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씁쓸한

11_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

정한은 소집된 조직원들 앞에서 의자를 집어던졌다. 모두가 바짝 긴장하며 정한의 눈치를 살폈다. 조직원들도 이런 정한의 모습은 처음이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민규는 조용히 구석으로 던져진 의자를 주워 다시 세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진중하게 말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찾아오겠습니다."

"평생 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녀석이 망나니를 이기겠다고?"

"기회 없이는 얻을 수 있는 것도 못 얻습니다."






정한이 숨을 고르고는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꼬아서는 팔짱을 끼고 민규를 훑어보았다. 할 수 있겠어? 가 아니고 해야만 해. 정한이 내뱉은 말에 민규는 주먹을 꼭 쥐었다. 어떻게든 제 목숨과도 바꿔서라도 해내겠다는 마인드. 민규는 하겠다고 해내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다른 조직원들도 민규를 따라 나섰다. 정한은 화를 억누르는 척 민규에게 원우의 잭 나이프를 내밀었다.





"찾아와. 어떻게든."





마치 개를 훈련 시키는 것처럼 나이프에 남은 냄새를 따라 원우를 찾아오라는 것처럼 민규에게 잭 나이프를 넘겼다. 민규는 잭 나이프를 받아들고는 모두를 불렀다. 지금부터 승철 쪽을 친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하게 원우를 구하는 것. 그것만 생각하고 움직인다. 민규를 따라 모두가 나섰다. 정한은 슬금슬금 그 뒤를 따라나섰다. 드디어 그곳으로 간다. 최종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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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철 쪽은 난리도 아니었다. 마냥 배신한 것만 같은 녀석이 제 발로 죽음을 맞이하러 돌아왔다. 승철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 녀석을 어떻게 죽여야 제가 지금껏 쌓아온 분이 풀릴까. 답은 내릴 수 없었다. 지금껏 이 재미를 보기 위해서 살아온 것 같은데 어떻게 제 스스로 제 재미를 죽이겠는가. 승철은 원우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못 죽일 것처럼 굴더니. 죽으러 온 거야?"

"

"웃기지 마. 난 너 마음 편하게 못 둬 원우야."

"제발... 보스."






승철이 새 나이프를 원우에게 건냈다. 받지 않으면 어떤 고문을 당할지 모른다. 원우는 나이프를 받아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립감도 영 별로고 자신이 잡아왔던 잭 나이프에 익숙해진 손에 이 나이프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마치 사람인 것처럼 나이프랑 낯가리는 원우의 모습에 승철이 웃었다.






"그러게 네 소중한 걸 남에게 쉽게 주면 안 되지 원우야."

"그걸 어떻게..."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겠어. 그것도 너에 대해서."





원우는 승철에게 완벽히 패배했다. 아니 그런 척이었지. 승철은 순영을 불렀다. 순영이 긴장한 채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걷어차이는 순영. 원우는 저 바닥으로 쓰러진 순영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승철이 물었다. 원우야 지금 기분이 어때? 아 이럴 때는 뭐라고 하더라. 원우는 무미건조해진 표정으로 답을 내뱉었다.






"모르겠습니다."






승철이 만족한다는 듯 원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몰라도 된다고 그 누구도 실패작에 마음을 담아두진 않는다고 말했다. 실패작. 달갑지 않은 말이다. 원우는 나이프를 들었다. 쥔 손은 자유로웠다. 금방이라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것 같은 손이 순영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나이프랑 낯가리는 손 덕분에 나이프가 손에서 미끄러져서는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나이프를 주워서 일을 진행하려는데 승철이 흥미를 잃었는지 됐다며 원우를 말렸다. 그리고는 원우에게 네 잭 나이프를 찾아올게. 라는 말을 남기며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엔 여전히 무미건조한 원우와 공포에 질린 순영이 남았다.

순영은 처음 느낀 공포감에 휩싸여서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는데 그 마저도 그쳐야 될 것 같았다. 순영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원우가 일어나서는 그 자리에서 떠나려는데 순영이 원우를 불렀다.





"뭐라도 들고 와서 죽여. 그 망할 손으로 그냥 죽여버리라고!!"

"죽일 생각 없었어."

"...뭐?"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





원우의 말에 순영이 더 겁을 먹었다. 정말 저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면 그 행동과 저 표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거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분명 칼을 쥔 그 순간은 진심이었다. 제게 마음껏 공포를 쑤셔 넣고는 죽일 생각이 없었다고? 순영은 풀린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일어나 원우의 멱살을 잡았다.





"헛소리도 정도껏이야. 그럼 지금 네 표정은 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모르긴 뭘 몰라!!"

"누가 그랬었어. 나한테는 사랑이란 감정이 없다고."





사랑이 없다는 말은 누군가를 끔찍하게 아끼는 감정도 없으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도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까 순영의 관점에서 보면은 단 한 번도 순영을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 그냥 그런 상황이니까 제 목숨을 위협한 것. 그리고 그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이 표정까지.

소문으로는 그저 승철과 이런 일을 즐기는 것인 줄 알았다. 마치 사람을 죽이면 평소 모르던 희열이라는 것에 사로잡히는 소위 말하는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것보다 더 했다. 사랑을 모르고 자란 소년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었다. 그저 모든 상황에 수긍하여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했을 뿐이었다.

순영의 손은 자연스럽게 힘을 풀었다. 원우는 구겨진 옷을 정리했다. 자신은 지금 누굴 감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진작에 이런 소년을 알아보고 제 마음대로 취급하기 위해 소년을 키워온 승철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순영은 자리에서 황급히 달아났다. 다시 저 무미건조한 표정을 보았다간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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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는 승철에게 받은 나이프를 다시 잡았다. 아무리 제 손에 맞지 않더라도 정한과 민규가 올 때 이 나이프를 놓쳐버리면 둘 다 당황할 것이다. 아까와 같은 실수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짧은 시간 내에 이 나이프에 손을 맞춰야 됐다. 승철이 오기 전까지 원우는 나이프를 쥐고 떨어뜨리고를 반복했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어가며 입맛에 맞추는 것처럼 손은 꾸역꾸역 나이프에 익숙해졌다.

시간이 좀 지나고 승철이 원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정한이가 널 생각보다 많이 아꼈나 봐? 승철의 물음에 원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철은 정한 쪽으로 쳐들어가려고 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원우에겐 이 자리를 지키라고 말했다. 원우는 자신도 가겠다고 일어나는데 승철이 분위기를 무겁게 잡아왔다.





"착각하지 마 원우야. 난 널 용서한 적이 없어."

"죄송합니다."

"알겠으면 털리지 않게 조직이나 지켜. 또 도망가면 그땐 죽일 거니까."






승철은 방문을 잠궜다. 원우가 달아날 곳은 이제 없다. 아니 없는 게 맞을까? 원우는 생각보다 편안했다. 조직이 털리지 않게 지키라면서 문을 잠궜다는 것은 애초에 집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도망갈 생각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이 문을 열어주는 건 승철일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도 생겼겠다. 원우는 나이프를 다시 들었다.







밖은 소란스러웠다. 정한의 조직원들과 승철의 조직원들이 뒤섞여서는 여기저기 마찰음과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승철은 그 속에서 정한과 민규를 찾았다. 역시나 둘 다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원우를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원우는 제가 잡고 있으니 결국 어떠한 소득도 없이 돌아갈 것이라고.

그때였다. 저 멀리 차에서 민규가 내려서는 싸움에 합류했다. 언제 저렇게 싸우는 실력이 좋아진 것인지 민규는 피지컬로 승철 쪽 조직원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승철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저 세워진 차에 정한이 있을 거라며 아직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을 움직였다.

조용히 움직여 차로 향하던 조직원들. 그러나 민규가 싸우는 모습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단지 차에 도달하려는 녀석들을 막아내는 줄 알았는데 민규가 싸우는 모습에서는 차를 지키겠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뒤늦게 눈치챈 승철에게 조직원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신호를 보냈고 승철은 곧바로 원우쪽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자 원우가 나이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승철은 한 편으로는 안도하고 원우를 불렀다. 원우가 경직된 자세로 승철을 맞이했다. 승철은 역시 원우가 없으니까 재미가 없다며 원우를 끌고 나갔다.






"제대로 해야 될 거야."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혼란 속으로 원우가 걸어나갔다. 원우는 겨우 제 손에 맞춘 나이프를 들고 한 명씩 처리했다. 원래 제 방식으로 했다가는 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 그 방식은 배제했다. 한 번 나이프로 찍고는 발로 차 바닥에 나뒹굴게 하며 시간을 벌었다. 승철은 평소의 원우의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역시 사랑이란 감정 따위는 없는 녀석이구나 싶었다.

한두 명 처리하기 시작하자 원우의 눈에는 민규가 들어왔다. 결국 이 나이프로는 민규를 공격해야 될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알고 있다. 제가 다루던 잭 나이프는 특별하니까 제가 알고 있던 잭 나이프라면 지금 이 나이프로 이길 수 없겠지.

원우와 민규는 눈빛을 교환했다. 민규는 원우를 기절시키기 위해서 움직였고 원우는 민규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 구경하고 있던 승철에게 전화 한 통이 울렸다. 누가 이 흥을 깨는지 승철은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는데.

정한이었다. 그리고는 승철의 뒤에서 걸어오는 정한. 승철은 놀라서는 바로 공격에 나섰지만 여전히 잘 피하는 정한. 승철은 이런 정한이어서 지금껏 죽이지 못하고 어깨를 나란히 했어야 됐다. 결국 공격을 멈추고 정한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승철.





"그래 잘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들어나 보자. 윤정한."

"알면서 그래. 난 당연히 원우를 원하지."

"원우랑 너랑 사랑한다는 거 나한테는 안 통하는 거 알지?"

"좀 섭섭하다. 내가 예외일 수도 있지?"

"예전부터 붙어다니던 김민규라면 모를까. 너는 아니지 정한아."





예상했다는 반응이라는 듯 정한은 거래를 그만두었다. 이쪽이 원하는 것도 저쪽이 원하는 것도 같다면 결국 둘 중 한 명은 포기를 해야 된다는 것. 이곳에서 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제 목숨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과 같았다. 이 암묵적인 룰을 모를 리 없는 두 사람은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예전 방식으로 하면 죽는 쪽이 없으니까 룰을 좀 바꾸는 게 어때?"

"한 쪽이 죽을 때까지라... 괜찮겠어 승철아?"

"피하기만 해서는 날 못 이기니까."

"공격만 해서는 날 못 이길 텐데."






둘은 서로를 탐색했다. 언제 어떻게 공격에 들어갈지 그 뒤로 다음 공격은 어떻게 이어갈지 다음 공격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고민 끝에 정한이 먼저 나이프를 휘둘렀다. 정한의 공격을 몸을 뒤로 빼며 피한 승철이 빈틈을 파고드려는데 그 방향으로 나이프가 휘둘러지자 승철이 급하게 몸을 뒤로 빼며 수비를 갖추었다.

제법 공격을 할 줄 아는 정한의 모습에 승철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공격에 들어가는 승철. 역시나 이리저리 잘 피하는 정한. 한 번 반격을 들어오면 승철도 곧바로 피했다. 이쯤 둘은 느꼈다. 역시 체력싸움이 되겠구나 라는 것을.








원우와 민규도 상당히 치열했다. 한 명은 기절이고 한 명은 죽이는 쪽이다 보니까 당연히 민규 쪽이 조심스러웠다. 이러면 결국 기절 시키기도 전에 승철 정한 쪽의 싸움이 끝이 나거나 제 목숨이 끝이날 것 같았다. 결국 민규는 이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원우를 리드했다. 어떤 식냐고?






"...!"

"하아...드디어 잡았다. 전원우."






제 정신으로 칼을 휘두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민규에게 흐름을 빼앗겼음을 깨달았을 땐, 민규의 어깨에 피가 울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