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협의 이혼이 성립되었으며, 재산분할은 남편쪽에서 말한데로 진행하시겠습니다
판사봉 소리가 조용한 조정실에 울려퍼진다.
-오늘은 또 뭔데?
-낸들 아나...
-자자!!!!오늘 둘의 이혼2주년 기념일 축하 자리야.
-미친놈...
작은 술집. 창문에 블라인드는 전부내려져 있고, 입구에는 [영업이 종료되었습니다.] 팻말이 걸려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세상 밝은 남자는 작은 케잌에 초를 밝히고 꽤나 즐거운 얼굴로 나란히 앉아있는 남녀에게 들고 다가간다.
-하아...이혼기념일은 뭐냐?
한숨을 내쉬며 낮은 목소리로 짜증스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는 남자의 이름은 '김석진' 37살. 이혼 2년차.
- 뭐 좋은 날 이라고...기념을 해.
머리를 쓸어올리며 미간을 찌푸리는 여자의 이름은 '서제이' 34살. 이혼 2년차.
-뭐라도 기념하면서 살자. 긍정적으로!!!!요즘 인생사 너무 삭막해!!
가게 [그 술zip] 주인이자 제이의 오랜친구, 석진의 대학후배 '정호석' 34살.
-뭐라도 축하하는건 좋은데..이혼기념일이 뭐야. 왜 우리 이혼을 니가 축하해.. 그냥 가게 문닫고 놀 핑계가 필요한거 아냐?
-에헤. 써제!! 이런 친구가 어딨냐? 너 이혼한 날짜까지 난 다 기억해~대단한 우정이지!!
-황금같은 금요일에 가게 문을 9시에 닫는 사장이 어딨냐. 너 사장이고 가장이야 임마.
나무라는 듯한 석진의 말에 뭐 어떻냐는 장난스런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는 호석을보며 작게 미소짓는 제이.
-벌써 2년이네.시간 참 빠르다.
턱을 괴고 포크로 애꿎은 케익을 찔러대던 제이가 말했다.
그러자, 케익을 잘라 앞접시에 덜어 제이의 앞에 놓아주던 석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연다.
- 그래? 난 시간이 느리게 가던데. 2년...오늘까지 다 합치면 총 14년 인가?
-뭐가?
-우리.
-와...진짜네...14년...참...길었네..
-자 자! 쓸데없는 소리들 그만하고! 짠짠짠!!
어느새 호석이 본인들 앞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고 잔을 들었다.
깨끗이 비운잔을 내려놓는 셋.
셋다 근처를 살아 호석의 가게에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술을 마시지만 이혼기념일이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던중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는지 셋이 소주 5병째를 열었을때,
-나 담배. 뒤에서 핀다.
가방 안 에서 담배를 꺼내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가는 제이.
후우..뿌연 담배연기가 내뱉는 숨에 가득이다.
생각이 많은 얼굴. 표정관리에 영 젬병인 제이는 멍하니 있을까...피곤한데 괜히 왔어...라며 작게 중얼거린다.
-그러게. 피곤한데 괜히 왔지?
필터 끝까지 피워버린 담배를 깡통에 던져넣고,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한모금을 깊게 빨아들였을 때, 어깨에 얹어지는 겉옷과 석진의 목소리에 놀라 사레가 들렸다.
연신 콜록대며 가슴을 통통치는 제이의 등을 두드리다가 가게로 들어가 물을 가지고 나오는 석진.
한참을 기침하던 제이는 컵을 받아 물을 들이키고 숨을 고른다.
-깜짝 놀랐잖아!!
벌게진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매달려 소리친다.
-미안. 진짜 미안한데 한번 좀 웃을게!
제이의 눈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고개를 젖혀가며 크게 웃는 석진.
어이없어 눈을 흘기지만 볼에 올려진 석진의 손을 치우진 않는다.
-또 쓸데없이 집중하니까 누가 오는지도 모르지. 피곤하면 가. 데려다 줄게.
-피곤해...오늘 새벽에 출근 했어.
-그러니까 데려다 줄게. 가방 가져올까?
-뭘 데려다줘. 걸어서 5분이다. 혼자 갈게.
-기다려. 짐 가져올게. 호석이한테 말도하고.
거절의 말은 들은척도 않고 제이의 짐을 가지러 가는 석진.
휴대폰을 보니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다.
-가자.
-호석이 뭐라 안해?
-응. 내가 다시 올거라니까 안주 만들어 놓겠데.
-괜히 당신까지 술 흐름 끊기게하네. 미안
-됐어. 몇시에 출근을 했기에 이렇게 맥을 못춰?
-5시...해도 뜨기전에 사무실 도착했어. 잘 나가는 우리 보물덕에 바빠.
피곤하다 투정반 진심반으로 이야기하는 제이를 보며 피식 웃는 석진이다.
금새 도착한 집.
걸어서 5분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3층짜리 작은 빌라. 1층 현관에 있는 오래되지 않아보이는 보안장치를 열고 석진이 계단을 앞장선다.
2층. 오른쪽 202호.
-여기있어.
있으라는 말에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벽에 붙어 서 있는 제이.
한층올라가 계단을 확인하고, 다시 내려와 제이의 집 앞에 서는 석진이다.
-이제 괜찮데도..
-내맘이 편치 않아서 그래. 이건 내 트라우마이기도 해.
석진은 제이의 집 문을 열고 현관에 놓여진 끝이 뾰족한 등산스틱을 손에 쥔채 집안으로 들어가 방, 욕실, 주방, 베란다, 심지어 장롱까지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제이를 불렀다.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집으로 들어오는 제이.
-고마워.
-나 편하자고 하는건데 뭘. 갈게. 문 잘 잠궈. 고리까지 다 걸고.
-응. 잘가. 술 적당히 마시고. 당신 잘마시는거야 아는데. 그래도 적당히 마셔.
제이의 걱정 어린 말에 석진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손을 그의 등에 가져다 대려다 멈칫하며 손을 내리는 제이.
알아챈듯 그녀를 놓아주고 간다며 손을 흔들며 집을 나간다.
그가 나가자 문고리, 도어락, 체인고리와 바형태의 고리까지 모두 잠그는 제이.
꼭 잠긴걸 확인한 후에야 씻고 잠이든다.
-형도 참. 그럴거면 이혼은 왜 해줬어요?
돌아오자마자 나무라는 호석의 말에 소주잔을 채워 입에 털어 넣고 답한다.
-그렇게 울면서 애원하는데 어떻게 싫다하냐...나한테 뭘 해달란 적도 없는 애가...처음으로 하는 부탁이 이혼이더라...그것도 숨이 넘어가게 울면서.
-심정이나 상황을 모르는건 아니지만...난 형이 잡을 줄 알았는데. 뭐...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
-나빠 임마. 마음이 안변했는데 괜찮은 척 하는게 쉬운줄 아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나는 겁나 행복한데.크크
호석의 말에 술이나 마시라며 잔을 드는 석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