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실 안은 아직도 소란스러웠고 대부분의 애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서 연시은은 혼자 남아 창가 쪽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는데,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 일정하게 반복되는 그 조용한 공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섞이면서 분위기가 미묘하게 깨졌다.
“야, 아직도 하냐.”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목소리였고, 시은은 한 문제를 끝까지 풀고 나서야 펜을 멈췄다.

“시간 남아서.”
“점심 안 먹었냐.”
“먹었어.”
“혼자?”
“…상관없잖아.”
수호는 대답 대신 시은 앞에 앉았고, 의자를 뒤로 기울인 채 발로 바닥을 툭툭 차면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야, 너 요즘 이상하다.”
“뭐가.”
“나랑 계속 붙어 다니잖아.”
“알바 때문이지.”
“그거 핑계지.”
시은은 눈을 들었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고, 그게 생각보다 오래 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느낌.”
“근거 없는 거 싫어.”
“그래서 더 맞을 때 많다.”
시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신 시선을 다시 문제집으로 내렸다.
그런데도 집중이 안 됐다.
펜이 멈췄다.
“야.”
“…왜.”
“오늘은 알바 안 해도 된다.”
시은이 말했다.
“왜.”
“비 와서 콜 적어.”
“그래서?”
“굳이 안 해도 돼.”
수호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와, 이거 뭐냐.”
“…”
“나 배려해주는 거냐.”
“아니.”
“그럼.”
시은은 잠깐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시간 아까워서.”
“아, 또 돈 얘기네.”
“맞아.”
“근데 너 지금 집중 안 하잖아.”
그 말에 시은의 손이 멈췄다.
“…무슨 소리야.”
“너 아까부터 한 문제도 못 풀었거든.”
“…”
“틀렸지?”
시은은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책을 덮었다.
수호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야, 나랑 나가자.”
“어디.”
“운동장.”
“싫어.”
“나 심심해.”
“혼자 가.”
“같이 가.”
“왜.”
수호는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랑 있으면 덜 심심해서.”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나왔는데, 이상하게 무시가 안 됐다.
시은은 잠깐 멈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5분만.”
“와, 바로 나오네.”
“시끄러워.”

운동장은 비가 막 그친 상태라 바닥이 조금 젖어 있었고, 사람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조용했는데 수호는 아무 생각 없이 중앙까지 걸어가더니 그대로 바닥에 털썩 앉았다.
“야, 앉아.”
“젖었어.”
“괜찮아.”
“안 괜찮아.”
“그럼 서 있어.”
시은은 결국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고, 수호는 뒤로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야, 시은아.”
“…왜.”
“너 왜 이렇게 혼자 다 하려고 하냐.”
“무슨.”
“공부든 뭐든.”
“내 일이니까.”
“그래도 좀 나눠.”
“싫어.”
“왜.”
“귀찮아.”
“거짓말.”
시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수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야.”
“…왜.”
“너 나랑 있으면 편하냐.”
질문이 예상 밖이라, 시은이 잠깐 멈췄다.
“…왜 그런 걸 물어.”
“그냥.”
“…”
“대답 안 할 거냐.”
시은은 잠깐 시선을 피했다가, 낮게 말했다.
“…모르겠어.”
“그럼 생각해봐.”
“…”
“난 편한데.”
그 말은 장난처럼 들리지 않았다.
시은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바람이 불었고, 젖은 흙 냄새가 올라왔다.
“야.”
수호가 다시 불렀다.
“…왜.”
“오늘 알바 하지 말고.”
“…”
“그냥 좀 놀자.”
“…”
“나랑.”
그 말이 끝나고, 시은은 처음으로 아무 계산도 하지 않고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5분 더.”
수호가 웃었다.
“야, 그거 연장된다?”
“안 돼.”
“된다니까.”
“안 된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는데
둘 다,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은 안 끝난다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