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끝난 뒤 호텔 로비는
빠르게 조용해졌다.
장비가 빠져나가고,
라운지 테이블이 정리되고,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주 머릿속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최연준입니다.”
그 한 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가명으로만 존재하던 사람이
오늘은 너무 쉽게 자기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주가 먼저 끌어냈다.
-
“여주 씨.”
매니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여주는 돌아섰다.
“네.”
“아까 촬영 때 고생했어요.
근데 다음부터는 질문 대본 맞춰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잠깐 여주를 보더니 말했다.
“아니에요 ㅎㅎ 도와 주셔서 감사해요,
단지 연예인 촬영은 괜히 오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평범했지만,
이상하게 조금 더 무겁게 들렸다.
“알겠습니다.”
여주는 고개를 숙였다.
-
그날 저녁.
근무 교대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프론트에 전화가 걸려왔다.
“프론트입니다.”
잠깐 정적.
그리고 낮은 목소리.
“…여주 씨.”
심장이 바로 알아들었다.
연준이었다.
여주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고객님,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작은 웃음이 났다.
“고객님 아니잖아요.”
“지금은 맞습니다.”
“…그래요?”
잠깐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밖에 잠깐 나올 수 있어요?”
여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업무 중입니다.”
“그럼 퇴근 후.”
“…”
“오늘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 말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여주는 결국 짧게 말했다.
“…언제요.”
“로비 밖 벤치.
퇴근 시간 맞춰 있을게요.”
전화가 끊겼다.
-
밤 9시 10분.
여주는 호텔 정문을 나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
벤치 하나.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
연준이었다.
모자도 없이,
후드티에 청바지.
완전히 평범한 차림.
그는 여주를 보자마자 일어났다.
“…나오셨네요.”
“잠깐만입니다.”
여주는 거리 두듯 서 있었다.
연준은 한 걸음 다가왔다.
“…오늘 미안했어요.”
“뭐가요.”
“촬영.”
“그건 업무였습니다.”
“아니요.”
연준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잖아요.”
여주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웃었다.
아주 작게.
“지금 걱정하시는 게 그거예요?”
“…네?”
“제가 곤란해질까 봐? ”
연준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정적.
차 지나가는 소리만 멀리서 들렸다.
여주는 잠깐 벤치를 봤다.
그리고 앉았다.
“…5분만요.”
연준도 옆에 앉았다.
둘 사이엔
한 사람 정도 거리.
“아까 이름 말했을 때.”
여주가 말했다.
“놀랐죠?”
연준이 웃었다.
“솔직히요?”
“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왜요.”
“…여주 씨가 일부러 한 줄 알았거든요.”
“아니었어요.”
여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입에서 나왔어요.”
잠깐 정적.
연준이 천천히 말했다.
“…그럼 이제 알죠.”
“뭐를요.”
“우리가 언제까지 모르는 척
못 한다는 거.”
여주는 그 말을 듣고
벤치 앞 바닥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알아요.”
연준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는 말을 멈췄다.
“…그래도 계속 볼 거죠?”
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예약은 하셔야죠.”
잠깐.
연준이 웃었다.
진짜로.
-
그날 밤.
호텔 예약 시스템에
새 예약이 하나 들어왔다.
[예약자: 최연준]
가명 없이.
[객실 요청사항]
1205호
가능하면 프론트 여주 근무일에 체크인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