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憶操控俱樂部:txt

愛的語言呼喚著你

열일곱 살의 초여름,
우리 반의 공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금발에, 이국적인 이목구비.
하와이에서 막 전학을 왔다는 소년의 이름은 휴닝카이였다.


아, 안녕. 나는 카이카말휴닝이야.


어색하게 뱉은 그 한마디 외에, 소년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소년이 잔뜩 긴장해 어깨를 굳히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은우야, 네가 이 반에서 영어 제일 잘하지?
1년 동안 카이 짝꿍 하면서 학교 적응 좀 도와줘라."


그렇게 나의 열일곱 살은 온통 '휴닝카이'라는
낯선 언어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처음의 우리는 번역기가 없으면 대화조차 되지 않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나는 카이에게 한국어를, 카이는 나에게 영어를 알려주기로 했다.
우리는 매일 방과 후, 텅 빈 교실에 남아 서로의 언어를 교환했다.


"카이, 이건 '꽃'이라고 해! flowr. "


"꼬..꼬치?"


카이가 귀여워 웃음이 터지면,
카이도 따라 헤실헤실 웃었다.


카이는 나에게 하와이의 맑은 바다 같은 영어 단어들을 선물해 주었다. 카이의 입술 끝에서 맴도는 부드러운 발음들은
내 귓가에 몽글몽글한 음표처럼 내려앉았다.





시간은 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빠르게 흘렀다.
가을의 붉은 낙엽을 지나, 하얗게 눈이 내리던 겨울을 건너,
다시금 초록빛이 돋아나는 봄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가장 친밀한 번역기가 되어주었다.


이제 카이는 사투리 섞인 한국어 농담을 던질 줄 알았고,
나는 번역기 없이도 카이와 막힘없는 프리토킹이 가능해졌다.
우리의 거리감은 딱 맞물린 퍼즐처럼 완벽하게 0에 수렴해 있었다.


"벌써 1년이 지났네..."


창가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에
카이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흩날렸다.
1년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우리는 늘 그렇듯 노을이 길게 드리운 교실에
단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카이는 이제 웬만한 한국어는 한국인처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은우야, 나 이제 한국어 진짜 잘하지?"


"응, 완전. 현지인이라 해도 믿겠어!"


장난스레 웃으며 카이의 노트를 톡톡 두드렸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리다가 이내 코끝이 찡해졌다.


여태까지 우리를 이어주던 언어라는 실타래가
이젠 단단한 먀듭이 된 것 같아서.


나는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웃어 보였다.


"카이, 이제 우리 마지막 수업이잖아.
혹시 마지막으로 더 알아보고 싶은 한국말이나 단어 있어?
뭐든지 다 알려줄게."


내 질문에 카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노을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카이의 눈동자에
오롯이 내 모습만이 담겨 있었다.
심장이 멋대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카이는 대답 대신 천천히 상체를 숙여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살짝 스친 손끝에서 찌릿한 열감이 피어올랐다.
카이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거리.


카이가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What's your love language?"
(너의 사랑의 언어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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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RROW X TOGETHER
♡LOVE LANGU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