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상의 다락방
[본 작품은 특정 종교 및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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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을 감싸는 공포감은 나의 발을 지면에서 떨어트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정국과 지훈 또한 얼어붙어 벌벌 떨 뿐이었다.
[야 시발 뭐해! 움직여!]
지훈이 밀치며 엎어졌던 민지가 벌떡 일어서며 얼어붙은 셋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어, 어? 응!"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든 나와 정국, 지훈은 거먼 존재가 없는 곳으로 온 힘을 짜내 달리기 시작하였다.
'아 시발!'이라 외치며 달려가는 지훈에 민지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을 내뱉었다.
[쟤네 행동 자세히 보라고 병신아! 소리에 반응 하는 거 같지 않냐?]
민지의 말에 나머지는 숨을 죽이고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소리에 반응 한다? 유심히 거먼 존재들을 바라보니 허옇게 빛나는 눈빛을 쉽사리 구분 할 수는 없었지만, 나와 정국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야!"
거먼 존재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치니 셋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뭐하는 짓이냐고 속삭인다.
"목표에서 잠시 동안 제외 된다는 게 이 소리였구나."
내 말에 정국은 귀를 기울이더니 이내 아, 하고선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탄식을 내뱉는다.
걱정스런 정국의 눈빛이 닿는 곳은 민지와 지훈이었다.
[대충 뭔 얘기인지 알겠네. 그 화분 말 하는 거 맞지?]
눈치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른 민지 또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입을 연다.
[너네 둘은 소리를 내도 안전한거지?]
속삭이는 민지의 말에 나와 정국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아. 우리 최대한 입 닥치고 가보자.]
지훈은 왜 네 맘대로 하냐며 따지려다 거먼 존재들을 슥 바라보더니 입을 꾹 닫는다.
지훈 또한 굉장히 겁이 나는 것이겠지.
거먼 존재들의 동태를 보아하니, 소리를 빽빽 지르며 도망 다니는 여럿 학생들을 쫒는 듯 보인다.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첫 번째 목표가 학교 운동장을 벗어나는 거다."
내 말에 아이들은 끄덕이며 쥐죽은듯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종종 거먼 존재가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목표가 없나 물색하기 위해 그저 둘러본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학교 운동장을 어느 정도 다 빠져 나가려 하는 그 때,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우리에게 급하게 달려온다.
[너, 너네 무슨 방법이 있는거지?! 제발. 제발 날 데리고 가줘!]
더 이상 아무도 없던 운동장, 오직 소리를 듣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던 거먼 존재들은 말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고개를 휙 돌려 기분 나쁘게 쳐다보았다.
운동장에만 있는 거먼 존재는 대략 넷,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다.
한 둘이면 몰라도 넷이 전부 다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니.
"일, 일단 조용히해!"
온 얼굴이 눈물인지 콧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축축해진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자 눈썹을 들썩이며 읍읍 거렸다.
얘를 데려가 말아.
나와 나머지 아이들은 서로 눈빛으로 묵묵히 대화 할 뿐이었다.
데려간다 한들 이 아이는 부상이 심한 상태이고, 애초에 쓸모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현재 상황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지훈은 힘 좋고, 김민지는 머리 좋고, 전정국은 얜 만능이니 함께 가는 것인데, 아니 그러면 얘네 입장에서는 내가 머리수만 늘리는게 아닌가? 난 그닥 쓸모가 없는데.
"어디 아파?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이야."
정국이 얼굴을 잔뜩 밀착하여 내게 속삭였다.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얘 어떻게 할래?"
나의 질문에 셋은 고민을 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데려간다, 데려가지 않는다로 투표를 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데려가지 않는다 1, 데려간다 3
물론 데려가지 않는다에 한 표는 나였다.
김민지라면 데려가지 않는다 할 줄 알았는데, 이건 충분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좋아 그럼 다수결에 따라서 데려가ㅈ"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 범벅이 된 아이의 뒤에서 훅,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후드를 뒤집어 써 얼굴을 바라보기도 전에 빠르게 지나간 사람은 손에 들려 있던 날카로운 날붙이로 아이의 다리를 깊게 찌르고 이내 거먼 존재들이 있는 곳에 밀쳐넣었다.
[으아아악!]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다리를 붙잡는 아이, 그 비명 덕에 거먼 존재들의 시선은 우리가 아닌 저 애에게 닿았고, 이내 거먼 존재들은 그저 '목표'를 '사냥'하기 위해 긴 팔 다리를 휘적이며 다가왔다.
[일단 튀어.]
날붙이를 찔러 넣었던 사람은 우리 일행들을 질질 끌고서는 바깥으로 향하였다.
[야 너 뭐냐? 쟤를 왜 버려!]
그 아이를 향한 구박과 질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데려간다에 손을 들었던 정국은 그저 말 없이 묵묵히 운동장을 바라 볼 뿐이었다.
더 이상 목표가 운동장에 없다고 느낀 거먼 존재들은 딱딱한 동상 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오늘, 일상이 망가지고 내 삶이 무너졌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나, 전혀 없지.
본래의 삶을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건가, 물밀듯이 몰려오는 불안감은 내 심장을 옥죄이며 가득 움켜쥐었다.
쿵 쿵,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며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몸은 점점 앞으로 숙여지며 바닥으로 고꾸라질듯 아슬 아슬하게 휘청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불안감을 빨리 해소하는 것 뿐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대자 후드를 집어 썼던 아이가 내 몸을 붙잡았다.
몸의 중심이 쏠려 기울어지자 후드가 벗겨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김태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