怪物的愛人

別管它了。

빗자루 모습의 정령을 만난 다음날 바로 내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인간들 사이에 모습을 감춘 카이가 
은우린이 내게 시비를 걸때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 

오늘따라 범규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일진들을 혼내주는 일을 그 애가 도맡아 하게 되었다. 

"아악!! 시발 자꾸 왜이래??!"

"이제 슬슬 무서워하고 있네요. 하긴 허공에서 
 자꾸 넘어지니 그럴만할지도?" 

이게 정령이냐 악마냐. 저 귀여운 얼굴로 웃으며 
재밌어하는게 영 안 어울렸다. 

"서박하 때문에 그러는거 아냐? 쟤 귀신 보잖아." 

"오 맞는거 같아." 

"야 우린아 쟤한테 떨어져 부정탈라." 

참으로 고맙다, 무시해줘서.. 괴롭힘 당하는거 
보다는 무시가 낫지. 
어찌됐든 나를 피해주니 조금 편하게 지낼수 있겠다. 

"수고했어 카이야." 

"에이 이정도는 약과죠!" 

카이가 내 옆에서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보면 볼수록 참 해맑단 말이야. 

"저 사람들 더 혼내주면 안되는..." 

"쓰읍. 안돼." 

"히잉." 

아무리 착한 정령이라도 인간의 윤리관과는 차이가 
있을수 있으니까. 더 심한 짓까지 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브레이크를 거는 수 밖에. 

"그래도 저는 힘든 애들을 두고 볼수 없거든요. 
 저런 거요." 

카이는 손으로 운동장 옆 공터를 가리켰다. 
거기엔 깡패처럼 보이는 무리들 사이에 쓰러진 
한 남학생이 있었다. 

"어어? 큰일난거 같은데..!" 

"잠깐 도와주고만 올게요." 

"뭐?" 

반딧불로 변한 그가 순식간에 남학생이 있는 공터로 
향했다. 으음, 괜찮으려나. 
걱정이 된 나는 몰래 학교 뒷문을 빠져나와 카이를 
따라갔다. 



숨을 몰아쉬며 공터 귀퉁이로 도착한 그때 이미 
깡패 무리는 사라진 뒤였다. 얻어맞아서 온몸이 
흙먼지와 상처로 뒤덮인 남학생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뿐. 
카이가 상처 부위를 하나씩 짚으며 쓸어내리자 
신기하게도 상처가 아물었다. 

"으으.." 

"괜찮아? 많이 아파?" 

얼굴을 찡그린 남학생이 겨우 몸을 일으켜 우리를 
쳐다본다. 1학년용 초록색 명찰에 흘끗 눈길이 갔다. 
'강태현' 이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너넨 또 뭔데." 

"그냥 쓰러져있길래 걱정되서." 

"참나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신경 꺼."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 고맙다고 말하진 못할 망정. 

"엥, 내가 기껏 도와줬더니!" 

그는 이제서야 자기 몸에 있던 상처가 나은걸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정체가 뭐야." 

"정령." 

"허, 정령이 괴물도 도와주나." 

방금 뭐라고 한거지? 

"괴물이라니 무슨.." 

"어둑시니라는 괴물이에요. 어둠 속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살죠." 

나는 설명을 듣고 남학생을 다시 살펴봤다. 
칠흑같이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안경을 쓴
눈 밑에 다크써클이 내려앉아 푹 꺼진 것 처럼 보이는 것 
빼고는 특별한건 없어보였다. 

"보니까 이쪽은 무당 피네. 어쩐지 정령 나부랭이를 
 달고 다니더라." 

"!어떻게 알았어." 

"그건 됐고 말 나온김에 충고 하나 한다. 
 내가 죽든 말든 그냥 내버려둬." 

"......" 

"고맙긴한데 앞으로 마주치진 말자." 

가방을 둘러멘 남학생, 아니 어둑시니는 금이 간 
안경을 고쳐쓰고 자리를 떠났다. 
묘하게 날이 선 듯한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쓰였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