𝐖𝐎𝐑𝐓𝐇 𝐈𝐓 크루 미션

[6기] 꽃을 보듯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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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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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WORTH IT COMPANY 크루 미션으로 
진행되는 글입니다.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장애를 축복으로 만드신 강영우 박사님의 글. 비록 장애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장애로 보일 수 있는 가장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나에게도 힘이 되는 글이었다. 얼마나 희귀한지 전 세계에 알려진 사례가 1900천밖에 안 될 정도인 이 휘귀병의 이름은 플라워 증후군. 증상은 꽃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고, 꽃과 사람을 구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그렇게 보는 건 아니지만, 간혹 몇 명에게 증상이 유발하는데, 왜 특정의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지의 이유는 모른다. 이 병의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아, 치료법도 없는 상태. 남들 눈에는 멀쩡하게 생긴 나에게 영원히 숨기고 싶은 단 하나의 비밀이다.


꽃을 돌보는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가족처럼, 애인처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꽃을 살아 움직이는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들. 타인에 눈으로는 그저 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에 꽃이 살아 움직이면서 말을 한다면 믿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꽃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몸이 좋지 않다고. 아프다는 걸 간접적으로 나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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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영양제 줄게."





꽃을 사러 오신 손님이 가볍게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일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기에.

내 눈과, 귀는 쉴 틈이 없다. 꽃을 가꾸는 일, 플로리스트인 나의 주변에는 항상 꽃으로 가득하기에 조용할 순간이 없고,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 목마르다, 심심하다, 놀아달라... 나에게 원하는 것도 많았다.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그 귀찮음을 사랑이란 단어로 메꾸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퇴근길에 꽉 막힌 도로,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다급해지는 정적 소리, 시끄럽다면서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는 꽃들. 돌아버릴 것 같은 그 시점에 손님이 온 걸 알리는 벨소리가 들려온다.




"사장님, 물 한 잔만 마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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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오늘 급한 일 있어서 못 온다며?"

"오빠 보고 싶어서 급한 일 후딱 해결하고 왔지."





나 잘했지?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는 너의 그 이쁜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아팠다.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겠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사람, 한여주. 그녀와의 꿀 같은 달달한 연애를 이어온 지도 어느새 4년. 호수같이 맑은 눈과 오뚝한 코, 핑크빛이 도는 입술, 깔끔한 피부까지 어디 하나 안 이쁜 곳이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꽃처럼 바뀌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연꽃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꽃들을 아끼지만, 그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꽃은 연꽃이었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맑고 깨끗하게 피어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연못에 핀 연꽃은 진흙 속에 살면서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증일아함경에 쓰여 있는 이 문장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이제는 연꽃으로 보이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이뻐. 내 눈에는 항상."

"치... 오빠는 항상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더라."




질문에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다고 너는 툴툴거렸지만, 난 그에 대한 아무런 답도 줄 수 없었다. 애초부터 넌 내가 플라워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니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나의 못난 모습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병을 앓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겁하며 나에게서 도망칠까 봐. 날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다. 숨길 수 있을 때까지, 들키지 않는다면 영원히 모르게 하고 싶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너를 처음 만났던 그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4년 전, 봄이 찾아오는 그 시기에 대학교 졸업식에 꽃 배달을 가게 되었던 나는 그곳에서 연꽃 같은 여주를 처음 만났었다. 졸업을 축하해주려고 온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대학생들, 그런 많은 인파속 가운데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허하게 홀로 서 있는 한 여학생. 그녀의 곁에는 졸업을 축하해줄, 같이 웃어줄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한참 동안 지켜보던 나는 혹시 팔릴지도 모른다고 정성스럽게 묶어서 챙겨왔던 라일락 꽃다발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꽃다발을 그녀의 품에 안겨주고서는 아마도 그녀가 듣고 싶어 했을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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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축하드려요."


"어... 저 꽃 안 시켰는데요..."

"당신한테 잘 어울려서 드리는 선물이에요."




모르는 사람한테서 뜬금없이 꽃을 받은 너는 당황한 눈치였지.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내가 이해가 잘 안돼. 무슨 용기로 초면인 사람한테 꽃을 줬을까,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었을까. 아직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때의 내 그 행동을 잘했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그 일이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니까.

나에게서 꽃을 받은 너는 옅은 웃음을 띠었다. 너의 그 웃음은 비록 활짝 웃진 않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이렇게 떠나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번호를 따기 위해서 꽃을 줬다고 생각할까 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포기하고 등을 돌렸을 때쯤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혹시 전화번호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잠시만요."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자 얼마 전에 주문 제작해서 나온 명함이 손에 잡혔다. 명함을 건네주려 손을 내밀었을 때, 닿은 너의 손이 마냥 곱지만 않았다. 스친 너의 손이 멀어지면서 다시 인연이 있길 바라며 그렇게 너와 나의 짧지만 굵은 첫 만남은 지나갔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내 명함을 가져간 네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주길 바라면서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내 기대와는 달리 너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너와의 만남이 스쳐 가는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처음 봤던 날보다 훨씬 화사하고 밝은 모습을 한 네가 꽃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기억 못 할 리가 있나요. 당신의 연락을 기다렸는데. 뒷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고 도로 삼켜 버렸었다. 네가 와줘서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던 것 같았다.




"집에서 키울만한 꽃을 추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좋은 향기가 나는 꽃이면 더 좋아요."

"음... 좋은 향기라..."

"호접란는 어떠세요? 달콤하면서 새콤한 향기를 풍겨서 마음에 드실 듯 한데요."




적당히 햇빛이 들고 통풍이 잘되는 부분에 두었던 호접란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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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의 꽃잎이 정말로 예쁘죠? 향기도 좋고 꽃도 예쁜 매력적인 꽃이에요."

"정말 예뻐요...! 향기도 제가 원했던 향기가 나고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 너는 내가 골라준 꽃을 계산해 가지고 갔다. 그날을 이후로 넌 매일 같은 점심시간 때에 찾아와서 여러 가지의 이유로 꽃을 사러 왔다. 그러면서 손에는 꼭 무언가를 들고 왔지. 하루는 도시락을, 다른 날은 디저트를, 또 다른 날은 과일을. 네가 가져온 것을 먹으면서 살이 많이 쪘던 것 같다. 넌 모르겠지. 너한테는 꽃값을 반값에 줬다는 거, 네가 사간 꽃들에게 항상 아프지 말라고 말해줬다는걸. 앞으로도 넌 쭉 모를 거야.

그렇게 네가 꽃집을 들리는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언제부터인지 네 모습이 조금씩 연꽃으로 변하기 시작했어.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것이 아닌 조금 조금씩 말이야. 그래서 더 이상 네 본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후로부터는 꽃들에게서 오늘 너의 모습은 어땠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볼 수는 없어도 언제나 예쁘겠지만.




"오빠, 무슨 생각해?"

"네 생각."

"아, 뭐야~ 내가 여기 눈앞에 있는데도 생각할 정도로 보고 싶어?"

"응.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 여주야."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꽃을 보듯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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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꽃말 - 깨끗한 마음,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혼자서 힘들게 살아온 여주지만,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도 아름다웠다는 뜻으로 석진이 여주를 연꽃으로 보게 된 겁니다.


호접란의 꽃말 - 행복이 날아온다.

석진에게는 여주가 자신의 행복으로 날아온 것입니다. 



마지막 석진이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는 말은 보고 있지만, 너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보고 싶다는 말로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