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재/ 태잔 명재현]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7화

"그러니까 사람 신경 쓰이게 하지 마."

태산의 작은 목소리는 잠든 명재현에게 닿지 않았다.

태산은 한동안 천장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조금 전 들었던 말만 계속 맴돌았다.

너랑 있는 게 더 편한 것 같아.

술에 취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의미를 붙이고 싶어졌다.

태산은 결국 눈을 감았다.

'술 취해서 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했다.

그런데 마음은 이상하게 납득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태산아."

"..."

"일어나."

태산이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명재현이 서 있었다.

"몇 시야?"

"8시."

태산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

"수업 9시잖아."

"응."

"근데 왜 안 깨웠어."

명재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깨우고 있잖아."

"더 일찍."

"왜?"

"늦으면..."

태산은 말을 멈췄다.

명재현이 웃었다.

"늦으면?"

"...몰라."

"이상하네."

명재현은 잠시 태산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근데 너 어제 기억나?"

태산의 표정이 굳었다.

"뭐가."

"내가 뭐라고 했는지."

"..."

"나 술 마시고 이상한 말 안 했지?"

태산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했어."

"뭐?"

"많이."

명재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진짜?"

"응."

"내가 뭐라고 했는데?"

태산은 명재현을 바라봤다.

어제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너랑 있는 게 더 편한 것 같아.

그 말을 그대로 전하기엔 괜히 민망했다.

그래서 태산은 짧게 말했다.

"나랑 있는 게 편하다고."

"..."

명재현의 귀가 빨개졌다.

"내가 진짜 그랬어?"

"응."

"미쳤다."

명재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태산은 그런 모습을 보며 물었다.

"왜."

"그런 말을 왜 했지..."

"싫었어?"

명재현이 손을 내렸다.

"뭐?"

"나랑 있는 게 편하다는 거."

명재현은 잠시 태산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아니."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진짜 편해서 그런 말 한 것 같은데?"

태산의 심장이 순간 내려앉았다.

"진짜?"

"응."

명재현은 옷을 챙기며 말했다.

"우리 친해졌잖아."

그 한마디에 태산은 괜히 안도했다.

그런데 동시에 조금 아쉬웠다.

친해서 편한 것.

그 이상은 아니라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며칠 뒤.

축제를 앞두고 학교는 더 바빠졌다.

명재현은 과 행사 준비 때문에 하루 종일 학교에 붙잡혀 있었다.

"재현아! 이것 좀 들어줘."

"잠깐만!"

"사진도 찍어줘!"

"응!"

태산은 강의가 끝난 뒤 학생회관 앞을 지나가다 그 모습을 발견했다.

명재현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서윤이 있었다.

"재현아, 이거 같이 들자."

"고마워."

"너 혼자 했으면 진짜 큰일 났겠다."

"그러게."

둘이 웃었다.

태산은 걸음을 멈췄다.

또였다.

왜 계속 저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그때 명재현이 태산을 발견했다.

"태산아!"

명재현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태산도 멈춰 섰다.

"뭐 해?"

"축제 준비."

"힘들겠다."

"응. 근데 재밌어."

명재현이 웃었다.

그 순간 서윤이 자연스럽게 말했다.

"재현아, 이것도 같이 옮기자."

"어, 잠깐만."

명재현이 태산을 돌아봤다.

"나 이것만 하고 갈게."

"그래."

태산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대로 돌아섰다.

"태산아?"

명재현이 불렀지만 태산은 손만 들어 보였다.

저녁이 되어 기숙사에 돌아온 명재현은 태산을 보자마자 물었다.

"너 오늘 왜 그냥 갔어?"

"뭘."

스토리 핀 이미지

"학교에서."

"바빠 보여서."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태산이 고개를 들었다.

"기다렸어?"

"응."

명재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같이 밥 먹으려고."

태산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근데 네가 서윤이랑..."

"서윤?"

명재현이 웃었다.

"걔 그냥 친구야."

"알아."

"근데 왜."

태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재현이 한 발 다가왔다.

"혹시..."

"뭐."

"질투했어?"

태산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근데."

"아니라고."

"귀 빨개졌는데?"

"더워."

"에어컨 켰는데?"

태산은 결국 고개를 돌렸다.

명재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이상해."

"뭐가."

"맨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다 티 나."

태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명재현은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생각했다.

'태산이가 왜 서윤이를 신경 쓰지?'

처음에는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태산은 원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와 있는지는 신경 썼다.

늦게 들어온 날에는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도 자신에게 더 기울여 줬고.

잃어버린 물건도 대신 챙겨줬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자신이 편하다고 하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명재현은 반대편 침대를 바라봤다.

태산은 이미 누워 있었다.

"태산아."

"...왜."

"안 자?"

"자려고."

"어제 내가 한 말."

태산의 눈이 살짝 떠졌다.

"왜."

"진짜였어."

태산이 몸을 돌렸다.

"뭐가."

명재현은 잠시 망설였다.

"너랑 있는 게 편하다는 거."

"..."

"술 때문 아니야."

태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재현은 작게 웃었다.

"나 서울 처음 올라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모든 게 낯설었잖아."

"응."

"근데 너랑 같이 지내다 보니까..."

잠시 말을 고르던 명재현이 말했다.

"네가 있어서 덜 외로운 것 같아."

태산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래서."

"그냥 고맙다고."

명재현은 이불을 끌어올렸다.

"잘 자."

"...너도."

태산은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확실했다.

어제의 말도.

오늘의 말도.

전부 진심이었다.

명재현은 자신과 함께 있는 게 편하다고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이상하게 벅찼다.

그런데 동시에 욕심이 생겼다.

나만 편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먼저 찾았으면 좋겠다.

자신과 있을 때 가장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태산은 그 생각이 들자 스스로도 당황했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단순한 룸메이트에게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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