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연애 종료 n일차, 오랜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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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연애 기사가 돈지 얼마나 됬다고 이번엔 정국의 연애 기사가 올라왔다.
"야 너 기사 봤어? 전정국 연애"
"봤어"
"..뭐야,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
"그냥..여기서 뭘 더 신경써, 할만큼 했으니 된거지"
"으휴 ㅉㅉ"
여성의 혀차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술잔을 들어 원샷한 여주는 혀끝에 맴도는 쓴 맛을 느끼며 저의 말을 곱씹업봤다.
그래 이제 할만큼 한게 맞다. 고작 한달의 계약연애였음도 사랑을 한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힘들어 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이 괜찮아지기도 했다.
매일 밤 울던 시간들이 헛되진 않은건지, 정말 시간이 약이라도 되는건지 서로를 볼 수도 없던 많은 시간이 흐르니 너무 아파하기만 하진 않았더라
이제 정말 그 아픔들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 더는 무너지지 않도록.
"그래서 친구다 뭐 이지랄인거냐?"
"뭘 또 지랄이래...정국이 좋은 사람이잖아. 술친구도 할 수 있는거고 뭐..어쨌든"
"야 이건 쿨한걸 넘어서 걍 가지가지한거 아니니"
"쿨하다고, 응 친창으로 들을게"
결국 그들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떠올리고 이름을 부르며 함께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여주의 성격도 한 몫 했다. 좋은 친구 사이로라도 남자는 말을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모습으로 말했다는거다.
그리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정국의 마음도 알 수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야..근데 석진이,,이번에 한국 들어왔다더라"
"응..."
"뭐 연락 온건 없고?"
"간간히 연락하면 지내고 있었어..그리고 우리가 서로 그렇게 막 연락 할 사이인가"
"참나 전정국이랑은 친구 사이 하겠다며 김석진이랑은 친구 사이로 안남았냐?"
"아니, 그냥..내가 무슨 염치로 그래"
"..아직도 겁부터 먹는 버릇 못고쳤구나 넌"
"........."
김석진. 그는 여주의 전남친이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석진과 여주는 그렇게 좋게 헤어진건 아니었다.
"하아...."
그때를 다시 생각하자니 숨이 막히는거 같았다. 폐부에 들어차는 차가운 공기가 어쩐지 더 시리게 느껴진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는게 맞아..? '
'...석진아 난 ..이별이 다가올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 너를 사랑하지 않는게 아냐..잊혀지는게 식어가는게 이 모든게 진짜가 아니라면, 그럼 어떻게 난..'
'여주야 사랑한다고 말해줘. 너 지금 그 한마디 할 수 있어? 아니잖아 '
'.........'
'....이제 지쳐..이렇게 두려워하기만 하고 정작 날 안봐주는 너 때문에 나도 이제 두렵다고, 우리가 정말 멀어질것만 같아서 '
그날의 석진의 잔상이 짙어진다.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지친 목소리로 울 듯이 말하는 석의 모습이, 그리고 그 말들이 여주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비수로 남아있다.
정말 잊지 못할 행복한 추억임과 동시에 후회와 아픔이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진짜 사랑 따위 모른다며 사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채 자라온 여주는
아주 어릴 때 부모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미련하게도 자신이 죽도록 사랑했었다는 그 바람난 전남편 하나 못잊은 어머니는 매일 밤 혼자 숨죽여 울었으며, 여주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자라왔어야 했다.
그렇게 자라며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두려움부터 느끼는 저를 품어주던 유일한 사람이 바로 김석진이었다.
석진을 보며 저를 고쳐왔고 타인과 마주보며 사는 법을 배웠었다. 석진을 사랑함과 동시에 그는 여주의 우상과도 같았다.
하지만 세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여주는 매일같이 저를 사랑스럽다듯 바라보는 석진을 앞에 두고도 저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나 모르겠다며, 내가 뭘 할수 있겠냐며 하소연이나 했었다.
그리고...스스로를 내치고 채찍질하던 저의 모습에 오히려 상처받은건 석진이었다.
저만 보며 사랑한다고 품어주던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그 순간에서 조차 사랑한다 한마디를 못했던 여주는 그 후 그렇게 단념하게 됬다.
연애도 짧게 하자..저를 보며 상대방은 지칠것이니, 나는 뭐가됐든 사랑 그 까짓거 앞에서 겁이나 먹는 사람이니까
그저 자신의 콤플렉스와 같은거였고 그거 하나로 여주는 홀로 고립되어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은 석진과 간간히 안부를 주고받으며 친구 사이로 남은건 맞았다. 그저 그에게 상처줬던 기억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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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분위기의 어느 술집 안, 항상 적당량만 마시더니 오늘은 왠일인지 잔뜩 취해 축 늘어져 있는 여주.
그런 여주의 앞에 누군가 드리워졌다. 그토록 보고싶던 얼굴이다.
"어..안녀엉.."
"여주야..뭘 이렇게 많이 마셨어"
"안녀엉 정구가아.."
"후우...그래, 안녕 여주야"
알딸딸하게 취한 여주가 늘어지는 말꼬리로 정국에게 인사를 하자 정국도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인사를 받아줬다.
보고싶어서 급하게 온건데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잔뜩 취해 실없이 웃고만 있는건지..왜 저를 보는 눈이 저리도 슬퍼 보이는건지, 정국은 알 수 없었다.
"불러서 나온건데..혼자 이렇게 취해버리면 어떻게"
"너 여자친구도 있잖아아...내가 부른다고 이르케 막 나오냐 너는.."
"상관없는데, 나 차였어"
"....뭐야 그게.."
웃프게도 사실이었다.
정국은 웃음이 나오려는걸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차이고 오는 길인데...
오늘 시간되면 만나자는 여주의 연락에 정국은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 그러다 중간에 전화가 왔고 여주인 줄 알고 받았다가 실수를 저지른거다.
여자친구에게 여주의 이름을 불렀고 그래서 뭐 당연히 바로 차였다.
진심도 아니었던 만남이이었기에 그리 마음이 쓰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여주가 빨리 보고싶던 정국이었다.
그러다 문득 여주의 마음이 궁굼해졌다.
나는 너를 못잊었는데 넌 정말 그때의 우리를 잊은건가 싶어서.., 근데 오랜만에 만나서는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날 보면 어떡하라고...
"여주야 너 너무 취했어. 집에 가자 응?.."
"....으웅"
여주의 대답을 끝으로 정국은 술집에 온지 몇분도 채 안되 여주를 데리고 나갔다.
조수석에 여주를 태우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준 정국이 겉옷을 벗어 여주에게 덮어주며 차를 출발 시켰다.
여주의 집으로 향하는 이 순간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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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온 여주의 집은 달라진거 없이 정국을 편하게 만드는 그 아늑함 그대로였다. 달라진건 정국과 여주뿐이지.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아 멍하니 있는 여줄 보자니 정국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자애가 무슨 남사친을 집에 막 들여...다른 남자들한테도 그러나...
스쳐가듯 떠오르는 생각에 정국이 여주를 보며 입만 뻥긋 거리다 말았다. 그래 오늘 여주를 이렇게라도 조용히 오래 보고싶다.
그러니 조금은 이기적으로 여주의 곁에 있어주자
"왜 그렇게 아픈 눈을 하고 있어..왜 그런 눈으로 날 봐 여주야 응?"
"정구가..내가 슬퍼? 그런건가아.."
"응..슬퍼보여.."
"맞아..나 슬픈거 가타"
"...왜?"
"아..아 정국아..정구가 미안해...내가 너무 미안해에에"
"여주야 ㅁ...!!!!"
포싹 -
정국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던 여주가 갑자기 앞으로 꼬꾸라졌다. 아니 양쪽이 다 소파인데 왜 하필 앞으로..
팔을 뻗어 여주를 받아낸 정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저의 품으로 안겨진 여주를 바라봤다.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엄한 생각이 들거같아 그 전에 여주의 오금 사이로 팔을 넣어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려 여주의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여주를 눕히고 머리를 정돈해주며 시선을 때지 못한채 계속 바라보는데 그 순간 갑자기 여주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
"왜 울어 여주야..."
"......."

"..아프지마,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잖아"
여주의 침실 안 정국의 음성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게 있어..? 그랬으면 좋겠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왜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
잠든 여주의 뺨을 만져보기도 하고 머릿결을 쓰다듬기도 하던 정국이 작게 열린 창문 사이로 더욱 거세게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아, 여주가 좋아하는 비네. 너는 비 오는 날에는 잠이 더 잘온다고 그랬는데..내 품에서 이 빗소리를 같이 듣자니 좋다고 그랬었는데..
정국이 폰을 들어 메니저 형에게 톡을 남기고는 조심스레 여주의 옆에 몸을 뉘였다.

연애 종료 n일차, 오랜만에 비가 왔다. 비를 핑계삼아 네 곁에 더 머무를 수 있어 좋다. 또 오랜만에, 이 밤이 외롭지는 않겠구나
*
'너랑 같이 있으면 내가 네 애인이 맞는지도 모르겠어 '
'.......'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는게 맞아? 나 힘들어..이제 지쳐 여주야 '
여주가 땀에 젖은 꼴을 한채 헉 하고 몸을 일으켰다.
무서운 꿈이라도 꾼것마냥 거친 호흡을 하며 일어선다.
이 꿈을 꿀 때면 여주는 매일 밤 또 다시 상처받으며 아파할 수 밖에 없었다. 장르가 호러여야지만 무서운가, 여주에게는 이 꿈은 큰 두려움이었다.
그렇다고 석진에게 미련이 있다는게 아니다. 그때 그랬던 자신이 그리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자신이 한없이 미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꿀 때면 여주는 말없이 몇분이고 아니 몇십분이고 가만히 창밖을 보곤 했다. 날씨가 어떻든간에 바깥이 어찌 보이든간에 지금 당장 아파오는 저의 감정을 날려 보내면서, 그러면서 여주는 한결 괜찮아지고는 하니까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닌거 같다.
아니 얘가 왜 여기에...
"...추위도 잘 타면서.."
밤 사이에 비가 어찌나 많이 온건지, 정국은 그 이유 때문에 집에 가지 않은건가 하며 생각해봤다.
저가 독차지하는 침대에 구석탱이에 작게 몸을 웅크려 덮는 이불 하나 없이 잠을 자고 있는 정국을 보자니 웃픈 마음이 들었다.
정국의 몸을 어찌저찌 제대로 눕혀주고 이불까지 따뜻하게 덮어주려는데 그 순간 정국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어...."
"......."
눈이 정통으로 마주치며 뻘쭘해진 여주가 다시 이불을 정국에게 덮어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곧이어 들리는 정국의 목소리.
"여주야..왜 울었어.."
아직 잠에서 덜 깬건지 몽롱함에 취한 목소리로 여주에게말해본다.
"울지마.."
"........."

"너무 아파..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잖아..여주야 그게 그냥 너무 아파.."
울먹거리며 말하는 정국의 눈꺼풀이 다시 감겼다. 장꼬대같은거였나보다.
하지만 여주는 그대로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흘러내리늣 정국의 눈물을 보았음에도 닦아 줄 수 조차 없었다.
가슴께가 미치도록 아려오는 것이, 자꾸 감정이 벅차올라 주저앉아 울것만 같았다.
연애 종료 n일차, 나 때문에 아프다고 우는 너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게 아니다. 그렇기에 나도 우는 너 때문에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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