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비가 내리는 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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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로 돌아와 의자에 앉는 순간, 무언가 머릿속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별 일 아니라고 잠시 그런거라고 넘겨짚고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시야가 너무 흔드려서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고개를 흔들어봐도,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고, 이어 귀가 터질 것 같이 아파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님의 자리로 갔다.

"저.... 아무래도.... 병원에...."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끼이이익-

빗길에 차가 미끌리는 소리.

"여주야!!"

다급하게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쿵-!

무언가 부딪히는 굉음.

그리고 의건이가 보였다. 나와 같이 바닥에 쓰러져 나를 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 밤. 의건이의 피는 검게 보였다.

"안.. 돼...!!"

2년 전 그날의 일이 모두 떠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꿈에서 깬 곳은 병원이었다. 그리고 내가 덮은 이불 위엔 처음보는 꽃다발과 편지 한장이 있었다.

누가 보낸 건지 내 이름밖에 적혀지지 않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의건이의 편지였다.

'너와 함께했던 순간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일이 없어. 그러니까.. 네가 많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되지 않게.. 너의 삶을 살아줘..

사랑해, 여주야.'

그 순간 내가 마지막으로 본 의건이의 얼굴이 스쳤다.

너는 나에게만 시선을 두며 은은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내 눈물이 가려졌지만 생생하게 기억났다.

사실을 알게되면 또 너무 미안하고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띠링-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회사 마치고 데리러 갈게요. 병원에서 가만히 쉬고 있어요.'

***

그 여자의 상처는 너무 크고 깊어서 감히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어쩌다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건지, 어쩌다 이렇게 치명적인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마음에 두게 된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건, 꼭 그녀가 저앞에서 환히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라는 거다.

그렇게 힘들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아무리 늦는데도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 꼭 그녀를 다시 웃을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갑자기 내 눈 앞에서 쓰러진 여주씨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아 들고 달렸다.

빨리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의 버튼만 계속 해서 누르다가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조수석의 의자를 최대한 눕혀서 여주씨를 기대게 하고 운전석으로 가 시동을 걸었다.

병원으로 달리는 동안, 평소에는 한 반 사용할까 말까한 자동차 경적을 그렇게도 울렸다.

빵빵빵빵—!

“하씨....”

마음이 너무 급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그렇게 도로를 험악하게 달린 후 병원에 도착하여 차를 아무렇게나 세워두고 또 여주씨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주씨를 1인실 병실에 눕힌 후에야 숨을 돌렸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땀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하....”

눈을 감은 여주씨의 앞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 동안에도 여주씨에게서 눈길 한번 거두지 않았다.

어디가 어떻게 아팠길래 사람이 그렇게 힘없이 쓰러져.

의사 말로는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깨어나는 걸 보자는 데. 내 마음은 그렇게 답답했다.

“...빨리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

여주씨가 일어난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고 가고 싶었지만, 일 중에 나온 터라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여주씨의 손을 어루만지다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와 병원 밖으로 나가며 낯익은 사람을 보았다.

여주씨가 그렇게 급하게 쫓아가던 그 할머니.

“..어, 저..”

나를 돌아본 할머니는 나를 보고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신 뒤 가던길을 가버렸다.

시간을 확인하며 회사로 돌아왔지만, 그 할머니의 미소가 자꾸만 떠올라 귀찮게 만들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여주씨는 괜찮은거냐며 묻는 회사 사람들에,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문자 한 통을 남겼다.

'회사 마치고 데리러 갈게요. 병원에서 가만히 쉬고 있어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를 자꾸만 확인했다.

그리고 6시의 긴 바늘이 가장 위를 가르키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봅시다.”

“팀장님? 내일 주말인데요???”

그리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다.

여주씨가 깼는지 몰라 전화도 못걸고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앞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침대 위는 비어있었다.

“....어딜 간거야...”

그때 내 뒤에서 여주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있는데...”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보이는 여주씨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하... 놀랐잖아. 몸은 괜찮아요..?”

“..네. 멀쩡해요. 기다리래서 기다렸는데.. 뭘 그렇게 놀라요..”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이제부터 잘 들으려구요...”

예상하지 못한 여주씨의 대답에 그녀를 안은 두 팔에 힘을 풀고 두 눈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괜찮은 거.. 맞아요..?”

나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씨였다.

내가 기다리던 그런 환란 웃음은 아니었지만, 옅게라도 확실이 미소가 깔린 그녀의 얼굴에 또 한 번 이상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나 이제 퇴원할래요.”

“왜요. 좀 더 쉬어도 돼는데..”

“이 환자복 입기 싫어요. 퇴원할래요. 팀장님, 저 집까지 좀 데려다 주세요.”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여주씨의 목소리가 좋지만 낯설었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게할 정도로 약간의 불안함도 없지 않았다.

“안돼요..?”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아뇨, 당연히 되죠. 옷.. 갈아 입고 있어요..”

병실 문을 뒤로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여주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갑자기 이렇게 달리진 걸까.. 정말 괜찮은 건가..

카운터로 가서 퇴원 수속을 밟고 다시 병실로 돌아가며 중간에 여주씨를 만났다.

“다 챙겼어요?”

“네. 이제 가요.”

또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는 것.

심장이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여주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짐이 될것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픈 상처를 내가 더 들쑤시게 될까봐 그녀 앞에서는 내 감정 표현도, 말 한 마디도 다 조심스러웠으니까.

나의 차 조수석에 올라탄 여주씨를 힛끗거리며 운전을 시작했다.

“팀장님.”

“...왜요?”

“고마워요. 걱정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게 슬픔인것 같기도, 쓸쓸함 같기도 했는데 또 기뻐보이기도 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당연한건데요 뭐.”

심장이 자꾸만 따끔거려서 미칠것만 같았다.

그녀의 복잡한 눈동자는 오늘만큼은 그저 기쁨인걸로 하기로했다.

“언제든지 또 몸 안좋으면 연락해요.”

“...와줄거에요..?”

그녀의 예상치 못한 물음에 당연하다며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여주씨는 아까 병원에서 본 미소보다 좀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네. 바로 전화할게요.”

평소 같았으면 괜찮다, 괜찮을 거다. 나의 호의를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거절했을 여주씨가 바로 전화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여주씨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도 난 한참동안이나 그녀의 집 앞에 있었다.

너무 좋은데. 그토록 기다렸던 예쁜 미소였는데. 기다렸던 그 날이 눈앞에 보일정도로 가까워진 것 같은데. 다 너무 좋은데.. 이렇게 마냥 좋아해도 되는 건지.. 또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늘 그녀의 상처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던 나지만, 그녀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때, 나는 이미 그녀의 상처 속에 들어가 있었다. 들어가서, 독이될지, 약이될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여주는 집에 도착해 병원에서 받은 꽃다발 포장을 뜯어내고 물을 담은 유리병에 꽃들을 꽂아주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다니엘의 차는 가지 않고 계속 여주의 집 앞에 있었다.

“...왜 안가시지...”

여주는 핸드폰을 꺼내 다니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괜찮아요. 가셔도 돼요.”

“...아...”

전화기 넘어로 아무런 대답도 들이지 않았다.

여주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다니엘을 불었다.

“저.. 팀장님...?”

“저...여주씨..”

“..네. 말씀하세요.”

“내가 한달 전에 했던 말... 기억합니까..?”

여주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는 날이었으니까.

“그날.. 내가 그 말을 해서...

여주씨 아팠습니까...?”

힘든 말을 꾸역꾸역 꺼내는 다니엘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너무나도 잘 전달되었다.

“....그 말... 아직도 유효해요..?”

“…”

“유효하지 않다면.. 좀 아팠던것 같고.. 유효하다면.. 전혀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주의 대답을 듣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내던 다니엘이다.

“...오늘은 푹자고 편하게 쉬어요.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도 되구요..”

여주는 다니엘이 하는 말을 들으며 출발하는 다니엘의 차를 보았다.

“...네.”

끊긴 전화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여주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다니엘이 보았으면 너무도 좋아했을, 여주의 표정이었다.

휴대폰을 소파에 던져두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을 때, 여주의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문 뒤에는 다니엘이 서있었다.

“아직 유효합니다. 그러니까... 여주씨는 전혀 안아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