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비가 내리는 날 밤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을 잊기 위해서

“아직 유효합니다. 그러니까... 여주씨는 전혀 안아팠죠..?”

급하게 뛰어온 건지 거친 숨을 몰아 쉰 다니엘이 여주의 두 눈을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린다. 갑작스런 다니엘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여주는 뒤늦게 다니엘의 말 뜻을 이해고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자기가 잘하고 있는건지.. 사실 확신이 서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진짜였기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곤 환한 미소로 다니엘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럼요.”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본 다니엘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다니엘은 여주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그게 자기 목표라고 생각했다. 늘 울상인 여주를 웃게 만드는 것. 저의 목표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니엘의 앞에 서서 웃는 여주의 모습은 다니엘이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그런데 왜... 나는 이대로 계속 여기 서있는 걸까...

다니엘은 충동적으로 여주의 볼에 한쪽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올라간 여주의 입꼬리를 엄지로 쓸어보며,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두어 번 여주의 입술을 머금던 다니엘의 입술이, 천천히멀어진다. 그러자 눈을 감은 여주의 얼굴이 다니엘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를 보며 웃어주길. 그것만 바래온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나보다. 다니엘은 그냥, 여주를 원하고 있었다. 다니엘 조차도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단 한번도 여주의 입을 보며 제 입술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래도 미친것 같다.

미쳐도 좀 곱게 미쳐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자신을 꾸짖으며 다시 본 여주의 얼굴은 평소보다도 더 예뻐보였다.

금방 씻고 나와 뽀얀 얼굴에, 조금 전 키스에 놀란건지 두 볼은 눈에 띄게 발그레져 있었다.

정신차려, 강다니엘.

그 말만 수십번을 되세겨도 여전히 빨간 여주의 입술을 머금고 싶다는 생각만이 다니엘의 온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직도 여전히 여주의 볼 위에 올려진 저의 손에 한 번 더 힘을 주어 입을 맞췄다. 평소같았으면 입을 맞춰도 되겠냐고 물어봤을 다니엘이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여주에게 진한 키스를 파부었지만, 다니엘을 밀쳐내지도, 싫은 티를 내지도 않는 여주는, 다니엘을 있는 그대로 모두 받아들였다.

조금 전 짧았던 입맞춤과 달리, 길게 이어지는 둘의 농밀한 키스를 방해한 건, 아직 마르지 않은 여주의 머리였다.

“앗,”

다니엘의 키스에 온 감각을 집중한 여주의 발등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졌고, 놀란 여주에 다니엘과 맞물렸던 입술이 떨어졌다.

흠칙 놀라는 여주에 이성을 되찾은 다니엘이 급히 여주의 볼에서 손을 뗐다. 

여주의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진 건 한 번이 아니었다. 이미 여주의 상의 어깨부분은 축축히 젖어들어 그녀의 어깨 라인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고 정적이 흘렀다. 먼저 정적을 깨뜨린 건 다니엘이었다.

"미안해요. 허락도 없이.."

다니엘의 말을 듣고도 여주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옷.. 갈아 입어야겠다. 나 가볼게요.."

단 둘만 있는 그 공간에 더 오래 있는 건 너무 위험했다. 그렇게 입을 맞추고 빨갛게 부운 여주의 입술을 보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이 든 다니엘은 미친 게 틀림없는 자기의 이마에 손을 얹고 여주의 짐을 나와 닫힌 문에 기대었다.

무작정 키스해놓고 꺼낸 말이 '미안해요'라는 것에 다니엘은 스스로가 참 멋없는 멍청이라는 걸 실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여주는 다니엘이 나간 후에도 한참을 현관 앞에 그대로 서서 허전한 입술을 매만졌다. 상의의 반이 젖어가는 줄도 몰랐다. 입술을 매만지던 손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심장이었다.

심장이 저가 뛰고 있음을 증명하 듯, 큰 소리를 내며 속력을 더해갔다.

여주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던 다니엘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은 온전히 마음이 가는 대로 했던 저를 발견했다.

***

복잡한 머리와 백미터 달리기를 해대는 심장 때문에 잠을 설친 다니엘은 해가 밝도록 눈을 감았다, 시간을 확인했다를 반복하다 출근시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알람이 울릴 시간이 지났음에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확인한 다니엘은 이제서야 오늘이 토요일임을 깨달았다.

출근을 안해도 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한 숨을 내쉰 다니엘은 언제부터인가 회사를 가는 것이 직장이라는 것보다 여주를 보기 위한 핑계였음을 인지하고 어이없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정도면 중증이다, 강다니엘."

제 머릿속은 온통 여주였다. 그리고 떠올린 어제 일에,

"아...! 이 미친놈..!!"

그럼에도 여전히 눈 앞을 아른거리는 여주의 빨간 입술에 다니엘은 정성껏 정돈해 놓은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충동적으로 해버린 키스는 처음이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제멋대로 해서, 여주씨는 화가 났을까? 연락하면 싫어할까..?

이전 별별 걱정을 다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던 중에 짧은 알람음을 내는 휴대폰을 조심스레 확인했다.

'깼어요?'

아니나 다를까.. 여주씨였다.

자기가 먼저 연락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상황에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 뱉은 다니엘이 한 자 한 자 답장을 써내려 갔다.

'오늘 주말인데 왜 이렇게 일찍 깼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답장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자가 도착했다.

'그러면 팀장님은 왜 이렇게 일찍 깨셨어요? 어제 저 때문에 피곤하셨을 텐데..'

아무런 의미 없는 문자들이 오가다 마음을 다 잡은 다니엘이 주먹을 불끈 쥐며 한 마디를 써내려갔다.

'오늘 바빠요 안 바쁘면 나한테 시간 좀 내줄래요?'

늦어지는 여주의 답장에 다니엘은 쥔 주먹으로 제 무릎을 쿵쿵 쳐댔다.

'좋아요. 몇 시에 만날까요?'

여주의 답장에 다니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스!'를 외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문자를 보낸 후 헤집어 놓은 머리를 다시 정돈하고, 출근하려 입었던 딱딱해 보이는 수트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준비 다 되면 전화해요. 집 앞으로 데리러 갈게요.'

여주는 다니엘의 문자를 받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회사에 입고가는 딱딱한 올보단 편한 청바지와 새하얀 니트를 꺼내 입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쌀쌀한 날씨에 딱 맞는 예쁜 옷을 선택한 것 같아 거울이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화장대 앞에 앉아 기본 베이스 메이크음을 마쳤다. 평소 같았으면 여기서 손을 놓았을 여주지만 오늘은 왠지 색조화장품으로 손이 갔다.

평소보단 화사하지만 과하지 않은, 마음에 드는 화장을 마치고 '팀장님'이라고 저장된 다니엘의 전화번호 옆 통화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한 번도 채 끝나기 전화를 받은 다니엘에게 준비가 다 됐다고 하지, 다니엘의 예상 외의 대답에 깜짝 놀라 급하게 크로스 백을 매고 신발을 신은 여주가 밖으로 나갔다.

'집 앞에 있어요.'

준비 끝나고 연락하면 데리러 온다더니 이미 먼저와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니엘에, 급하게 뛰어나가 조서석에 앉은 여주가 헐떡이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뭐하러 그렇게 급하게 나와요."

"그야, 팀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니까..."

다니엘은 오늘 따라 낯선 여주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작게 좁혔다. 

안그래도 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미치겠는데, 이제는 예쁜 색을 칠한 여주의 입술이 다니엘을 더 괴롭게 했다.

"근데 오늘 어디가요?"

"아... 가고 싶은 데 있어요?"

저가 먼저 만나자고 불러놓고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는 다니엘이 아차, 했다. 하지만 여주는 잠시 생각하다고 이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어제 일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미치겠는 다니엘의 반면에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한껏 들떠 창밖만 바라보는 여주이다. 그런 여주를 보며 다니엘은 어떤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

멀지는 않은, 하지만 가깝지도 않은. 딱 가볍게 놀러온 듯한 느낌의 거리였다. 그런 거리에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아쿠아리움이었다.

"아쿠아리움이네요?"

"네. 꼭 다시 오고 싶었거든요. 근데 혼자 오기는 싫어서.."

다니엘을 보고 여주가 또 웃었다. 자꾸만 저를 보며 웃어대는 여주에 다니엘은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어색하기도 했다. 저와 여주 사이에서 이런 분위기의 기류가 흐를 거라고 상상도 해보지 못했으니까.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아쿠아리움에는 적당히 사람이 많았다. 너무 많아서 불편하지도, 너무 없어서 어색하지도 않게.

아쿠아리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오랜만이다, 라는 말을 감탄사와 함께 뱉는 여주를 보며 다니엘은 이 곳이 여주의 추억이 있는 곳임을 직감했고, 다시 오고 싶었다면 충분히 예쁜 추억이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장소에 저와 오기를 택한 여주를 보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 담느라 힘들었지만, 들뜬 마음에 앞서 걸어가는 여주가 알아차릴 리 만무했다.

그렇게 한참을 앞서 걷던 여주가 한 수족관 앞에서 멈춰 섰다. 

뒤따라 가던 다니엘도 여주의 옆자리에 멈춰 섰다.

"안 그래도 오늘따라 여기가 너무 오고싶었는데..."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나보죠?"

"....음..."

이 곳에 어떤 예쁜 추억이 있냐고 묻고 싶었던 단순한 다니엘의 질문에 의외로 진지하게 고민하던 여주가 말을 꺼냈다. 

"꼭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죠. 그런데 오늘 여길온건, 이제 잊으려고 온거에요. 진짜..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한 마디 대답도 하지 못했다. 늘 그랬던 것 처럼,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혹시나 잘 못 건들였다가 아픈 여주의 상처가 덧날까봐. 

"한 달 전에, 아니 이제 한 달 더 지났네.. 그때 그랬죠. 괜찮아지는거.. 기다려준다고.. 

나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졌어요.. 팀장님은... 아직 거기 그대로 있나요...?"

웃으며 말하는 여주의 얼굴에는 옅게 떨림이 묻어나고 있었다.

"힘들면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했잖아요, 팀장님이. 그래서.. 여기까지 온건데.."

수족관을 향하던 시선을 다니엘과 맞춘 여주에, 떨리는 눈동자가 올곧이 다니엘에게 전해졌다.

그 눈빛에 다니엘은 당장이라도 여주의 허리를 감아 다시 한 번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볼에 손을 얹고 자신의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그날 한 말. 유요하긴 한데, 문제가 좀 생겼는데.."

"내가 좀 더 많이, 여주씨를 좋아하게 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