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82화. 사고

sophie97
2026.07.28浏览数 14
줄리앙과 데이트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파리에서 함께 보낸 주말이었다.
함께 쇼핑도 하고,
미술관도 가고,
그 때 먹지 못 했던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휴대폰의 전원을 꺼 두었다.
이번만큼은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히 그와만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어느덧 일요일 밤이 되었다.
나는 월요일 아침 줄리앙이 출근을 한 후에
그의 집을 나서기로 했다.
줄리앙은 서랍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내일 아침 공항으로 갈 때
이걸로 문 잠그고 가요.
그리고, 언제든 당신이 오고 싶을 때
와도 된다는 의미에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고 왔을 때
집에 아무것도 안 남아 있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ㅎ"
"돈이 될 만한 게 어디 있는지 미리 알려 줄테니
무겁게 다 들고 가진 말아요"
왜 그의 말에는 농담에도
따뜻함이 베어 있을까.
내가 너무 미안하게...말이다.
"줄리, 나 디카페인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잠깐 같이 나가 줄 수 있어요?"
"이 시간엔 카페 문 연 곳이 거의 없을 거에요.
내가 내려 줄께요.
디카페인 원두도 있어요."
"혹시 그거 알아요?
커피는 다른 사람이 타 주는 게 가장 맛있다는 거."
"그런 말이 있어요? 몰랐는데요.ㅎ
그럼 정아씨 커피는 항상 내가 타줄게요.
그럼 됐죠?"
"항상? 언제까지나?"
"죽을 때까지."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런데...하나 물어봐도 돼요?
그 반지...특별한 의미가 있는 반지에요?
그 손가락은 약혼 반지 끼는 자리인데
반지를 끼고 있어서 늘 궁금했어요."
"아...이거요?
예전부터 끼던 반지라서...
약혼 반지 끼는 손가락이 따로 있어요?
그런 거 잘 모르고 낀 거에요.
그럼...다른 손가락으로 옮겨야겠네요."
나는 훈지 씨가 준 반지를 빼서,
다른 손가락으로 옮겼다.
그의 목에도
나와 같은 반지가 걸려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차마 반지를 버릴 수 없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일상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새롭게 시작한 번역 일을 이어 가면서,
줄리앙의 권유로 프랑스어 공부도 시작했다.
어제 저녁,
줄리앙과 통화할 때 그는 부모님을 마중 나와
공항에 있다고 했었다.
나는 줄리앙의 부모님을 뵐 때 입을 옷도 고르면서
내일 파리로 갈 때 가져갈 짐을 간단히 싸고 있었다.
패킹을 끝내고,
출판사에 오늘 작업한 양을 이메일로 보내기 위해
랩탑을 펼쳤다.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다가
우연히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우 박훈지, 영화 촬영 중 사고 당해..]
기사 제목을 읽는 순간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김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태형씨. 훈지씨 사고 기사 뭐야?"
"어...봤구나.
촬영하다가 작은 사고가 좀 있었어.
상처를 스무 바늘 정도 꿰맸는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지금은 입원해 있어."
더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아까 싸 두었던 가방을 집어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만 찾으면 됐다.
직항은 없었지만,
두 시간 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항공편에 좌석이 하나 남아 있었다.
기사를 본 뒤부터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훈지씨가 얼마나 다쳤는지,
상태는 어떤지.
그 생각 하나 만으로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공중 전화를 찾아 훈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훈지씨 지금 어디에요?
다친 건 어때요? 괜찮은 거에요?
얼마나 다쳤어요?"
"정아씨에요?
지금 이 번호...한국에 왔어요?"
"다친 건 어떠냐니까요? 괜찮냐구요?"
"괜찮아요.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정말 한국에 온 거에요?
지금 어디에요?"
"공항이에요.
기사를 보는 순간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바로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오는 가장 빠른 비행기 타고 온 거에요..
정말 왜 이렇게 사람 애를 태워요."
"나...보러 왔다구요?"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무사하다는 안도감에서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지 마요.
정말 괜찮아요.
주소 보낼 테니까 이리로 와요.
알았죠?"
"이거 공중전화에요. 휴대폰이 아니라...
주소 불러줘요. 메모할게요."
나는 그와 만나는 동안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 했던
그의 공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헤어진 지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아무 사이도 아닌 우리가 되어서야 말이다.
"내가 당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83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