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범규] 아리도록

5화. 이 마음은 무엇인지

한 달이 다 되어가자, 범규의 몸은 완전히 나은 듯 보였다.

걸음걸이에 흐트러짐이 없었고, 눈빛에도 다시 힘이 돌아와 있었다.

땀에 젖도록 장작을 패도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았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걸음에도 예전의 위태로움이 사라졌다.

 

단이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러다 우리 집 힘쓰는 일은 저 사람이 다 하겠어요."

 

여주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굳이 곁을 지키지 않아도 될 만큼 그가 건강해졌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서운했다.

몸이 다 나으면 언젠가 이 집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 탓이었다.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게, 스스로도 낯설었다.

여주는 그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다시 하던 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날 저녁,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던 여주가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별자리, 이름이 뭔지 아세요?"

 

범규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북두칠성이네요."

 

여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그건 어떻게 아세요? 기억도 없다면서."

 

아차 싶었는지, 범규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야, 떠돌아다니다 어디서 주워들었나 보죠. 저도 신기하네요."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손님은."

 

여주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범규는 괜히 딴청을 부리며 헛기침을 했다.

여주가 결국 픽 웃고 넘어갔다. 요즘 들어 이런 실없는 대화가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손님은 정말…… 처음 봤을 때랑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처음엔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때랑 비교하면 다행 아닙니까."

"그런 말고요. 그때는 뭔가, 손댈 수 없이 슬퍼 보였는데."

 

범규의 웃음이 잠시 옅어졌다가, 이내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가씨 눈에만 그리 보인 걸지도 모르죠."

 

 

 

*

 

 

 

며칠 뒤, 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범규의 옷깃 사이로 무언가 옅게 반짝였다.

여주는 그 빛에 저도 모르게 눈이 갔다.

 

"손님, 그거 뭐예요?"

 

범규가 흠칫하며 얼른 옷깃을 여몄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숨기세요?"

 

여주가 장난스레 웃으며 손을 뻗자, 범규는 슬쩍 몸을 피했다.

 

"아가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럼 순순히 보여주시든가요."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결국 여주가 옥패를 뻇었다

여주는 손바닥 위에 놓인 옥패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예쁘네요. 이거 어디서 나신 거예요?"

 

"…모르십니까, 이 옥패?"

 

범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제가 알아야 하나요?"

 

되묻는 여주의 얼굴엔 정말 아무런 기억도 없어 보였다.

범규는 애써 웃으며 옥패를 도로 옷깃 안에 넣었다.

 

"아닙니다. 그냥…… 오래된 물건이라서요."

"근데 신기하긴 해요. 기억도 없으신 분이 이런 걸 어떻게 여태 지니고 계셨을까."

"…그러게요. 저도 그게 신기합니다."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지만, 여주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손님한테는 소중한 물건인가 봐요.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는 거 보면."

"…예. 아마도, 제일 소중한 걸 겁니다."

 

그 대답이 너무 진지해서, 여주는 순간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머쓱하게 웃었다.

 

"뭐예요, 갑자기 분위기 잡고."

"분위기 잡은 적 없습니다. 그냥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만."

 

여주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캐묻지 않고 돌아섰다.

혼자 남은 범규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말 다 잊은 걸까. 그 여름날의 마당도, 그날의 약속도.

가슴 한쪽이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여주는 너무 어렸고, 세월은 너무 길었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서운한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숨긴 채, 그날도 새벽녘 범규는 인기척을 죽이며 사립문을 나섰다.

 

 

 

*

 

 

 

그 즈음 얕은 잠에서 깬 여주는 문득 옆방의 기척이 사라진 걸 느꼈다.

이상한 예감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마침 담을 넘어 들어오는 범규와 마주쳤다.

 

"…어디 다녀오세요, 이 시간에?"

 

범규가 순간 굳었다가, 이내 태연히 웃었다.

"잠이 안 와서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매일 밤 바람을 그렇게 오래 쐬세요?"

"밤바람이 좋아서요."

 

능청스러운 대답이었지만, 웃음 뒤로 스치는 긴장을 여주는 놓치지 않았다.

옥패도, 밤마다 사라지는 것도. 이 사람에겐 말하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알고 싶어질 뿐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언젠가는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방으로 돌아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며, 범규는 조용히 옷깃 속 옥패를 매만졌다.

차갑던 감촉이 손끝에서 서서히 온기를 되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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