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원― 가원(家園)

[보넥도 빙의글/ 나페스] 은하원-가원(家園) 5화 : 거짓

문제될 시 삭제, 아티스트 비하 의도 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현실과 무관합니다.

<브금과 함께하면 몰입감이 좋습니다!>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고 나면 저녁 전까지는 우리 시간이었다.

기숙사 뒤편 장작 창고는 선생님들도 잘 오지 않는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성호가 식당에서 몰래 챙겨 온 감자를 장작 난로에 묻고
운학은 장작더미 위에서 낮잠을 자다 형들한테 혼나는 곳
오늘은 다섯 명이 모였다.


나 이한 태산 재현 그리고 성호

운학은 재현이 심부름을 핑계로 본관에 보냈다.

리우는 오지 않았다.

성호 "아 진짜 그 진흙 구덩이 누가 만든 거야"


성호가 난로 앞에 쪼그려 앉아 바지 밑단을 털었다.
마른 흙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이한 "형이 두 번 빠졌다고 했잖아"
성호 "세 번이야 한 번은 네가 못 봤어"
이한 "그걸 왜 자랑해"


재현이 웃으며 부지깽이로 난로 속 감자를 뒤집었다.

재현 "운학이는 외나무다리 앞에서 울 뻔했어 내가 업는다니까 창피하다고 안 업힌대서 한참 걸렸지"
성호 "그래서 결국 업혔잖아"
재현 "업혔지"
다들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웃는 동안만큼은 어제가 정말 꿈같았다.
재현이 감자 하나를 꺼내 반으로 갈라 내 손에 쥐여 줬다.
재현 "뜨거우니까 불어 먹어"


김이 피어올랐다.


감자를 받아 드는데 손끝이 자꾸 떨렸다.
태산은 감자를 받지 않았다.
장작더미에 기대앉아 안경을 벗어 천천히 닦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다 안경을 다시 쓰고 나를 봤다.
태산 "하나야 너 어제 북쪽 숲 갔었지"


창고 안이 조용해졌다.


난로 속에서 장작이 탁 하고 튀었다.
성호 "뭐? 거길 왜 가"
성호가 웃으려다 말았다.
태산은 성호를 보지 않았다.


태산 "신발에 붉은 흙 묻은 거 봤어 점심때 이한이가 대신 둘러댔고"
이한이 고개를 숙였다.
태산 "그리고 아까 검정 끝나고 선생님이 기록지에 뭘 그렸는지 봤어"
태산 "네 이름 옆에 빨간 동그라미 다른 애들 이름엔 없었어"
손에 든 감자가 식어 가고 있었다.


재현이 부지깽이를 내려놓았다.
재현 “…하나야 무슨 일 있었어?”
태산 "말해 줘"
태산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태산 "나 어제부터 계속 이상했어 근데 자꾸 별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더 이상해"


이한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부 말했다.

유리 언니의 쪽지 철문 까만 공간 살려달라던 목소리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원장 선생님과 윤 선생님
이한이 이 년 전에 본 것까지

말이 끝나자 창고 안이 조용해졌다.


난로 속 감자가 타는 냄새만 났다.
성호 "말도 안 돼"
성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성호 "우리 형도 삼 년 전에 문밖 갔어 편지는 안 왔지만 그건 형이 원래 글씨 쓰는 걸 싫어해서…"
말끝이 흐려졌다.


성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재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관자놀이를 짚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나 "오빠 괜찮아?"
재현 "이상해"
재현이 낮게 말했다.

재현 "이 얘기 처음 듣는 게 아닌 것 같아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머리가 울려"
이 년 전 그날 밤 이 창고에서 똑같은 얘기를 들었던 사람이 바로 재현이었으니까


태산 "증거가 필요해"
태산이 안경을 고쳐 썼다.
태산 "본관 2층 기록실 졸업생 서류가 거기 있을 거야 성민이 형 서류를 찾으면 확인할 수 있어 진짜 문밖에 갔는지"

하나 "사감 순찰은?"
태산 "열한 시 십 분에 2층 열한 시 사십 분에 1층 본관 계단은 마흔두 칸이고 삐걱거리는 건 열일곱 번째랑 서른 번째"
태산이 나를 보고 씩 웃었다.


태산 "그날 퀴즈 정답이야 그래서 세던 거거든"


성호 "내가 들어갈게"
성호가 일어섰다.
성호 "우리 형이니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늘 밤 11시 15 분


태산이 계단참에서 망을 보고 재현과 이한이 기숙사 복도를 지키기로 했다.


기록실엔 나와 성호가 들어가기로 했다.


재현 "저녁 월명차는 다들 마시는 척만 해"
재현이 말했다.
재현 "이한이처럼"


저녁 종이 울렸다.
우리는 한 명씩 창고를 빠져나왔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본관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걸음이 멈췄다.
운동장 건너편 본관 처마 밑에 누군가 서 있었다.
우산도 없이
리우였다.

 

리우는 창고 쪽을 보고 있었다.
아니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리우는 천천히 돌아서서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당은 꿀 냄새로 가득했다.


다섯 개의 잔이 차례로 화분 쪽으로 기울었다.
성호는 한 모금 마시는 시늉을 하다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고
태산은 안경을 닦는 척 잔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재현은 운학의 잔이 비는 걸 끝까지 보고 있었다.
막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잔 더 달라고 손을 들었다.
리우는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잔을 들고 있었는데 마시는 걸 보지 못했다.


내가 볼 때마다 리우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11시 15 분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본관 계단은 캄캄했다.
태산이 계단참에 몸을 붙이고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지나가도 된다는 신호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칸을 셌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번째는 건너뛰었다.
스물아홉
서른 번째도 건너뛰었다.


뒤따르던 성호가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기록실 문은 잠겨 있었다.
성호가 문틀에 어깨를 대고 밀어 올리자 낡은 걸쇠가 힘없이 빠졌다.


성호 “…이렇게 쉬워도 돼?”


하나 "쉿"


먼지 냄새가 났다.


벽 한 면이 전부 나무 서랍장이었다.
서랍마다 연도가 적혀 있었다.
창으로 새어 든 달빛이 그 숫자들을 희미하게 비췄다.


성호가 삼 년 전 서랍을 열었다.
서류철이 딱 한 권
그해 졸업생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표지에 이름이 있었다.


박성민


성호의 손이 떨렸다.

 


첫 장엔 어린 소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성호와 똑같이 웃는 얼굴
그 아래 키 몸무게 검정 시험 점수가 빼곡했다.


성호가 한 장씩 넘겼다.
열두 살 열세 살 열네 살
사진 속 얼굴이 조금씩 자랐다.
그리고 마지막 장
졸업 확인서였다.


은하원 도장이 반듯하게 찍혀 있었다.
졸업일 아래 칸
행선지
門 ― 삼층


성호 “…삼층?”
성호가 그 글자를 손끝으로 짚었다.
성호 "문밖이 아니라 문인데 층은 또 뭐야"
대답할 수 없었다.


섬엔 삼층짜리 건물이 없었다.


나는 다른 서랍들을 열었다.


사 년 전 오 년 전 칠 년 전
서류철마다 마지막 장엔 똑같은 졸업 확인서가 있었다.
행선지 칸에 적힌 건 바다도 배도 아니었다.
門 ― 일층
門 ― 이층
門 ― 일층
門 ― 사층
맨 위 서랍엔 어제 날짜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채유리
행선지 칸의 먹이 아직 다 마르지 않아 손끝에 묻어났다.
門 ― 일층
나는 손끝을 치마에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계단 쪽에서 똑 똑
태산의 신호였다. 

누가 온다.


성호와 나는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성호가 박성민의 서류철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등잔불이 들어왔다.


윤 선생님이었다.


순찰 시간이 아닌데
선생님은 서랍장 앞에 서서 새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표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사각 사각


펜 소리가 심장 소리보다 컸다.
선생님은 서류철을 맨 위 서랍 유리 언니의 서류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깐 멈췄다.


등잔불이 천천히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책상 다리 바로 앞에서 불빛이 멈췄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윤 선생님 “…쥐가 많구나”


선생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나는 기어 나와 서랍을 열었다.


새 서류철
표지엔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추가 졸업 예정자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서류철을 열었다.
맨 앞에 끼워진 건 오늘 오후 내 머리에서 찢어낸 기계 종이였다.
미친 듯이 흔들린 바늘 자국 옆에 붉은 동그라미
그 뒤엔 내 시험지가 있었다.
마지막 장엔 내가 쓴 답이 그대로 있었다.

비 우산 손 흔드는 유리 언니
내 글씨 위에 붉은 펜으로 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거짓


안녕하세요 히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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