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99화. 오해




우리에겐 가까운 곳에서

따로 지낼 공간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이 동네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마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소피가 지내는 집 2층에 있는 제임스가

 이번 달 말쯤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그곳을 훈이 사용하면 어때요?"





"아, 정말요?

 그럼 저도 이사가지 않아도 되고, 너무 좋아요!

 그런데 이번 달 말까지는 아직 2주 정도 남았네요."





그 정도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라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다.





 "그럼 제임스가 쓰던 2층은

 제 남자 친구가 사용할께요."





마리아는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피와 훈이 1층과 2층을 따로 사용하는 거에요?"





"네, 맞아요."





"소피가 쓰는 1층이 좁아서 그런 거에요?

 그럼 차라리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서

 같이 살면 되잖아요.

 물론 두 사람이 1층, 2층을 다 쓰면
 
 나도 새 세입자를 구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하지만요."





"아... 한국은 아직 결혼 전에 함께 사는 문화가

 그렇게 흔한 편은 아니라서요."





훈지 씨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무리 중인 책이 있어서

일주일 정도는 더 매달려야 했다.




그 일을 마치면

훈지 씨와 1~2주 정도 여행을 다녀온 뒤,

그의 이사와 정리를 도우면 되겠다고 계획했다.




훈지 씨의 거처도 정해졌고,

그다음 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랩탑과 자료를 챙겼다.




오늘은 특별히 훈지 씨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심심하면 산책도 하고, 낮잠도 자고,

 집에 있는 책은 아무거나 읽어도 돼요.

 그리고, 이따 5시쯤 미겔 카페로 와서

 나랑 같이 장 보고 들어와요.

 오늘 저녁은

 훈지 씨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먹을까요?"





"좋아요!

 내가 5시쯤 카페로 데릴러 갈게요.

 오늘도 일 열심히 하고 와요."




훈지씨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한참 작업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5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런데 훈지 씨가 왜 안 왔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집에서 잠든 걸까?'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그의 신발은 그대로 있었다.



거실을 지나 조심스레 침실을 들여다 보니,

그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훈지 씨, 왜 카페로 안..."




그가 말을 끊었다.




"왜 나한테 거짓말 했어요?"




"네? 거짓말이요?

 무슨 말이에요?"




"나한테는 동거한 적 없다고 했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릿 속이 하얘졌다.




'뭘 보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여자 친구들이랑 집을 쉐어했던 것 말고는

 동거한 적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훈지 씨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는 그가 무슨 근거로 '동거'라는 말을 꺼낸 건지

아직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훈지 씨...

 대체 뭘 보고 그런 질문을 하는 거에요?"




그는 내 앞에 편지와 메모를 내밀었다.





'아... 저게 어디서 나온 거지?'





"훈지 씨. 이게 뭐냐면요..."





"뭐긴 뭐에요.

 남친이랑 같이 살면서 서로 주고 받은 쪽지랑

 편지잖아요.

 나도 이 정도는 해석할 수 있어요."





그가 '동거'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보고,

이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어디서 나온 거에요?"




"지금 어디서 나왔는지가 중요해요?"




"아니... 궁금해서요.

 한국에서 일부러 챙겨 온 건 아니에요."





"책에 고이 끼워져 있던데요?"





"아... 가져온 책들 중에 끼워져 있었구나."


 


"그리고요?"





"캐나다에 있을 때...

 한국에 들어 오기 한달 정도 전에

 집 계약이 먼저 끝났어요.

 그래서 그 때 만났던 사람 집에서

 한 달 정도 함께 지낸 거에요."





"왜 말 안 했어요?"





"그런 것까지 다 말해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화가 난 이유가...
 
 내가 동거를 해봤다는 거에요?

 아니면 동거한 적 없다고 말한 거에요?"





"뭐라구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내가 뭘 잘못 했어요?

 나는 지금 훈지 씨가 왜 이렇게 오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오래 전 일이고, 상황상 어쩔 수가 없었어요.

 훈지 씨가 괜히 오해하고 싫어할까 봐

 말하지 않은 것 뿐이에요.

 그런데 왜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된 거죠?"





"그게 정말... 한 번이었어요?"





"훈지 씨.

 그 말은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동거했냐고 묻는 거에요?

 ... 이럴 거면 다 그만둬요"  





나는 소파 위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들고

말없이 밖으로 나왔다.





"사랑하는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100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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