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果疼痛有預兆

07

작가님이 나에게 뭘 잘못한 건 없다. 그런데 내가 힘들어서 그냥 작가님을 미워하기로 했다. 물론 미워하는 건 큐레이터가 아닌 그냥 인간 윤여주로서. 작가님이 아닌 김석진이라는 선배를 미워하기로 했다. 안 그러면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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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병원으로 갈까요?

윤여주

아니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저 집 앞까지만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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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병원 안 가봐도 돼요?

윤여주

괜찮아요. 찜질하면 금방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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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여기에서 내려드리면 돼요?

윤여주

네, 오늘 정말 감사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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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여기가 큐레이터님 집인 거예요?

윤여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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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되게 가깝네요? 저희?

윤여주

아, 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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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윤여주

에이- 작가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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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럼··· 가볼게요.

윤여주

아···!

내 발목의 상태는 그냥 찜질만 하고 나을 상태가 아닌 거 같았다. 한 발로 뛰어가기도 하고 힘들 때쯤 느릿느릿 조심하게 걷기도 하며 일단 집에는 도착했다.

오자마자 침대에 가만히 누웠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났다. 작가님이 너무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온다. 혹시 날 좋아하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나고, 작가님 피한다고 발목 다친 것도 서러워서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다.

발목을 다쳐서 서러운 게 아니라 그냥 작가님이 계속 몰라주니까 답답한 마음에 계속 눈물이 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또 말하기는 싫다. 작가님과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니까.

윤여주

그래도 잘살고 있었는데 왜 나타나서···.

뭐··· 만나자고 애걸한 건 애초에 나였다. 그래서 더 짜증 난다. 그 작가님이 선배일 줄 누가 알았겠어.

[ 다큐 촬영 날 ]

윤여주

김 큐레이터, 진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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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전 좋은데요? 이번 기회에 다큐도 대표로 맡고.

윤여주

아니야···. 진짜 미안해. 이건 왜 이렇게 안 낫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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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병원에서 그랬잖아요. 푹 쉬어야 빨리 낫는다고. 큐레이터님이 계속 움직여서 더 안 좋아지신 거예요.

윤여주

부탁 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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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걱정 마세요. 설마 저 못 믿는 건 아니시죠?

윤여주

아니지! 김 큐레이터 얼마나 능력있는데···.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런 거지. 전시실도 내가 하자고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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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그럼 미안해하지 마세요. 미안하다고 하면 저 못 믿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윤여주

아··· 그래, 고생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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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꽉꽉 담아 올게요. 큐레이터님은 저만 믿고 편안히 계세요. 신경도 많이 쓰면 안 좋아져요!

윤여주

알겠어ㅋㅋㅋ 고마워!!

발목 다치고 조금 낫는다 싶어서 막 움직였더니 또다시 원상 복귀가 됐다. 다큐 준비한다고 그랬는데 결국 다큐는 내가 못 찍게 됐다.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찍다가 내가 울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전시 오픈 날이 되었다. 홍보가 조금 덜 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주셨고, 난 작가님이 좋아할 걸 생각하니 첫날부터 기분이 너무 들떴다.

김태형 큐레이터 image

김태형 큐레이터

큐레이터님! 다큐가 갑자기 상영이 안 된다고 해서,

윤여주

내가 빨리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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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아니요, 큐레이터님ㅋㅋㅋ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쇼.

윤여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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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안 된다고 해서 제가 잘 돌려놓았다고요.

윤여주

아, 정말? 잘했어. 큰일날 뻔했네. 작가님은 오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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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큐레이터

네, 아주 멋지게 등장하셨습니다.

윤여주

그래? ㅋㅋㅋ 어,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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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관람객이 많네요. 떨리는데요?

윤여주

떨지 마세요. 제가 그랬죠? 정말 잘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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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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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관장

김석진 작가님,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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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 오랜만에 뵙네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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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관장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윤 큐레이터 시작하자.

윤여주

네!

윤여주

아아, 오늘도 어김없이 우떠 미술관을 찾아주신 관람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떠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윤여주라고 합니다.

윤여주

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자 풍경을 사랑하는 김석진 작가님 모셔보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짝짝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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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안녕하세요. 김석진입니다. 우선 첫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찾아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첫 전시를 우떠에서 진행하게 되어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그림을 많은 분들 앞에 내세우는 건데 아름답게 관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윤여주

작가님,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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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요. 전시실도 너무 예쁘고 정말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아요.

윤여주

맘에 들어서 다행이에요.

G

작가님···! 팬이에요. 사인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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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저의··· 팬이라고요?

윤여주

그럼 시간 보내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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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 네!

전시가 한참 잘 진행되고 있었고, 어느덧 마감 시간이 다가오던 중, 다큐 상영관에서 나오는 관람객마다 눈물을 흘린 것처럼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분명 눈물까지 흘릴 내용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상영관 뒤에서 가만히 앉아 나도 다시 점검하였다.

계속 보고 있어도 문제는 없었고, 내가 알던 끝부분이 나오고 ‘뭐지?’라는 생각을 할 그때, 뒤에 내용이 더 있었다.

윤여주

뭐야. 분명 잘 확인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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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걸려있는 작품 제목, ‘신호등, 그리고 첫사랑의 시작’이라는 작품은 제가 가장 애정하는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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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때 만난 첫사랑은 제가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저를 빛의 세상으로 꺼내준 사람이거든요. 정말 다시는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났어요.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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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정말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못 알아봐서 얼마나 싫고 답답했을까. 미안하다고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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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저에게 정말 밝은 빛이었던 친구였지만, 저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을 그 친구를 생각하면 이제 와 다시 붙잡고 싶지 않아요. 저는 그 친구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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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나의 첫사랑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합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해, 알아보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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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고등학교 시절,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친구에게···.”

진짜 화장이 녹아내릴 정도로 펑펑 울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었는지 더 이상 상영은 종료되었고, 나는 꺼진 화면만 보며 넋 놓고 울고 있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알아볼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건지 너무 갑작스럽게 마주한 거라 더 슬펐다. 절대 나를 알아볼 거라 생각을 못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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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여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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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글태기가 와서 평일 1일 1연재가 깨져버렸다···. 미안해요😣 오늘도 보러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