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었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양여주는 지도를 보면서 걷고 있었는데, 사실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잃고 있었다.
"아니 동아리 박람회가 왜 이렇게 멀어…"
투덜거리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건물 중에서 제일 낡아 보이는 곳 앞에 와 있었다.
여주는 잠깐 멈췄다.
소리가 들렸다.
둥. 둥둥. 쿵.
드럼 소리였다.
여주는 별생각 없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여주는 자기도 모르게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한 남자가 혼자 드럼을 치고 있었다.
뒷모습이었다.
넓은 어깨.
땀에 젖은 셔츠.
박자에 맞춰 까딱이는 고개.
여주는 숨을 참았다.
왜 못 지나가지 나.
스스로한테 물어봤는데 대답이 안 나왔다.
그냥 — 눈을 못 뗐다.
드럼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남자의 팔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쿵.
마지막 한 박자.
침묵이 왔다.
여주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여주는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잘생겼다.
여주의 머릿속에 든 첫 번째 생각이었다.
두 번째 생각은 —
나 지금 들켰다.
남자가 피식 웃었다.
"구경하려면 들어와서 해요."
여주는 도망쳤다.
정확히는 "아 저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어요 실례했습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말이 안 나와서 그냥 몸이 먼저 돌아서 버렸다.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못 들은 걸로 했다.
동아리 박람회는 결국 못 갔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뒷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둥. 둥둥. 쿵.
드럼 소리가 귓속에 맴돌았다.
"아 진짜 왜 이래."
여주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소용없었다.
다음 날 아침.
여주는 동아리 신청서를 들고 그 낡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신청서 제목 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밴드부]
"…내가 미쳤나."
중얼거렸다.
악기도 못 다루면서.
드럼은 당연히 못 치고.
기타도 베이스도 건반도 다 모르면서.
근데 손이 먼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었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형광등 불빛이었다.
두 번째는 악기들.
세 번째는 —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였다.
"어."
남자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제 그 사람이네."
어제 드럼 치던 그 사람. 부장이라는 그의 이름은...
최승철.
오늘은 뒷모습이 아니라 정면이었는데.
정면도 잘생겼다.
왜지.
여주는 신청서를 꽉 쥐었다.
"저, 밴드부 들어오고 싶어서요."
최승철이 여주를 위아래로 한 번 봤다.
"악기 뭐 다뤄요?"
"…없어요."
"없어요?"
"네."
침묵이 흘렀다.
최승철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 안쪽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야 에스쿱스! 스틱 어디다 뒀어 또!"
여주는 순간 멈칫했다.
에스쿱스…?
외국인인가?
최승철은 그쪽을 보면서 "야 니가 가져갔잖아" 하고 쏘아붙였다.
여주 눈치를 챈 옆의 부원 하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 얘 활동명이야. 본명은 최승철."
"아…"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승철. 에스쿱스.
왠지 둘 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최승철이 다시 여주를 봤다.
"악기는 못 다뤄도 돼요. 우리 잡일 할 사람 필요하거든."
"잡일이요?"
"응. 할 수 있어요?"
여주는 1초 생각했다.
드럼 치는 거 또 볼 수 있을까.
그 뒷모습.
"네."
대답이 먼저 나왔다.
최승철이 피식 웃었다.
어제 그 웃음이랑 똑같았다.
그렇게 양여주는 밴드부가 됐다.
악기도 못 다루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 뒷모습 하나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