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是誰? (南珠美貞)
44_ “我愛的人”


그렇게 집을 나와 한참을 걸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기분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날_ 정국이를 등지고 오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얘기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내 마음이 좀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어젯밤부터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정여주
하아_ 나 진짜 바보 같다


정여주
왜 그렇게 도망쳐서..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들이 보였다.

그들을 본 순간_ 여주의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지.

왜인지는 여주만 알겠지.

하지만, 알 수 있는 건_ 아마 그 눈물은..


정여주
만났어..

안도의 눈물 아닐까.


전정국
선배, 정말 내일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예요?


전정국
그냥 가게 주인한테 연락해서_


박지민
야..


김태형
왜 그래


박지민
저, 저기..

지민이 먼 곳을 손가락으로 가라키자 둘의 시선은 지민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으로 옮겨갔고_

보이는 건.


김태형
여..연준..


전정국
선배..!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여주였지.

하지만_ 세 사람은 선뜻 달려갈 수가 없었다.

또 여주가 저번처럼 도망치면 안 되니까.

그때, 여주가 천천히 한 발 한 발 그들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곤 그 한 발들이 점점 커졌지.

그렇게 여주가 그들에게로 달려오자, 앉아있던 태형이 벌떡 일어나 여주에게로 달려갔다.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한 채.

그리고 태형의 뒤를 이어, 지민과 정국 또한 여주에게 달려갔지.


정여주
김태형_!


김태형
연준아_!

그리곤 와락, 서로를 거칠게 껴안는 둘이었다.

뒤이어 오는 지민과 정국도 여주를 껴안았다.

그렇게 한동안 넷은 나오는 눈물을 참지도 않고 펑펑 쏟아내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했다.


정여주
미안해..내가 너무 미안해..


김태형
네가 왜 미안해..미안해할 거 없어..


김태형
그러니까 괜한 죄책감 느끼지 마..응?


정여주
그렇지만..


박지민
우리 일단은, 자리 좀 옮겨서 얘기할까?


정여주
그래_

그렇게 카페로 자리를 옮긴 네 사람은_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때, 태형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김태형
보고 싶었어_ 너무 많이

태형의 말 한마디에 그친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새어 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미 퉁퉁 부어버린 눈에 더는 울기 싫었다.


정여주
나도..너희 많이 보고 싶었어..


정여주
하루하루 너무 후회했어_ 그렇게 말 안 하고 오는 게 아닌데..


정여주
나만 힘든 거 아닌데_ 너희도 힘들 텐데 너무 내 생각만 하고


정여주
그래도 한국엔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정여주
돌아가면, 다시 정연준으로 돌아가야 할까봐..너무 무서웠어


박지민
이해해_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박지민
엄청 힘든 결정이었을 테니까


박지민
원망하거나 그러진 않았어_ 그게 맞는 걸 테니까

한층 무거워진 분위기에 안 되겠다 싶던 정국이었는지, 대뜸 화제를 바꿨다.


전정국
그동안 선배는 뭐 하면서 지냈어요?


정여주
나?


박지민
아_ 나도 궁금하다


박지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정여주
나야 뭐_ 알바하고, 가끔 놀러도 다니고 그랬지


전정국
외국인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요??


정여주
5년이나 지났는데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전정국
그렇네..ㅎ


전정국
그럼 5년 동안 남자친구는 사귀어 봤어요?

움찔_ 남자친구라는 말에 바짝 긴장한 태형이었다.

혹시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정여주
한 번도 없어


정여주
그동안 쭉 남자로 살았는데 이제 여자로 산다고 바로 여자같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정여주
사귀고 싶지도 않고_


전정국
정말요?


정여주
어


김태형
그럼..


정여주
어?


김태형
그럼_ 지금도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는 거야..?


정여주
지금..?

왤까_ 태형의 진지한 얼굴에 대답하지 못할 것 같은 건..


김태형
말하기 불편하면 안 해ㄷ_


정여주
아마_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사귀고 싶지 않을까


김태형
사랑하는 사람..?


정여주
근데 좀 무서워


정여주
내가 또 그 사람한테서 떠나버리진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