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67화. 훈지의 오해


오랜만에 훈지 씨와

함께 보내는 주말이었다.





우리는 외출 대신 여유롭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물론 훈지 씨와 주말 대낮에 외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귀찮아서 안 나가는 것처럼

집에 있는 걸 즐기고 있었다.





또 본인이 쉐프가 되겠다는 것을

억지로 말리고 있자니,

이쯤 되면 연기인가 싶기도 했다.





김치볶음밥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





그 때 훈지 씨가 불쑥 말을 꺼냈다.




"참, 정아 씨가 누나를 만난 후부터

 누나한테 연락이 안 와요."





"정말요? 그럼 다행이네요."





"무슨 수를 쓴 거에요?"





"그건 나중에 얘기할게요.

 그런데 누님에게는

 우리 지금 헤어져 있는 상태인 거 알죠?

 괜히 말 실수하면 안 돼요. 알았죠?"






"요새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요?"






"내가? 무슨 비밀이요?"






"지금 누나 일도 그렇고...

 어제 미겔 일도 나중에 이야기한다고 했잖아요."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잖아요.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닐 뿐이에요."






"정아 씨, 알고 보니 전략가였네."

"그런데...

 나는 정아 씨 언니를 만나면 안 되는 거에요?"






"그 맞선남을 그렇게 보냈는데...

 언니가 훈지 씨를 만나겠다고 할까요?"






"우선 약속만 잡아줘요."




훈지 씨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누나들 마음 사로 잡는 데는 전문가에요.

  알죠?"





나는 훈지 씨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첫번째 누나가 나 아니에요?"





"과연 당신이...첫 번째일까요?"





"뭐라구요?"




나는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나한테 질투 많다고 하는데

 정아 씨도 질투 장난 아니게 많아요.

 이런 장난에도 저렇게 정색하면서..."





"장난 맞는 거에요?"





"그럼요. 나는 연하 전문이었어요."





"와... 연하고 연상이고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울렸는지

 감도 안 옴."





훈지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를

소파에 앉히고 영화를 시작했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말랑한 로맨스 영화를 보며

훈지 씨 어깨에 기대어 있다가

또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이거 또 놀림감이 되겠구나'


하는 직감이 왔는데

알고 보니 훈지 씨도 함께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일어났다.





그가 푹 잘 수 있도록

나는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번역 일을 시작했다.





햇빛이 쉬폰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조용한 토요한 늦은 오후,

내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 들렸다.





너무 적막한 느낌이 들어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은 순간,

훈지 씨가 꼼지락거리며 잠에서 깼다.






"박훈지~ 또 영화 보면서 잤대요~"





"하!! 정아 씨가 잠든 거 보고

 내가 안심하고 잔 거거든요."





"아... 진짜? 아깝다...

 놀릴 거리였는데..."





기지개를 펴면서 그가 말했다.





"그런데 이상해요.

 정아 씨 집에서 자면 꿀잠 자요."





"여친 집에서는 흥분해서

 잠이 안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꿀잠 자는 게 맞는 건가?"






"흥분? 왜 흥분하는 거죠?"





훈지 씨는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놀리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니... 이성 친구 집이니까 그렇다는 거죠."




나는 괜히 '흥분'이라고 말했다가

그의 놀림을 피하느라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툭하면 제리를 쫓아다니는 톰처럼,

훈지 씨는 나를 놀리고

나는 제리처럼 도망 다녔다.






그날 밤 미겔은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에도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집을 나선 상태였다.




훈지 씨 역시 이른 촬영이 있어

샵에 가야 한다며 새벽에 집을 나섰다.





나는 그날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내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여유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어 미겔이 들어왔다.




미겔은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나와

식탁에 앉았다.




"미겔, 배고파요? 저녁 먹었어요?"





"먹고 들어왔어요.

 소피, 잠깐 여기 앉아 볼래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미겔이 마음을 빨리 결정했구나 싶었다.





"미겔, 뭐 마실 거 줄까요?"




"네... 아무거나, 따뜻한 차로 부탁할께요."

 



나는 자스민 차를 두 잔 만들어

식탁에 앉았다.





미겔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금세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미겔이 품고 있던

고민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미겔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고 그를 안았다.





그는 내 허리를 감싸 안았고,

그의 뜨거운 눈물이 느껴졌다.





나는 미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그러던 중, 등 뒤에서

무언가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훈지 씨가 서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금세 풀 수 있는 오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겔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훈지 씨는 놓친 가방을 그대로 둔 채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미겔을 먼저 안심시켰다.





"미겔, 훈지 씨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씻고 먼저 쉬어요."





그리고나서

나는 곧바로 훈지 씨를 뒤따라 나갔다.






"빨리 일어나요.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

 <68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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