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재/ 태잔 명재현]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낯선 서울, 너와 같은 방 3화

대학교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바빴다.

명재현은 아침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홍보 부스를 구경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반면 태산의 하루는 늘 비슷했다.

수업.

과제.

도서관.

그리고 기숙사.

"너 진짜 재미없게 산다."

어느 날 저녁, 방에 돌아온 명재현이 침대에 털썩 누우며 말했다.

책상 앞에 앉아 코딩 과제를 하던 태산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맨날 똑같잖아."

"해야 할 게 있으니까."

"대학생이면 좀 놀기도 해야지."

"너는 너무 많이 놀고."

"그게 대학 생활이지."

명재현은 웃으며 태산의 책상 옆을 지나갔다.

그러다 책상 위에 쌓인 전공 책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와..."

"왜."

"이거 다 읽는 거야?"

태산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응."

"진짜 대단하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말하려던 명재현은 잠시 멈췄다.

태산의 책상 위에는 빈틈이 없었다.

수업 자료, 필기 노트, 과제 파일.

모든 게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자신과는 정반대였다.

"너 원래 이렇게 열심히 했어?"

"뭐가."

"공부."

잠시 침묵하던 태산이 대답했다.

"해야 하니까."

짧은 말.

하지만 이상하게 명재현은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명재현은 예대 과제로 정신이 없었다.

"아..."

카메라를 들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망했다."

마감은 내일.

교수님이 원하는 건 단순한 예쁜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담긴 사진'이었다.

하지만 명재현은 그게 어려웠다.

사람을 좋아하는 자신이 정작 사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명재현은 캠퍼스 벤치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뭘 찍어야 하지..."

그때.

찰칵.

익숙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태산이 서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명재현이 놀라 물었다.

"지나가다가."

"공대가 여기까지 지나갈 일이 있어?"

태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재현은 태산 손에 들린 노트북 가방을 바라봤다.

스토리 핀 이미지

"설마 나 찾으러 온 건 아니지?"

"..."

"맞네?"

"아니."

"근데 왜."

태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방에 네 지갑 두고 갔다."

명재현은 주머니를 확인했다.

"어?"

진짜 없었다.

"큰일 날 뻔했다."

"그러니까 물건 좀 잘 챙겨."

"맨날 잔소리하네."

"맨날 잃어버리니까."

명재현은 투덜거리면서도 웃었다.

그러다 태산의 카메라를 발견했다.

스토리 핀 이미지

"근데 너 사진 찍었어?"

"아니."

"방금 셔터 소리 났는데?"

태산은 잠시 침묵했다.

"그냥."

"뭘 찍었는데?"

명재현이 카메라를 보려고 다가가자 태산이 살짝 피했다.

"안 봐도 돼."

"왜?"

"별거 아니야."

그 반응이 오히려 더 궁금했다.

"보여줘."

"싫어."

"룸메 사이에 비밀이 어딨어."

"있어."

"있다고?"

명재현은 웃으며 태산을 바라봤다.

차갑기만 한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예상 밖의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태산은 한숨을 쉬며 카메라를 내밀었다.

"하나만."

명재현이 화면을 확인했다.

사진 속에는 캠퍼스 풍경이 담겨 있었다.

노을이 지는 운동장.

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

그리고...

사진 한가운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명재현은 순간 말을 잃었다.

"이거..."

"지워도 돼."

"아니."

명재현은 화면을 다시 봤다.

"왜 나 찍었어?"

태산은 시선을 피했다.

"그냥."

"태산아."

"..."

"너 생각보다 사진 잘 찍는다."

그 말에 태산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

"당연하지."

"뭐야. 칭찬하니까 바로 받아?"

"사실이니까."

명재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이었다.

태산이 농담처럼 느껴진 순간.

그날 밤.

명재현은 과제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옆 침대에서는 태산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태산아."

"왜."

"너 친구 없어?"

"..."

"아니, 궁금해서."

"있어."

"진짜?"

"응."

"몇 명?"

태산은 잠시 고민했다.

"...한 명."

명재현은 피식 웃었다.

"그 한 명 나 아니지?"

"..."

"아직 아니구나."

태산은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시끄러워."

하지만 명재현은 알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졌다는 걸.

태산은 여전히 무뚝뚝했고.

명재현은 여전히 정신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방에 있는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낯선 서울에서 만난 가장 이상한 사람.

그리고 어쩌면 가장 편한 사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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