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호 나페스] 별바라기

3화. 유성우가 내리는 밤

안건호는 그 뒤로 한동안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바쁘다고 했고, 피곤해 보였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또 오겠다고 했다. 말 자체는 틀린 게 없었다. 애초에 매일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그걸 바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옥상은 자꾸 눈에 밟혔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가려다가도 계단 끝을 한 번 올려다보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좁은 계단이, 요즘은 꼭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위에 오래된 평상이 있고, 그 평상 위에 몇 년 치 말들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왜 말도 없이 사라졌어?’

 

내가 꺼낸 질문은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 건호는 여전히 침묵했고, 나는 여전히 그 침묵을 미워했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 그 애가 완전히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

 

“여주야~”

 

엄마 목소리에 나는 휴대폰에서 눈을 뗐다.

 

“왜요?”

“건호 나온다.”

“뭐가?”

“드라마. 재방송 하나 봐. 엄마가 저번에 놓쳤던 거~”

 

엄마는 이미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TV 화면에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고, 곧이어 익숙한 얼굴이 화면 한가운데 잡혔다.

 

안건호였다.

정확히는, 내가 알던 안건호보다 훨씬 반듯하고 낯선 얼굴을 한 배우 안건호.

 

화면 속 건호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꽤 진지했다. 목소리도 낮았고, 눈빛도 차분했다. 내가 알던, 별자리 이름 틀려놓고도 끝까지 우기던 애랑은 거리가 멀었다.

나는 괜히 팔짱을 꼈다.

 

“멋진 척 하기는.”

“왜? 건호 멋있는데.”

“이상해.”

“새삼스레 왜 그러니. 건호 나온 거 처음 봐?”

 

엄마가 물었다.

 

“안 봤는데.”

“왜? 너희 어릴 때 그렇게 붙어 다녔으면서.”

“그러니까 더 안 봤지.”

 

엄마가 나를 돌아봤고,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괘씸해서.

 

말하고 나니 조금 유치하게 들렸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TV 속에서 건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애가 반갑지 않았다.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냥 좀 어이가 없었다.

 

말도 없이 사라져 놓고.

나한테는 아무 설명도 안 해놓고.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화면 속에서 웃고, 울고, 누군가를 바라보는 게 이상하게 싫었다.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아서. 나만 그날 문을 세게 닫았던 애로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아직도 삐졌니?”

 

엄마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삐진 거 아니거든요.”

“그럼?”

“그냥 안 본 거야.”

“그게 삐진 거지.”

 

나는 대답 대신 쿠션을 끌어안았다.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화면 속 건호는 계속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낯선 대사, 낯선 표정, 낯선 분위기.

 

나는 더 보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봐?”

“공부해야 돼.”

“방금까지 휴대폰만 보고 있었잖아.”

“이제 할 거야.”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는데도 TV 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 안건호의 목소리는 낮아서, 그 사이에 섞여 올라올때면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펼쳤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 화면만 자꾸 켜졌다.

아무 생각 없이 앱 목록을 넘기다가, 오래전에 깔아둔 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별자리 어플.

초등학생 때 건호가 내 휴대폰에 깔아준 거였다. 별자리를 찾으려면 이게 꼭 필요하다며, 밤마다 휴대폰을 하늘에 대고 방향을 맞추던 애. 나는 별이면 그냥 별이지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고 했고, 건호는 별마다 이름이 있다고 했다.

 

앱은 업데이트를 필요로 했고, 머지않아 실행되었다.

촌스러운 화면 위로 별자리 지도가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곧 알림 하나가 떴다.

 

오늘 밤, 유성우 관측 가능.

 

나는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

 

유성우.

건호가 좋아하던 단어였다. 평소엔 뭐든 느긋하게 굴던 애가, 유성우가 뜨는 날만큼은 이상하게 부지런했다. 몇 시에 잘 보인다느니, 어느 방향을 봐야 한다느니, 구름이 많으면 안 된다느니. 나는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늘 옥상에 올라갔다.

 

오늘 밤 10시 40분 전후.

 

시간을 확인한 순간, 오래된 평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하늘을 보던 건호의 옆얼굴도.

 

보낼까.

아니, 뭘.

애초에 연락처도 없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며칠 전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건호 번호 받았다? 연예인 번호를 이렇게 받아도 되나 몰라~'

 

나는 한참을 버티다가 결국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내려갔다.

아니, 뭐. 그냥 연예인 번호 있으면 좋잖아.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변명을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

“왜?”

“그… 건호 번호 있잖아.”

“왜?”

엄마의 눈이 묘하게 반짝였다.

“아니, 됐어."

"어머 얘 좀 봐. 안 놀릴게. 알려줄게~"

"됐다고!"

 

괜히 날 놀리는 엄마한테 성을 내곤 홱 뒤돌아 계단을 오른다. 엄마가 뒤에서 하는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

 

"번호 예전이랑 같더라! 010-987 …"

 

2층의 끝에 다다를 때 쯤, 뒷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후, 나 뭘 하려고 했던거야. 불러낼 관계도 아니거니와, 불러낸다고 올 녀석도 아니었다.

방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진짜 바보같아.

 

한 손으로 폰을 켜고, 엄마가 불렀던 번호를 입력해본다.

 

010, 98 까지 입력했을 때ㅡ

 

안건호.

 

그 이름이 떴다.

 

나 아직 안 지웠구나. 전혀 몰랐다.

오랜기간 연락을 하지 않아 텅 비어있는 문자함으로 이동했다. 어찌저찌 번호는 알았는데, 뭘 보내야할 지 모르겠다. 애초에 보내도 되나 싶기도 하고.

 

[야]

[뭐해]

[안건호임?]

 

여러가지를 썼다 지웠다. 연예인이니까, 이름같은건 안 쓰는게 맞는 것 같아. 혹시 모르잖아.

나인 줄 눈치챌 수 있으면서, 또 무난한 문자가 뭐가 있을까.

결국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본론만 쏙 들어간 문구만이 남았다.

 

[오늘 유성우]

 

너무 감성적인가. 무슨 스팸문자로 분류될 수도 있겠다. 뭐하자는건지~

침대로 옮겨와 몸을 눕는 순간, 폰이 손에서 떨어져나갔다. 또롱, 소리가 울렸다.

 

"어, 어?!"

 

문자가 전송됐다. 아니, 이불에 스쳤는데 왜 전송되는거야!

후다닥 몸을 일으켜 폰을 잡고 들여다본다. [전송됨] 그 글자만 선명하게 찍혀있을 뿐이었다.

취소도 안 되고 …. 살짝 짜증이 올라온 상태로, 폰을 다시 침대에 던졌다.

어차피 그 번호가 진짜 안건호일거란 보장도 없으니까.

 

'번호 예전이랑 같더라!'

 

음, 그건 아닌가 …. 엄마의 마지막 외침이 머릿속에 스쳤다.

됐다. 난 공부나 하자. 어차피 연예인. 볼 시간도 없을거다.

 

나는 다시 책상에 자리를 잡곤 문제집을 펼쳤다. 하지만 글자는 여전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자신이 살짝 처량하고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공부를 한 지 30분이 지났을 무렵, 침대에서 진동이 울렸다.

 

[문 열어줘]

 

시간은 벌써 10시 30분을 향하고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에 가기도 어려울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옷장 앞에 서서 허겁지겁 가디건 하나를 꺼냈다.

 

 

*

 

 

나는 조용히 아래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은 이미 캄캄히졌다. 부모님은 벌써 안방에 들어가신 모양이었다.

문을 열자, 대문 앞에는 모자를 눌러쓴 건호가 서 있었다. 지난번보다 얼굴은 나아 보였지만, 눈가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남아 있었다.

 

“야, 이 시간에 ….”

 

내가 말했다.

 

“유성우가 늦게 내리니까, 뭐.”

“…일하다 온 거야?"

 

건호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더니 작게 웃었다.

 

 

"응, 촬영중이었어."

“그럼 안 와도 됐잖아.”

“끝났으니까 왔지.”

 

너무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건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들어가도 돼?"

"……."

 

나는 대답 없이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건호는 싱긋 웃으며 이내 들어완다.

지난번의 침묵이 무거웠다면, 오늘은 조금 어색했다. 오래전에 알던 사람과 다시 친해지는 방법을 둘 다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거실을 지나, 계단을 타고 올라갈 때까지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상 문을 열자 밤바람이 먼저 불어왔다.

지난번보다 하늘은 맑았다. 별이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개의 빛은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평상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진짜 뜬대?”

“어플에 그렇게 나와.”

“아직도 그거 써?”

“안 썼거든. 오늘 그냥 켜본 거야.”

 

건호가 내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이거 내가 깔아줬던 거네.”

“기억하네.”

“내가 별 보는 데 필요한 건 잘 기억해.”

 

나는 괜히 화면만 내려다봤다.

 

“필요 없는 건?”

“…….”

 

건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또 이상한 곳을 건드린 기분이었다. 나는 바로 말을 돌렸다.

 

“여기 봐. 이쪽 방향에서 이렇게, 떨어진대."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방향을 따라 손으로 대각선을 그렸다. 건호는 내 손가락 방향을 따라 고개를 움직인다. 까만 하늘 위로 희미한 별 몇 개가 떠 있었다. 유성우라고 하기엔 조용한 밤이었다.

 

"너, 볼 줄 아네. 그 어플."

"아, 엉."

"어릴땐 내가 다 봐줬던 것 같은데. 혼자서 많이 봤어?"

"아니."

 

부정적인 대답이 재빠르게 나왔다. 나도 모르게.

큼, 목소리를 가다듬고나니 둘 사이엔 다시 침묵이 늘어졌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는 쳐다도 보지 않고 밤하늘만 보고있었다. 난 머리속이 복잡한데. 얘는 별 생각도 없겠지. 난 널 왜 여기 불렀지, 지금 후회를 하고있어. 넌 아무 생각 없겠지.

 

 

“안 뜨네.”

 

이 자리를 파해야겠다는 결론을 속으로 낸 내가 중얼거리자 건호가 재빨리 대답했다.

 

“기다려봐.”

“얼마나.”

“뜰 때까지?”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너 진짜 옛날이랑 똑같다.”

“내가?”

“응. 별 하나 보겠다고 사람을 몇십 분씩 앉혀두는 거.”

 

건호가 나를 봤다. 방금 전까지는 쳐다도 안 봤으면서.

시선을 피하고있을 순 없어서 나도 똑바로 시선을 마주했다. 건호는 잠시 침묵을 잇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싫었어?”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싫었던 건 아니었다. 귀찮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건호가 부르면 늘 올라왔으니까. 별을 보는 게 좋았다기보다는, 건호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옆에서 보는 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귀찮았지.”

 

시선을 다시 하늘로 올리며 대답하자 웃음기가 섞인 건호의 목소리가 옆에서 다시금 들려왔다.

 

“근데 맨날 왔잖아.”

“네가 하도 귀찮게 하니까.”

“그랬나.”

“그랬어.”

 

건호는 더 말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하늘 한쪽에서 가느다란 빛이 빠르게 흘렀다. 아주 짧았다. 눈을 깜빡였으면 놓쳤을 만큼.

 

유성이었다.

 

“봤어?”

 

건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멍하니 응시만 하던 눈이 반짝였다. 나도, 건호도.

 

“봤어.”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꼭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 어린시절의 두근거림이었다.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입꼬리가 올라갔다. 발견했다는 벅찬 감정에 뇌가 찌릿, 울렸다.

 

“소원 빌었어?”

 

건호가 물었다.

어릴때는 잽싸게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곤 했다. 내일은 돼지갈비를 먹게 해주세요, 산타할아버지가 미미의 공주놀이 세트를 두 개 가져다 줬으면 좋겠어요,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 먹은거 안 들키게 해주세요. 등등의.

그치만 지금은 달랐다. 그 만큼 간절한 소원도 없었고, 이루어질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었으니까.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빌어.”

“옛날엔 잘 빌었잖아.”

“그땐 네가 미리 정해두라고 했으니까.”

 

건호가 작게 웃었다.

 

“지금도 정해두면 되지.”

“너는 빌었어?”

“응.”

“뭔데?”

“말하면 안 이루어진다며.”

“그런 걸 아직도 믿어?”

 

건호가 나를 보며 웃었다.

 

“너도 예전에 믿었잖아.”

“나는 어렸고.”

“지금도 별로 안 변했는데.”

“뭐?”

 

바로 쏘아붙이려는데, 건호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밤공기 때문인지, 희미한 조명 때문인지 그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 보였다.

건호가 느릿하게 말했다.

 

 

“여전하네, 너.”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조금 억울하고, 조금 반가웠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좋은 뜻이야?”

“응.”

“너한테 들으니까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

“진짜야.”

 

건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장난처럼 시작한 말인데, 끝은 이상하게 진지했다.

 

잠시 뒤, 또 하나의 유성이 떨어졌다.

이번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봤다.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침묵 안에 앉아 있었다.

몇 년 치의 서운함이 그걸로 사라질 리는 없었다. 말없이 떠났던 일이 갑자기 괜찮아질 리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그 애를 조금 덜 미워해도 될 것 같았다.

건호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불러줘서 고마워.”

 

나는 눈을 깜빡였다.

 

“내가?”

“응.”

“내가 너 부른 거 아닌데. 유성우 알려준 거지.”

“그게 부른 거 아니야?”

 

나는 대답 대신 입술을 다물었다. 건호는 또 작게 웃었다. 얄미운 웃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웃음이 전처럼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밤은 조금 더 깊어졌다.

별자리 어플 화면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화면으로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아주 조금은 충분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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