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지묘
(魔女之猫)
-마녀의 고양이-
W. 설하
Trigger Warning,
폭력적인 장면이 다수 존재하며,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마녀는 하염없이 돌조각을 읽고, 또 읽었다. 날카로운 조각에 제 손이 베이든 말든, 한자 하나하나 정성스레 새겨진 조각을 들고는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는지라, 비석에 적힌 문장들을 읽고 또 읽은 탓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는 지경이 되었으니,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음에도 마녀는 그 비석에 적힌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뿐이었다. 한참을 비석을 매만지던 마녀는, 지민이 제게 건네주었던 주머니에 도로 조각들을 주워담아 그것을 지민에게 건넸다.
"이것들은 네가 다시 들고 가는게 낫겠다."
"왜? 가지고 있는게 편하지 않겠어?"
"자의긴 하지만, 일단 내가 황실에 머무르는 이상 그 돌조각을 지니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완전히 숨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건 내 약점 뿐만 아니라 내 동족들의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네가 가져가."
"...그 생각을 못했네, 가져갈게."
마녀가 지민을 보고는 빙긋, 웃어보였다. 그 눈에 서린 결연함을 읽어낸 지민은 군말없이 마녀가 건넨 조각들을 집어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경국(鯨國)으로 갈거야. 지민의 말에 마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조각들이 필요했다. 저는 호국의 황궁에 남아야 할 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민이 움직이는 수밖에는 없으리.
"조만간 다시 들릴게. 그땐 이 감옥은 아니었으면 좋겠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됐어, 어디 있든간에 알아서 잘 찾아올테니까."
"가끔 네가 여우인지 개새끼인지 헷갈려, 나는."
"야!!"
바락 성을 내며 얼굴을 붉히는 지민에 마녀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눈물을 흘린 뒤에 처음으로 터트리는 웃음인지라, 마냥 그녀가 우울해하면 어쩌나 하던 지민의 걱정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제가 만들어둔 철창의 틈 새로 몸을 쏙, 빼낸 지민이 철창을 쥐고는 다시금 손에 힘을 주었다. 끼긱-, 하는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철창이 제자리를 찾았으나, 그 손자국만은 어찌 하지 못한 듯 일그러진 상태였다. 난 모르겠다-, 하며 딴청을 피우는 지민이 발걸음을 옮겼다. 제가 일그러트린 철창 사이로, 좁디 좁은 감옥에 갖힌 마녀가 보였다.
"간다,"
"응."
"나 없는 동안 죽지 말고."
"못 죽어."
"...이왕이면 못 죽는게 아니고, 안 죽는거였으면 좋겠는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
매정한 마녀의 말에 지민이 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갈게, 하며 손을 한번 흔들어주니, 이미 감옥의 이끼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마녀가 손을 들어 대충 휘젓는것이 보였다. 하여간에, 나만 아쉽지, 나만. 꿍얼대던 지민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푸른 기운이 일렁거렸다.
감옥의 입구를 지키다 졸음에 못이겨 꾸벅, 꾸벅, 졸기 바쁜 병사들을 따돌릴 필요도 없이, 지민은 그 특유의 날랜 걸음으로 감옥을 빠져나왔다. 해는 저문지 오래요, 밝디 밝은 달빛이 지민을 비추었다. 제 결 좋은 머릿결을 살며시 헤집는 밤바람을 한껏 들이쉰 지민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에 풍경들이 휙, 휙 바뀌니, 순식간에 멀어진 호국의 황궁이 저 나무 사이로 보였다.
못 죽어, 경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계속하면서도 지민은 마녀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마녀는 죽음을 갈망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마녀의 생, 그 곱절만큼을 더 산 자신이래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권력에도, 재산에도, 동대륙의 이 넓은 땅덩어리 중 그 무엇에도, 하물며 지민 저 자신에게도, 그 무엇에도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언제나 곧 떠날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숨을 멈출 사람처럼 굴었다. 그 곁에 있던 몇 백년의 세월 동안 지켜본 마녀가 그러하였다. 그녀에겐 죽음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 크고 넓은 세계의 그 어느것에도, 그녀에겐 가치가 없었다. 그녀를 이곳에 머물게 할 만한, 그런 가치가 없었다. 하물며 자신조차, 그녀를 잡아둘 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속이 쓰려오는 탓에 지민이 입술을 짓씹었다. 경국으로 향하는 걸음을 더욱 빨리하며, 그는 공허함만 가득하던 마녀의 텅 빈 눈을 지우려 무던히도 애써야만 했다.
* * *
비석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밖에 없었다,
'마녀지묘(魔女之猫)', 마녀의 고양이란 뜻이렸다. 그 얼마나 황당하고 해괴한 단어인지, 처음 비석의 글자를 눈에 담았을 적만 해도 마녀는 별 생각이 없었더랬다. 그저, 이런 존재도 있구나-, 할 정도의 관심, 그리고 무관심. 비석에 적힌 내용이 무엇이든간에 마녀는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으며, 실제로 그러했다. 마녀의 고양이가 웬 말이며, 마녀의 애완동물이라는 존재가 왜 필요한가. 그녀가 죽음을 갈망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죽고 싶었다. 더 이상 눈을 뜨고싶지 않았다. 이 질긴 목숨줄을 이만 끊어내고 싶었으나, 저주받은 몸뚱아리는 제 죽음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질 못하였으니, 수백년을 동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죽으려 애썼으나, 마녀는 버젓이 살아있었다. 제가 죽어갈 때 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붉은 오라가 끊임없이 그녀를 살려냈다. 몇십번의 시도에도 그녀는 자신의 목숨줄을 끊는 것에 실패하였으니, 손목을 그어버리고, 목을 찌르고, 맹독 식물의 잎파리를 씹어삼키고, 제 심장을 찌르는 등, 갖가지 방법을 시도했으나 그녀는 실패했다. 개중 가장 끔찍했던 것이 화형이었으니, 온 몸에 불이 붙어 살이 타들어가다가도, 붉은 오라, 마녀의 힘으로 새살이 돋아나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임에 틀림없었다. 수십번을 시도하여, 백번의 시도에 이르른 끝에도 죽음에 다다르지 못했던 날에, 마녀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마녀가 된다는 것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괴로운 일이란다."
"...왜요?"
"마녀가 그런 존재니까."
마녀는 뛰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이나 그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문득 스쳐지나가듯 본 비석이 떠오른 탓이었다. 백 한번째 시도 끝에도 죽지 못한 날에, 마녀지묘(魔女之猫), 단 네 글자만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던 그 비석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것이라 믿으며, 마녀는 동대륙의 끝과 끝을 맨몸으로 횡단했다. 먹지도, 쉬지도 않고, 오로지 뜀박질만을 계속했다. 생채기가 가득한 발의 쓰라림 정도야 이제는 고통 축에도 끼질 못하니,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수십 일을 달렸더랬다.
그 필사적인 뜀박질 끝에 마녀의 눈에 담은 것은 잔해만이 남은 비석의 흔적 뿐이었으니,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상실감이 마녀를 덮쳤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온갖 것들에 베이고 까져 상처 투성이인 그녀의 발에 닿은 빗물이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흘러내려갔다. 아팠다. 다 깨져,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비석의 잔해 앞에 주저앉은 마녀가 제 무릎을 끌어안았다. 온 몸이 아팠다. 제 숨통을 끊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달려온 멀고 먼 길은, 그 여리고 작은 몸 하나로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먼 길이었으니, 붉은 오라가 끊임없이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도와줄까?"
깊은 공허함을 달랠 새도 없이 내밀어진 하얀 손은 마녀에겐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었다. 뭘 도와줄건데? 하는 그녀의 물음에 새하얀 손의 주인은 뭐든지, 하고는 답했더랬다. 이유 없는 호의에 잔뜩 날을 세운 마녀가 그 하얀 손의 주인을 노려볼 때도, 그 손의 주인은 허허실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처음으로 맞잡은 타인의 손이 차가웠다.
* * *
"정신을 아주 놓은 것이냐,"
뜻하지 않은 손님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마녀의 미간이 구겨졌다. 감옥의 바닥에 축, 늘어뜨린 몸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십니까-, 한 마디만을 내뱉자, 폐하의 앞에 예를 갖추어라! 하는 간수의 호통이 뒤따라왔다. 참으로 시끄럽구나. 휴식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온 얼굴을 찌그러트린 마녀가 몸을 일으키니, 감옥의 바닥에 드러누웠던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댄 채로 고개만 까닥-, 해보이는 것이 다였다. 저런 무엄한...! 이라 간수가 소리치기도 전에 황제의 손이 그 입을 막았다.
"이번엔 독이라도 먹이시려 걸음하신 겁니까,"
"네 방자한 입은 한 시도 쉬지를 않는구나. 네 혀를 잘라내면 그 입이 멈출까?"
"잘라내도 소용없습니다."
"...."
"폐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요?"
심기를 거스르는 마녀의 말에 황제가 이를 갈았다. 빠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 태연자약한 마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동요도 비추질 않았다.
"넌 왜 죽지 않는 것이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백날 제게 물어보셔야, 제가 폐하께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죽지 못한다라,"
"...."
"허면 질문을 바꾸지, 너는 왜 죽으려 하는 것이지?"
"저는 죽으려 했던 적이 없습니다만-,"
"짐을 우롱할 생각 하지 마라."
"제가 어찌 감히,"
"생에 단 한 줌의 미련이라도 가졌다면 그리 행동할 수 없지."
"...."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
"...."
"지금 네 상황이 딱 그 꼴 아니더냐?"
웃음을 잃지 않던 마녀의 표정이 매섭도록 굳어졌다. 생기로 반짝거리던 그 눈은 황제의 말에 짙게 가라앉아, 마치 죽은 자의 눈으로 변하였으니, 그 살벌하고도 묵직한 기운에 황제를 보필하던 간수마저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변한 마녀의 분위기에도 황제 또한 동요하는 기색이 없으니, 황제의 검은 눈과, 마녀의 검붉은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마녀는 웃었다. 언제 제가 웃음을 잃었냐는 듯, 아주 해사하고도 말간 웃음을 지어보인 탓에 황제마저도 움찔할 정도였으니, 곱게 말려올라간 마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황제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저와 내기 하나 하시렵니까?"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간수의 얼굴이 황당함에 물들어 가던, 말던, 마녀의 눈은 오직 황제만을 곧게 바라보고 있었으니, 이는 곧 황제의 호기심을 동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내기라 함은?"
"저는 호국의 안녕을 망친 대역 죄인의 신분입니다. 호국 만백성의 아버지이신 폐하께서는 당연하게도, 저를 죽이고 싶으시겠지요?"
"허, 그래. 그러하다면 어쩔텐가,"
"보름 이내로, 마녀를 죽이는 방법을 한번 알아내 보시지요. 방법을 알아낸다면 폐하의 승, 알아내지 못한다면 제 승리입니다."
"허면, 내가 이긴다면 너는 내게 뭘 줄 수 있느냐?"
"제 목숨 하나면 이 내기의 대가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뭐, 덤으로, 폐하께서 승리하신다면 제 목숨 다 하기 전에 폐하의 소원 하나 정도는 들어드리도록 하지요."
마녀가 빙긋 웃었다. 방금 제 목숨을 내건 이로는 보이지 않는 말간 웃음에 황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 목숨이야, 내가 당장에라도 널 죽여 없애면 그만 아니냐?"
"지금 당장, 제 목숨을 가져갈 테면 가져가 보십시오. 폐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
"고작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는, 제 질긴 명줄에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입니다."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열이 바짝 올랐으나, 저 얄미운 입에서 내뱉는 말이 죄다 맞는 말이었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음이 분명했다. 당장에라도 마녀의 숨통을 끊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노라 말하였으나, 그저 객기에 불과했다. 채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다. 마녀를 베고 또 베어도 되살아나는 마녀의 모습을 수십번을 반복해서 봐야했던 것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네가 이기면, 내 무엇을 해주면 되겠느냐."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분명 내기라 하지 않았나?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내 마치 네 명령을 따르는 개새끼마냥 보이지 않겠느냐."
"농도 참으로 재미나게 하십니다. 허면, 저는 그냥,"
...살아서, 이 황궁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마녀의 말에 황제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죄인의 신분을 탈피하게 해달라는 것이냐? 하는 그 물음에 마녀가 고개를 저었다. 죄인이든, 벼슬이든, 신분이든, 마녀에게 쓸모없는 일이 있을까. 제아무리 대역 죄인이라는 꼬리표를 가져도, 이는 마녀에게 족쇄는 커녕, 발목을 붙잡지도 못할, 의미없는 것일 뿐이었다.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저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라 이해하십시오, 하는 마녀의 말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조건이 참으로 소박하구나, 하는 황제의 말에 마녀는 그냥 웃어보이고 말았다.
"내가 소원으로,"
"예?"
"내가 네년을, 살리길 바란다면 어찌 할 것이냐?"
고저없는 황제의 목소리에 마녀는 숨통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삶이란 단어가 그녀에겐 그러하였으니, 답답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던 마녀가 황제의 얼굴을 마주했다. 오롯이 저를 담아내는 황제의 흑안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마녀는 씹어뱉듯,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그러실 리 없다는거,"
"...."
"잘, 알고 있습니다."
"...."
"어찌,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힌 죄인을 살려두려 하시겠습니까, 만백성의 아버지시여,"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황제가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그 감정 없던 눈에 호기심이 잔뜩 일렁이니, 마녀의 붉은 눈을 마주한 황제가 내기를 받아들이겠노라 말하였다.
"내 하나 더 묻고,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예, 무엇이 그리도 궁금하십니까?"
필요한게 있다면 내일 다시 찾으마-, 하며 발걸음을 돌리던 황제가 다시금 몸을 돌리니, 마녀가 앉아있는 감옥의 철창에 가까이 다가선 황제가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 물음이 퍽 의미없다 느껴지는 탓에, 마녀는 바람빠진 웃음과 함께 실소를 내뱉었다. 그게 그리도 궁금하십니까? 마녀의 이름을 알아 무엇 하려고, 저를 고문하던 순간부터 참으로 끈질기게도 물어보는 황제에 마녀가 입을 열었다.
"홍월이라 하옵니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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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