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 EP.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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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잠깐 피로함만 풀려 소파에 누운 것인데 밖에 오던 봄 비는 그치고 벌써 날이 어둑해져 해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또 옛날 생각을 해버렸다. 여주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날이었다. 그러다가 오늘이면 또 그 꿈을 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우진은 대충 외출복을 꺼내입고 지갑만 챙겨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진에게 밤은 매우 길고 험해서 준비할 것이 필요했다.  

  

  

초록색 병을 몇 개 들고 계산대 앞에 선 우진은 잠시 고민을 했다. 담배를 끊은지도 7년가까이 지났는데 오늘따라 눈길이 갔다. 계산대 앞에만 서면 보이는 담배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담배를 필 때마다 짓던 여주의 표정과 잔소리가 생각나 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던 중 큼큼 거리며 담배를 사려면 얼른 사고 계산만 하려면 얼른 계산을 하라는 알바생의 무언의 압박에 결국 술만 계산하고 나오게 되었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우진은 아직도 그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봄바람을 맞아가며 서서히 취해가던 중이었을까. 우진의 눈 앞에 금발의 한 여자가 벚꽃나무 아래에 서서 해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자신이 알던 여주와 너무 닮아서, 그 여자를 보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당장 그녀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보는 이것이 환각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우진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그를 불렀다.  

  

"지니야-!"  

  

 여주가 자주 불러주던 우진의 애칭이었다. 우진은 애칭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갔다. 하지만 우진의 손이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쾅 소리와 함께 여주가 5년 전 마지막으로 봤던 그 끔찍했던 모습과 같은 모습을 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 위로 벚꽃 잎과 함께 비가 쏟아져내렸다. 이것이 또 그 지독한 악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우진이 정신을 차리자 방금까지 여주가 서있던 그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벌써 몇십번도 넘게 꾼 악몽이었다. 여주가 죽은 뒤로 매년 봄이 오면 우진은 여주를 잃는 꿈을 꾼다. 정말 잔인하게도 꿈 속의 여주는 우진에게 한 번도 안긴적이 없다. 항상 저 멀리서 우진을 부르며 웃다가 우진이 다가가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우진은 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꿈을 그만꾸기 위해 별 짓을 다 해봤다. 술에 절여진채 잠이 들었던 적도 있었고, 수면제를 털어넣기도 했으며, 심리상담사에게서 수면치료를 받았던 적도 있엇다. 하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그런 방법을 써도 봄이 되면 항상 꿈을 꾸었다. 그런 우진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은 밤을 새는 것이었다. 단순했지만 어리석기도 한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우진은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속 버텼다. 봄만 버티면 봄이 지나간 후에는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  

  

  

 그렇게 봄이 오면 우진은 항상 잠을 자지 않았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채 몇 번 잠들었지만 이것도 금세 적응이 되어 이제는 3일 정도 가뿐히 버틸 수 있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하다보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함 일이었다. 어떤 날은 우진이 수면부족으로 쓰러졌다가 4일은 족히 지나서 깨어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4일이라는 시간동안에도 그 지독한 악몽은 계속 꾸었다. 우진은 저만 두고 떠난 여주가 원망스러웠다. 대체 왜 나만 두고 떠나간거야?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할거 알면서 그런거야? 여주야. 대답좀 해줘. 나 너무 힘들어. 이 세상은 내게 너무 지옥같아. 제발...제발 나 좀 어떻게 해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제 품에 안겨 화사하게 웃는 여주의 사진에 대고 말을 마구 쏟아내었지만 돌아오는건 항상 고요한 정적뿐이었다. 봄만 되면 여주가 없는 이 방과 이 집이 더욱 춥게 느껴지는 우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