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11화. 닭다리

sophie97
2026.08.27조회수 74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벌써 6개월이나 지났는데…”
훈지 씨는 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싸우고 나서 그냥 서로
냉랭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번에 정아 씨 휴대폰에 저장된
내 이름을 봤을 때도 그렇고,
오늘 다른 사람이랑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는데…
나랑은 더 이상 그렇게 웃지 않는구나.
그제야…
우리가 정말 헤어진 게 맞구나 싶었어요.”
“다… 하나의 과정이죠.
연인에서 남이 되는 과정…”
나는 담담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남이요?”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놀란 표정과
섭섭한 표정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나는 아직 힘든 일이 생기면
정아 씨가 생각나요.
내가 얘기한 적 있었죠?”
“힘든 일이 있어도 친구나 가족한테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아 씨를 만나는 동안에는…
정아 씨가 내 기분을 눈치채고
먼저 물어보면 항상 다 털어놨는데…”
나는 그제야
아까 카페로 들어온 그의 모습이 이해됐다.
“오늘 힘든 일 있어서 온 거예요?”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였구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말해 봐요.
오늘은 친구로서 들어줄게요.”
“정아 씨한테
나는…
힘들 때 생각나는 남자친구였어요?”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떠올릴 필요도 없었어요.”
그가 눈을 크게 떴다.
“그때 훈지 씨가 내 옆에 있었잖아요.”
“줄리앙 일로 힘들어했을 때도
훈지 씨가 없었다면
나는 혼자 못 견뎠을 거예요.”
나는 그의 손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훈지 씨는… 훌륭한 남자친구였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내 마음이,
내 위로가 그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랐다.
“그런데… 왜…”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훌륭한 남자친구였는데…
왜 헤어지자고 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지 씨, 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훈지 씨 좋아하는 치킨 시켜 먹을래요?”
테이블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말해 봐요.”
그가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랬어요?”
나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잠시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스타를 감당할 만한
인재가 아니라서 그래요.”
훈지 씨는 내 대답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진짜예요.”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대스타 만나는 거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
맨날 바쁘지, 스캔들 나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내가 그런 대스타를 만나기엔…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나는 정말 심각하게 이야기한 건데,
그는 내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진짠데…”
한참을 웃고 나서야 진정한 그가 말했다.
“아… 오늘 스트레스 받은 거 다 날아갔다.
왜 이렇게 웃겨요?
너무 웃었더니 배가 다 고프네…”
“내가 그럴 줄 알고 훈지 씨 웃는 동안에
치킨 시켰어요.
그거 먹고 스트레스 날려요.
맥주도 함께 시켰는데…ㅎ”
“진짜로 시켰다고요?”
“응.”
잠시 후,
배달시킨 치킨과 맥주가 도착했다.
“요새 왜 이렇게 술을 자주 마셔요?”
“사실 그날 태형 씨랑 술 마신 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뭔데요? 둘이 뭐 있어요?”
“아니… 둘이 뭐 있는 게 아니라
그날 영화사 건물에서
훈지 씨랑 우연히 만났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좀 그래서
태형 씨 불러내서 마신 거예요.
나는 훈지 씨 아니면 술을 마실 일이 없어요.”
“어? 그러네…
오늘도 내가 있어서 맥주를 시킨 거니까…ㅎ
그런데 아직 나 보면 마음이 설레고
그러니까 술을 마신 거죠?”
“뭐래?
화가 나서 마신 거예요.
헤어진 사람이 자꾸 질척대니까…”
“질척이요?
와…진짜 너무한다.
근데 단어 선택이 너무 탁월해!
앞으로도 나 계속 질척대야지!”
“참 나…
훈지 씨 이럴 때 완전 초딩 같아요…”
“그게 내 매력이지 않아요?”
나는 마시던 맥주를 뿜어 버렸다.
“아이… 이게 뭐예요? 진짜...
치킨 혼자 다 먹으려고
꼼수 쓴 거 아니에요?”
“아… 미안, 미안…
어떻게… 난리 났어…”
나는 내 실수에 당황해서
테이블과 훈지 씨 옷에 묻은 맥주를
열심히 닦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훈지 씨가 말했다.
“와~ 오늘 치킨 너무 맛있다.
정아 씨가 사주는 거라서 그런가…”
그는 흐뭇하게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아까 카페에 들어올 때
기운 없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장꾸 같은 훈지 씨로 돌아와 있었다.
‘우울한 마음이 사라졌으면 됐어요…’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맥주잔을 들었다.
“왜 또 여기서 만나?” <12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