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나는 계속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까부터 계속 같이 걸어왔다는 것도, 바로 옆에 상원이 있다는 것도, 전부 다 꿈처럼 느껴졌다.
“여기 맞아요.”
상원이 멈춰 서며 말했고, 나는 안내문과 건물을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맞네요.”
이제 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선배.”
내가 먼저 입을 열려던 순간, 상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서연.”
“…네?”
“우리, 예전에 본 적 있죠. 고등학교 때.”
순간 숨이 멎은 것 같았다.
“…네…?”
상원은 잠깐 나를 바라보더니,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계단 쪽에서 자주 봤던 것 같은데, 항상 이어폰 끼고 다니던 애.”
심장이 크게 흔들렸다.
기억하고 있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맞아요…”
겨우 대답하자, 상원이 작게 웃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조용했네요. 말 걸면 도망갈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움이랑 놀람이 동시에 올라와서 머리가 하얘졌다.
상원이 가볍게 덧붙였다.
“근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어요. 계속 눈 마주치면 피하길래.”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땐 진짜 피한 거 맞아요.”
“왜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좋아해서요.”
말해버리고 나서야 심장이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왜 지금 말했지.
상원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역시 그런 거였구나.”
“…네?”
“티 났어요. 생각보다 많이.”
나는 결국 얼굴을 완전히 숙였다.
“지금도 그래요, 나 보면 계속 긴장하잖아요.”
“…그건… 선배라서…”
“선배 말고 상원.”
그가 자연스럽게 말을 끊었다.
“…아…”
“앞으로 계속 볼 건데, 언제까지 그렇게 긴장하려고요.”
나는 대답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상원이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
“적응하게 해줄게요. 나한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는 거의 뛰듯이 강당을 나왔다.
혹시라도 먼저 가버렸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상원은 그대로 있었다.
벽에 기대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보이니까 더 낯설게 느껴졌다.
“…선배, 아니… 상원.”
내가 조심스럽게 부르자 상원이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집중이 안 돼서요.”
“왜요?”
“…그냥요…”
말을 흐리자, 상원이 웃었다.
“가요. 배고프죠.”
이번엔 자연스럽게 옆에 나란히 서서 걸었다.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식당에 들어가 마주 앉았을 때도 처음보다는 덜 어색했다.
상원이 메뉴판을 넘기며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니면 내가 골라도 돼요?”
“선배가, 아니 상원 오빠가 편한 걸로요.”
“오, 이제 잘 부르네.”
그가 웃으면서 주문을 마쳤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잠깐의 정적이 흐르다가, 상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근데 아까 말한 거, 진짜예요? 좋아했다고.”
“…네…”
“언제부터?”
나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2학년 때부터요. 체육대회 때 처음 보고…”
상원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꽤 오래네.”
“…네…”
“그래서 계속 피해 다닌 거예요?”
“네… 눈 마주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말하다가 멈췄다.
너무 솔직했나 싶어서.
그런데 상원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도 그래요?”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상원이 웃었다.
“다행이다.”
“…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순간,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네?”
상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던데. 나 보는 눈이 너무 티 나서.”
“…!”
나는 급하게 물을 마셨다.
상원이 작게 웃었다.
“근데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좋아.”
그 말 한마디에
심장이 다시 크게 뛰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내내 분위기는 점점 더 편해졌다.
상원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나는 점점 더 솔직하게 대답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서연.”
“…네?”
“이제 도망 안 가죠?”
“…안 갈게요.”
“약속?”
“…네, 약속.”
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도 안 도망갈게요.”
그 말이 이상하게 의미 있게 들렸다.
식당을 나와서 걷다가, 상원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번호 줄래요? 같은 과면 연락할 일 많을 것 같아서.”
“네.”
이번엔 망설임이 없었다.
서로 번호를 저장하고, 상원이 내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게 내 번호니까 저장해요.”
“…상원 오빠로요?”
“응, 선배 말고.”
나는 천천히 이름을 입력했다.
상원 오빠.
이제 내 연락처에 있는 이름.
헤어지기 전에, 상원 선배 다시 나를 불렀다.
“서연.”
“…네?”
“다음에 또 밥 먹어요. 이번엔 내가 아니라, 네가 메뉴 고르는 걸로.”
“…네, 좋아요.”
조금 더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상원이 만족한 듯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는데도, 오늘 하루가 계속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선배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같이 밥을 먹고,
웃고,
이름을 부르고,
“…이거 진짜 맞지…”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상원]
집 잘 들어갔어요?
[서연]
네 잘 들어왔어요 :)
상원 선배
[상원]
이제 선배 말고 상원 오빠
[서연]
네… 상원 오빠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우리 사이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걸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