?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팔짱을 낀 채로 쳐다봤다. 남자의 아내가 내 눈빛을 보더니 남편을 돌아봤다. 우물쭈물하던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아, 씹….”

 

손바닥이 정수리를 거칠게 쓸고 지나갔다. 꼴에 남자라고 힘은 센가봐, 머리 존나 울리네.

저 늙다리 좋다고 우는 여자나, 아내 뒤에 숨어서 나를 미친년으로 만드는 저 새끼나.

아주 잘 어울렸다.

 

 

“아줌마, 얘가 나 클럽에서 번호 땄어.”

 

 

여자의 손을 떼어내고 턱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리곤 그대로 휙 돌아섰다. 등 뒤에서 남자의 묵직한 욕설이 날아왔다.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아내가 말이 없는 걸로 보아, 머지 않았구나 싶었다.

 

이 모든게, 내가 다니는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일어났다. 남녀 싸움에 끼인 적은 많지만 치정 싸움은 처음이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비집을 필요도 없이 내가 다가가면 알아서 길을 열어주었다.

늙은 놈이 대학생이랑 사귀고싶어서 구라를 쳐? 댓가는 치러야지. 아내가 있다는 걸 몰랐다는 말은 이미 여자의 앞에서 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붙잡고 같은 말을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왠지 잘해주더라, 쓰레기 새끼. 뭐, 나도 쓰레기니까 할 말은 없나.

 

한숨을 내쉬곤, 아무도 없는 공학관의 뒤쪽 계단쪽으로 이동했다.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서 부어오른 내 볼과, 헝클어진 머리칼을 보고 정돈했다. 혀로 볼 안쪽을 쓸어봤다. 이빨에 씹힌 자리가 쓰라렸다.

 

 

수업을 들을 기분도 아니고, 학교 근처에서 적당히 어두운 곳으로 정처없이 발을 옮겼다. 그리고 우뚝, 다리가 멈췄다.

 

Reset.

 

검은 배경에 고급진 금색으로 세리프 글씨가 박혀있었다. 바인가? 술집을 전전할 때 몇 번 오간 골목이었지만 이런 데 바가 있었는지는 몰랐다. 분위기에 이끌린건지, 아니면 바 이름에 이끌린건지. 나는 몸을 틀어 문에 손을 뻗었다. 무거운 문을 밀자 잔잔한 클래식과 그에 대비하는 여자들의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술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바 테이블 구석에 앉아 휴대폰을 엎어놓았다. 새로 온 메시지가 몇 개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뭐로 드릴까요?”

 

 

길게 네일을 한 손으로 메뉴판을 대충 넘겼다. 이름만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그 새 손톱 하나가 나갔네. 손톱을 쳐다보며 쯧, 혀를 차고 점원에게 대충 대꾸했다.

 

 

“아무거나.”

 

 

직원이 난처한 얼굴을 하려던 순간, 바 반대편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여자 셋이 나란히 앉아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예인이라도 온 줄 알았다.

 

 

검은 셔츠를 한 남자가 바 하나를 끼고 여자들 앞에 서 있었다.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을 때마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한 톤씩 높아졌다. 고개를 살짝 숙여 말을 들어주는 꼴이 제법 다정했다.

 

잘생기긴 했네. 근데 존나게 꽥꽥대네.

 

시선을 거두고 메뉴판으로 돌아왔다. 잠시 뒤, 내 앞에 서 있던 직원이 자리를 비켰다. 눈을 감고 웅웅거리는 머리속을 진정시키려 잔잔한 클래식에 귀를 기울이는데, 대신 검은 셔츠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여긴 처음 오시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 저쪽에서 웃고 있던 남자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겼다. 눈매가 단정하고 콧대가 곧았다. 얼굴만 떼어놓고 보면 어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얼굴로 나를 보며 똑같이 웃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나한테 장사하는건가?

 

 

“글쎄. 바가 다 거기서 거기라.”

“처음이라 어려우시다면 메뉴를 추천해드릴게요.”

 

 

남자는 내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뉴판을 가져갔다. 어쭈. 보통은 '추천해드릴까요?' 하고 의사를 묻지 않나? 꽤나 제멋대로였다. 긴 손가락이 칵테일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가게 시그니처 메뉴예요.”

 

 

시선이 매끈한 손가락을 지나쳐, 그가 가리키는 메뉴판의 칵테일에서 멈췄다. 픽 웃음이 나왔다. 술은 모른다고해도 꽤 비싼 축에 속하는 술이었다.

 

 

“처음 온 손님한테 제일 비싼 걸 추천하네.”

“제일 비싼 건 따로 있는데요.”

 

 

웃는 얼굴로 참 잘도 말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계속해 봐.”

“뭘요?”

“추천. 어디 한번 팔아보라고. 사줄테니까.”

 

 

남자는 잠시 나를 내려다봤다. 곧 메뉴판을 한 장 넘겼다.

 

 

“그럼 이쪽이 나을 것 같네요. 단 걸 안 좋아하실 것 같으니. 대신 도수가 높아요.”

 

 

방금 전보다 저렴한 칵테일이었다.

 

“비싼 걸로 안 밀어?”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뭘 보고?”

“그냥요.”

 

 

남자는 더 묻지 않고 주문을 받아 갔다.

왜 혼자 왔는지, 얼굴은 왜 그런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흔히 꺼낼 법한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몇 초 되지 않아 그는 병들을 챙겨 내 앞으로 왔다. 얼음을 미리 칵테일 잔에 넣고 휘저어 녹여두곤, 셰이커에 여러 술을 넣곤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올곧은 자세로 세이킹을 하는 모습을 팔짱을 끼고 가만히 바라봤다. 옆에서는 다시한번 꺅꺅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주문인데 저 년들은 창피하지도 않나.

 

 

“피곤해지겠어.”

“좋아해주시니 감사하죠.”

“내가 피곤하다고.”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완성된 칵테일이 내 앞으로 내어졌다.

 

 

“맛있게 드세요.”

 

 

남자는 싱긋 웃곤 자리를 떠났다. 여자들이 자기도 주문을 하겠다며 난리를 피운 탓이었다.

칵테일을 한 모금 마셨다. 생각보다 독했다. 알코올 향 뒤로 희미한 단맛이 남았다.

 

나는 잔을 들어 남은 술을 마셨다.

정말 다 마시게 될 것 같아서 조금 짜증이 났다. 이건, 오늘 쓴 인생 경험을 해서 마시는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

 

 

 

다음날, 강의실로 향하던 길. 얼굴에 파스를 붙이고 등장하니 내 친구라는 애는 깜짝 놀라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아, 시끄러워.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걷는데 내 앞에 우뚝 선 발이 보였다. 뭐야, 비킬 것이지. 고개를 들어 면상을 쳐다보니, 어제 바의 그 남자가 보였다. 미간이 조금 좁아진 채로. 덩달아 내 표정도 비슷하게 구겨졌다.

 

 

“…….”

“…….”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대충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엮이면 피곤할 것 같으니 아는 체 하지 말아라.

스파크가 튈 것 같은 눈싸움은 1분이 채 되기 전에 끝났다. 그대로 스쳐지나가자 옆에서 친구가 나와 남자를 번갈아보며 말을 걸었다. 그것도 호들갑을 떨면서.

 

 

“뭐야. 노여주, 너 쟤 알아?”

“몰라.”

 

 

뭐, 쟤가 뭔데. 알고 싶지도 않아. 대충 대답하고 가려는데 저 쪽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온 모양이었다. 남자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내 쪽을 돌아봤다. 곧 상원의 팔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야, 이상원. 너 쟤 알아?”

 

 

내 옆의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귀에 대고 속닥이는 말은 꽤 우스웠다.

 

 

“쟤 진짜 쓰레기잖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련하시겠어. 그렇게 여자를 꼬시는데.

관심 없다고 대답하곤 갈 길을 갔다. 아마 쟤, 그러니까 이상원의 친구도 그런 말을 했겠지.

 

쓰레기끼리의 첫 만남이었다.

 


 

李相沅粉丝常读作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