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50화. 불안의 씨앗



태형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떤 이유로 김대표를 불렀는지

훈지씨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냥 훈지씨를 마주 보고,

떠오르는 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현관문을 들어섰다.




문앞에 그가 없었다.

집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거실로 들어가니

훈지씨가 식탁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뭐...해요.. 훈지씨?"





그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평상시의 그라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을 때 부터,

현관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화 났나...

말로는 이해하는 척 해도 속마음은 아닌 건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가 뭔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아..내 편지...'





"훈지씨, 혹시 그거 읽었어요?"





그제서야 그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먹먹한 얼굴로...





"이거... 나한테 쓴 거 맞죠?"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유치했죠?"





난 그가 지금 어떤 기분인 건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러웠다.





"...."





"훈지씨..왜 그래요?"





"이 편지에 쓰인 시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인 거죠?

 왜..

 그런데 왜 나는...

 나한테... 이별을 말하는 것처럼 들릴까요?"





그렇게 까지 생각할 거라고 예상 못 했는데,

너무 뜻밖이라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빌려 온 여름날은 짧기만 하다...>

 우린 여름에 만났고,

 당신이 저장한 내 이름도 'my summer'고...

 그래서 그 시가...
 
 더 나한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






나는 그의 섬세함에 다시 한 번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 훈지씨가 이 정도로 섬세하구나...

 그래서 연기도 그렇게 잘 하는 거였어."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이 사람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많이 상처 받게 되면 어쩌지...'





 "그 시는 앞 부분만 발췌 한 건데,

 전체를 다 읽어 보면,

 <여름은 짧지만 당신의 아름다움은

  여름과 비길 바 없이 영원하다> 라고 얘기해요."





"정말이죠?"





"내가 원문 다 써서,

 정식 러브레터로 줄께요.

 그럼 훈지씨 불안한 마음이 조금 줄어들까요?"






"그런데 나는 이 시를 읽을 때

 뭔가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으로

 읽히지가 않았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내게 손글씨로 직접 써 준 건 감동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그만큼 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나는 그가 알아차릴 까봐 내심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의 그런 마음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연인이라서...





하지만, 그의 불안감은 내게도 전달되어

내가 그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그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어느새 다시 질투 많은 박훈지가 되어 있었다.

 




"대표님 하고는 방금 전에 왜 만난 거에요?

 잠깐만...울었어요? 눈이 부은 거 같은데요?"





"아니..태형씨가 자꾸 섭섭하게 얘기하는 바람에..

 아니다...

 결국에는 내가 태형씨를 섭섭하게 만든 거였어요."






"무슨 얘기를 하려고 만나자고 한 건데요?."






"아!! 그게...

 이제 영어 수업 못 한다는 얘길 하려고요.

 어쨋든 내 본업은 번역인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고 있어서요."




나는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거 때문에 태형씨가 화가 좀 났고..

 말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지고 뭐...

 그래서 눈물이 좀 났어요."





"상황은 이해하는데...

 나는...정아씨가...

 다른 남자 앞에서 우는 모습은...

 안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솔직히... 좀 싫어요."






"생각해 보니 훈지씨 마음 이해돼요.

 나도 훈지씨가 다른 여자 앞에서 울면

 싫을 거 같아요."






"내가 다른 여자 앞에서 왜 울어요?

 그럴 일은 없어요."





"어떻게 그렇게 장담해요?

 얘기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다 보면 눈물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런거지.."





"그럼...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안 울께요.

 내 눈물은 정아씨 한테만 보여 줄께요.ㅎ"





"그런데...대표님 수업도 더 이상 안 한다구요?

 내가 둘이 같이 있는 거 싫다고 했을 때도..

 정아씨, 약속 지키려고 했었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다 안 한다고 했다구요?

 이건 당신답지 않은데...

 혹시...

 나한테 말 못 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빨리 떠나?" <51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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