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
— 여주야, 내가 잘못했어.
신여주
— 됐어. 한두 번도 아니고 대체 몇 번이야? 그만하자, 진짜.
B
— 여주야!
신여주
— 그만 따라오라고! 우리 이제 끝이야.
길 한복판에서 나와 남친, 아니 이제 전 남친이지. 전 남친은 보시다시피 헤어지는 중이다. 몇 번이고 그의 실수를 봐줬지만, 언제나 똑같은 말만 반복된다. ‘잘못했어.’ 이 말만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그런데 정말로 끝을 내려고 한다. 헤어지자고 말한 뒤로 같이 있던 자리를 떴는데 전 남친이 구질구질하게 계속 뒤따라와서 나를 붙잡는다. 길가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우리에게로 집중됐다.
B
— 아, 여주야. 잠시만!! 우리 잠시만 얘기 좀 하자!
신여주
— 그만 따라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B
— 신여주!! 내가 이렇게 부탁하잖아!
난 계속 걸어서는 전 남친이 계속 따라올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어서 골목길에 다다랐다. 그런데 뒤를 보며 뛰다가 하필이면 그 좁은 골목에서 누구와 부딪혀 그만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 사람 위로 말이다. 그것도··· 입을 맞추고 말이다.
신여주
— 헙···.
B
— 여주ㅇ···.
진짜 너무 놀랐다. 아래로 떨어진 그 모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와 씨 이건 무엇? 또 너무 잘생긴 거 있죠. 그 남자도 덩달아 많이 놀라 보였고, 그가 일어나려고 하자 난 꽉 붙잡았다. 그래야 전 남친이 계속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2분을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더니 전 남친은 얕게 욕을 뱉고는 그 골목을 나갔다. 나도 그제야 일어났다.
신여주
— 아··· 놀라셨죠. 진짜 너무 죄송해요···.
엠와케이
— ㄱ, 괜찮아.
그 남자와는 초면인데 갑자기 반말한다. 반말은 그렇게 멋있게 하면서 왜 그렇게 쑥스러워해? 그런 엉뚱한 매력에 난 전 남친과 헤어진 지 별로 되지도 않아서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신여주
—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엠와케이
— 아까 그 사람은 누구야.
신여주
— 전 남친이요. 싫다는데 계속 따라와서. 저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엠와케이
— 설명 안 해도 돼.
신여주
— 그런데 몇 살이에요? 저랑 별 차이 안 나는 거 같은데.
엠와케이
— 알 필요 없어.
그렇게 그 남자는 관심 없다는 듯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나한테 첫눈에 반하게 해놓고서는 그냥 가려고 하네? 나는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나도 끈질김이라는 건 좀 하는 사람이라.
신여주
— 그럼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오빠 어디 가요?
엠와케이
— ···알 필요 없다니까.
신여주
— 나 싫어요?

엠와케이
— ······.
그렇게 밀어내더니 또 싫다는 말은 안 해. 이 사람 볼수록 끌린단 말이지. 그래서 생각했다.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신여주
— 싫다는 말은 안 하네요.
엠와케이
— 싫어.
신여주
— 이미 늦었어요.
엠와케이
— 시간도 늦었어. 얼른 집이나 들어가.
신여주
— 걱정해주는 거예요?
엠와케이
— 아니. 빨리 들어가라니···.
신여주
— 사랑해요.

엠와케이
— ···뭐?
신여주
— 쑥스러워 죽겠는데 다시 말해줘야 해요?
엠와케이
— ······.
신여주
— 사랑해요. 됐죠?
엠와케이
— 하··· 눈 감아봐.
신여주
— 왜요? 또 입이라도 맞출 건가···.
그러면서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한껏 기대하고는 말이다. 1분이 지났는데도 아무 행동도, 아무 말도 없어서 내가 말을 했다.
신여주
— 오빠, 눈 떠도 돼요? 오빠?
그러고는 아무 대답도 없길래 눈을 떴는데 오빠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눈 감으라고 해놓고 튀었다. 난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 한구석에 쪼그려 앉고는 그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계속 기다렸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첫눈이었다. 이건 그 오빠랑 봤어야 했는데. 난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그 오빠 생각을 했다. 눈이 많이 오기 시작한 데다가 바람까지 불어오니 이보다 추운 게 없었다.
신여주
— 아으··· 추워. 추워죽겠는데 언제 오는 거야 진짜···.

엠와케이
— 추워죽겠는데 계속 기다릴 거였어?
신여주
— 어?! 오빠!!
발소리 하나도 없이 갑자기 그 오빠가 나타났다. 오빠를 보자 나의 미소는 떠나지를 않았고 정말 행복했고 오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엠와케이
— 야··· 떨어져.
신여주
— 보고 싶었다고요. 오빠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서 다시 온 거죠? 그렇죠?
엠와케이
— 아니야, 그런 거.
신여주
— 아니긴···.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요. 오빠 안 왔으면 나 여기서 추워서 얼어 죽을 뻔했어요.
엠와케이
— 우리 오늘 처음 봤어.
신여주
— 그래서요?

엠와케이
— 나 안 무서워?
신여주
— 네, 전혀요. 귀엽고 잘생기고 혼자 다 하는데. 저 오늘 오빠 때문에 알았어요.
엠와케이
— 뭐를?
신여주
— 처음 본 사람하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요.
엠와케이
— ······.
신여주
— 그런데 왜 아까부터 사랑한다고 하면 표정이 그래요? 내가 싫어요? 하긴··· 어떤 이상한 여자가 갑자기 사랑 얘기를 하는데, 그쵸···?
엠와케이
— 아니···.
신여주
— 그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엠와케이
— 몰라.
신여주
— 안 그래도 전 남친 때문에 속상해 죽겠는데 오빠까지 왜 그래요.
엠와케이
— 그게 아니래도···.
신여주
— 그럼 뭔데요!
엠와케이
— 난 안 돼.
진짜 답답했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대답은 저따위로 하고, 계속 돌려 말하는 듯한 저런 말투가 짜증이나 홧김에 오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까 약간의 술이 들어가서 맨정신은 아니라 내가 더 집착하는 것 같다.
신여주
— 왜 안 되냐고요.
엠와케이
— 너를 사랑할 수 없어.
신여주
— 왜···요?

엠와케이
— 난 악마니까.
신여주
— 네?! 아··· 심성이 너무 악마 같은가? 그냥 싫으면 싫다고 해요.
엠와케이
— 아니, 진짜 천사, 악마할 때 그 악마라고. 못 믿는다는 거 알아. 그런데 내가 정말 악마라고 해도 날 사랑할 수 있어?
이 오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갑자기 악마? 그런데 그때 딱 떠올랐다. 그 어디서 들었는데 악마는 ‘사랑해’라는 말을 뱉는 순간 그 자리에서 불타 죽어버린다는 그 말. 그래서 사랑해라고 계속 못 했던 건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순간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신여주
— 설마···. 진짜예요? 믿고 싶지 않은데 오빠가 너무 진지해서···. 진짜 오빠가 그 말로만 듣던 악마인 거예요···?
엠와케이
— 그래, 맞아. 믿어줘, 진짜야.
신여주
— 오빠는 나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엠와케이
— 어? ···괜찮지. 괜찮은데···,
신여주
— 사랑해라고 절대 하지 말아요. 알겠죠. 오빠도 그럼 나 좋은 거고 나도 오빠 좋으니까 됐어요. 사랑해라는 말만 하지 말아요. 나 뭔지 아니까.
엠와케이
— 어디 가.
신여주
— 따라오지 말아요. 난 오빠 계속 보고 싶으니까 빨리 가요.
내가 계속 오빠를 밀어내는 이유는 느낌이 ‘사랑해’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우린 오늘 처음봤는데 이 짧은 순간에 나는 오빠를 사랑하게 됐고, 이 오빠의 눈도 나를 사랑해 하는 눈치였다. 정말 사랑해라고 말하면 불타 죽는 게 확실하다면 지금 오빠를 옆에 두면 안 된다.
엠와케이
— 여주야.
그 오빠의 나를 부르는 말 한마디에 내 발걸음은 그대로 멈췄다.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안 건지. 내 심장은 매우 빠르게 뛰었다. 그 정도로 너무 조마조마했다.

엠와케이
— 여주야, 네가 아까 말했지. 처음 본 사람하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인간하고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거 나도 느꼈어.
신여주
— 아니야, 말하지 말아요. 나 안 들을 거예요. 빨리 가요, 제발.
엠와케이
— 나를 봤다는 건 사람들한테 알리지 말고.
신여주
— 아니야···. 말하지 말라니까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꺼내는 오빠에, 이제 못 볼 거 같은 느낌에 속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많이 고여 있었고, 오빠는 내 눈을 보고 말을 했다.
엠와케이
— 여주야, 내 이름은 엠와케이야. 기억해줘.
신여주
— 계속 불러줄게, 계속 불러줄 테니까 사라지지 말아요. 엠와케이···.
엠와케이
— 여주야.
신여주
— 아니야, 안 돼!!
엠와케이
— 사랑해.
신여주
— 오빠···. 엠와케이!!!

엠와케이 오빠가 ‘사랑해’라고 말하고 나를 본인으로부터 밀쳐냈다. 그리고는 오빠는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 타고 오빠의 흔적은 단 한 톨도 없었다. 타고 남은 재마저도 말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엠와케이 오빠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 아니···. 내가 사랑하는 악마이다.
신여주
— 사랑해···. 사랑해요, 엠와케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