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ta de la amistad

아, 참. 연준이 입을 열었다. 이제 둘이 한솥밥을 먹게 된지도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차차 회복한 수빈은 이제 작은 집안일들은 도울 수 있게 되었다.


“광주 봉쇄된거 아세요?”
“…?”
“몰랐어요?!”


수빈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수빈이 주먹을 꾹 그러쥐었다. 연준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탈탈 털었다. 파 넣어요, 말아요. 일단 배때기라도 채우고 보자는 것이 연준의 생각이었다. 그에 비해 수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 일단 입에 뭐라도 넣고 생각합시다.”


연준이 탕 소리가 나도록 라면 냄비를 내려놓았다. 수빈이 익숙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저 살면서 라면이 질릴 수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너무하시네.”


사실 민주주의에 관한 장황한 토론이 있었으나 이 둘의 관계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연준은 라면을 깨작거리며 수빈의 눈치를 살폈다. 수빈은 질렸다더니 또 넙죽넙죽 잘도 먹었다. 헛웃음을 내뱉던 연준이 목을 가다듬었다.


“수빈씨 광주 살아요?”
“아뇨.”
“집이 어디 있는데요.”
“광주 외곽이요.”


됐다. 연준은 수빈을 마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결코 의도하지 않은 여유로움이 만연해 있었다. 수빈은 괜히 기가 죽었다. 이런 궁색한 집안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그의 여유는 정말 시혜주와 수혜자의 선을 딱 그어버리는 듯 했다.

무언가 깨달은 듯 연준이 미소를 지었다. 수빈은 긴장하며 숨을 꾹 눌러참았다. 연준이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서는 허리를 꼿꼿이 피면서 일어섰다.


“제안 하나 할게요.”
“계약 합시다.”


연준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수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을 나눠 쓰자고요.”


수빈이 라면 그릇에 젓가락을 빠뜨렸다. 그러나 둘 다 방금 연준이 뱉은 말에 놀란 나머지 아무도 그 불행한 쇠젓가락의 추락에 관심 가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음…말하자면 동거?”


푸흡.
수빈이 사레가 들린듯 미친듯이 기침을 해댔다.


“그쪽은 집이 없고. 저는 먹을 것 구해 올 배짱 좋은 사람 한명 필요하거든요.”
“그게 저라고요?”
“아니에요?”
“……”
“최소 저보다는 깡 있는 놈일텐데.”


수빈이 머리를 헝클었다. 이 대범한 연세대 형님은 도대체 뭘 믿고 구면도 아닌 사람을 그렇게 집에 들이고 동거라는 단어까지 막힘없이 내뱉을 수가 있을까. 생각이 여과없이 입으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수빈에게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봉쇄된 광주에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계약에 동의했다. 잠깐만요. 연준이 자그마한 책상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이왕 할거 제대로 해야죠.”


몇번 펜 뚜껑을 가지고 낑낑거리던 연준은 이로 펜 뚜껑을 물어 열었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써내려갔다.


“이게 계약서에요?”
“왜요, 제 필체가 그렇게 멋없나.”


나름 열심히 쓴 건데. 연준이 툴툴거리며 수빈의 앞으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수빈은 자기 이름 옆에 군말없이 서명을 했다.


“밖이 저 모양이니까 복사는 못하고요, 원하신다면 베껴가세요. 제 서명 빼고.”


연준이 덧붙이며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 장바구니와 지폐 몇장, 동전 몇장을 수빈의 손에 쥐여주었다. 지금 나가라고요? 수빈이 물었다. 연준이 수빈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는 놈을 본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럼 저녁에도 라면 먹을 거에요?”


지금 계엄군도 없으니까 빨리 튀어갔다가 와요. 아! 그리고 무조건 장씨 할머니 슈퍼로 가셔야 해요! 장.씨.할머니! 연준의 세세한 지침을 귀 따갑도록 들은 수빈은 장바구니를 들고 냅다 거리를 달렸다. 도대체 장씨 할머니네 슈퍼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 슈퍼를 고집하는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계엄군들은 정말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수빈은 장씨 할머니 슈퍼에 홀린듯 도착했다. 낡은 건물과 조촐한 건물 안은 딱히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인상을 풍기진 않았다. 수빈은 쭈뼛거리며 슈퍼 안으로 들어섰다. 주름이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수빈을 반갑게 맞았다.


“청년 왔어야?”
“네…”
“천천히 둘러보다 가.”


수빈은 연준이 쥐여준 돈과 자기 돈을 합해 보았다. 연준이 준 돈은 꽤나 빈약한 금액이었으나 수빈의 돈과 함친다면 조그만 고기 한 덩이는 살 수 있지 싶었다. 수빈은 큰 맘 먹고 고기 덩어리를 샀다. 건장한 사내 둘이 먹기엔 택도 없는 양이었지만 그래도 고기를 사가니 수빈은 기분이 참 좋아졌다. 광주의 김첨지는 그의 동거인에게 줄 설렁탕, 아니 고깃덩어리를 들고 기쁘게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