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11화. 닭다리



“왜 그래요...갑자기?

 벌써 6개월이나 지났는데…”





훈지 씨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싸우고 나서 그냥 서로 

 냉랭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번에 정아 씨 휴대폰에 저장된 

 내 이름을 봤을 때도 그렇고,

 오늘 다른 사람이랑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는데…

 나랑은 더 이상 그렇게 웃지 않는구나.

 그제야… 

 우리가 정말 헤어진 게 맞구나 싶었어요.”

 


 
“다… 하나의 과정이죠.

연인에서 남이 되는 과정…”




나는 덤덤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남이요?”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놀란 표정과

섭섭한 표정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나는 아직 힘든 일이 생기면

 정아 씨가 생각나요.

 내가 얘기한 적 있었죠?”


“힘든 일이 있어도 친구나 가족한테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아 씨를 만나는 동안에는…

 정아 씨가 내 기분을 눈치채고

 먼저 물어보면 항상 다 털어놨는데…”





나는 그제야

아까 카페로 들어온 그의 모습이 이해됐다.






“오늘 힘든 일 있어서 온 거예요?”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였구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말해 봐요.

오늘은 친구로서 들어줄게요.”






“정아 씨한테

 나는…

 힘들 때 생각나는 남자친구였어요?”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떠올릴 필요도 없었어요.”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때 훈지 씨가 내 옆에 있었잖아요.”



“줄리앙 일로 힘들어했을 때도

 훈지 씨가 없었다면

 나는 혼자 못 견뎠을 거예요.”





나는 그의 손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훈지 씨는… 훌륭한 남자친구였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내 마음이,

내 위로가 그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랐다.





“그런데… 왜…”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훌륭한 남자친구였는데…

 왜 헤어지자고 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지 씨, 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훈지 씨 좋아하는 치킨 시켜 먹을래요?”





테이블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말해 봐요.”




그가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랬어요?”





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잠시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스타를 감당할 만한 

 인재가 아니라서 그래요.”




훈지씨는 내 대답을 듣고 

미간을 찌뿌렸다.




“뭐라고요?”





“진짜예요.”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대스타 만나는 거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맨날 바쁘지, 스캔들 나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내가 그런 대스타를 만나기엔…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나는 정말 심각하게 이야기한 건데,

그는 내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진짠데…”





한참을 웃고 나서야 진정한 그가 말했다.





“아… 오늘 스트레스 받은 거 다 날아갔다.

 왜 이렇게 웃겨요?

 너무 웃었더니 배가 다 고프네…”





“내가 그럴 줄 알고 훈지 씨 웃는 동안에

치킨 시켰어요.

그거 먹고 스트레스 날려요.

맥주도 함께 시켰는데…ㅎ”





“진짜로 시켰다고요?”





“응.”





잠시 후,

배달시킨 치킨과 맥주가 도착했다.





“요새 왜 이렇게 술을 자주 마셔요?”






“사실 그날 태형 씨랑 술 마신 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뭔데요? 둘이 뭐 있어요?”





“아니… 둘이 뭐 있는 게 아니라

 그날 영화사 건물에서

 훈지 씨랑 우연히 만났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좀 그래서

 태형 씨 불러내서 마신 거예요.

 나는 훈지 씨 아니면 술을 마실 일이 없어요.”





“어? 그러네…

 오늘도 내가 있어서 맥주를 시킨 거니까…ㅎ

 그런데 아직 나 보면 마음이 설레고

 그러니까 술을 마신 거죠?”





“뭐래?

 화가 나서 마신 거예요.

 헤어진 사람이 자꾸 질척대니까…”





“질척이요? 

 와…진짜 너무한다.

 근데 단어 선택이 너무 탁월해!

 앞으로도 나 계속 질척대야지!”





“참 나…

훈지 씨 이럴 때 완전 초딩 같아요…”





“그게 내 매력이지 않아요?”





나는 마시던 맥주를 뿜어 버렸다.





“아이… 이게 뭐예요? 진짜...

 치킨 혼자 다 먹으려고

 꼼수 쓴 거 아니에요?”





“아… 미안, 미안…

어떻게… 난리 났어…”




나는 내 실수에 당황해서

테이블과 훈지 씨 옷에 묻은 맥주를

열심히 닦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훈지 씨가 말했다.





“와~ 오늘 치킨 너무 맛있다.

정아 씨가 사주는 거라서 그런가…”





그는 흐뭇하게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아까 카페에 들어올 때

기운 없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장꾸 같은 훈지 씨로 돌아와 있었다.




‘우울한 마음이 사라졌으면 됐어요…’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맥주잔을 들었다.



 

“왜 또 여기서 만나?” <12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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