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되어

어서오세요, 감성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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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모퉁이 가장 끝에 묘한 분위기의 가게가 자리했다. 그 가게는 다른 주변이 있는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분위기라 어쩐지 이질감이 들었다. 

 그곳의 이름은 감성 물성. 여주가 차린 가게이다. 발전된 과학에 따라 여주는 돌에다가 사람의 감정을 주입해 그 사람이 지정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감정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누구는 그녀를 마녀라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녀를 성녀라 추앙한다. 물론 그 차이는 종이 한장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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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음~ 슬슬 정리를 해볼까? " ((여주






 여주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 며칠 시시한 일만 반복되었지만 오늘은 어째서이지 꽤나 흥미로운 일이 생길 것같은 기분이었다.


딸랑-


 역시 자신의 감은 틀리지 않았음에 뿌듯한 마음을 느끼며 문이 열리는 소리에 여주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마른 기침 두어번과 함께 잘생긴 미소년이 가게 정중앙에 서있었다.








 " 어서오세요, 감성물성입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다면 저를 불러주시고 편하게 감정을 즐겨주세요. " ((여주








 분노, 허탈, 공허, 슬픔, 비통. 그 사이에 존재한 행복이라는 감정이 느껴져 매우 흥미로운 소년이었다.

 다른 감정은 본인이 느끼고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오직 행복이라는 감정은 분명 자신이 운영중인 가게에서 산것이 분명하다. 그럼 분명 기억에 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잊기 힘든 얼굴인데, 제가 기억하지 못한걸 보니 여긴 처음인가 보네요. " ((여주

 " ... " ((범규

 " 그래서, 그 돌의 출처를 알기 위해서 온건가요? 아니면 목걸이요? "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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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걸이요...? " ((범규







 범규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았다. 범규는 천천히 손을 올려 목걸이에 걸린 작은 돌을 만지작거렸다.








 " 아무래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선물받으셨나봐요. 지금 손님이 하고 계신 목걸이에 행복이 담겨있거든요. " ((여주






 여주는 카운터에 턱을 괴고 싱긋 미소를 지어보냈다. 범규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책상 위에 감정석을 쾅 내리쳤다.







 " 이 돌, 정체가 뭡니까? " ((범규

 " 본인이 구입한게 아니면 알려드리지 않는게 원칙인지라... " ((여주

 " 아까 그 목걸이는 그럼 왜 알려주신건데요? " ((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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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말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한데... " ((여주






 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범규의 눈치를 슬쩍 봤다. 물론 저 잘생긴 미소년의 사정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호갱님을, 아니 훌륭한 고객님을 얻을 수 있을 듯 했다.






 " 아쉽게도 본인에게 물어보시는 편이 좋겠지만 사정이 있는 듯 하니 알려드리죠. 감정할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무래도 감정을 다 써버린거 같거든요. " ((여주






 여주는 돌을 조심히 들었다. 아까 범규가 무식하게 돌을 내리 꽂는 바람에 혹시나 돌이 깨지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돌은 깨지지 않았다.






 " 별로 안걸릴거 같지만, 그래도 잠시 둘러보시겠나요? " ((여주






 범규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시선을 이동했다. 여주는 그런 범규를 보며 '둘러보라는 뜻이 그게 아닌데...'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 여긴 뭐하는 곳입니까? " ((범규

 " 감정을 파는 곳이에요. 기쁨도, 슬픔도, 공허도, 행복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소유하고 있답니다. 만약 특별한 감정을 원하신다면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가령 슬픔과 행복이 뒤섞인 감정같은거요. " ((여주

 '' ...그렇군요. '' ((범규






 여주의 말을 들은 범규는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했다. 이건 공허함이다. 여주는 범규의 감정을 정의내렸다. 이놈의 직업병은 약도 없는데. 여주는 범규의 감정을 담고싶다는 충동을 꾹 참았다.





 " 저기 그럼 혹시... " ((범규

 " 편하게 말씀하세요. "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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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이나 공허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사는 사람도 있나요? " ((범규

 " 네, 지금 고객님이 가지고 오신 돌이 바로 그 경우죠. " ((여주

 '' 네...? '' ((범규






 여주의 말에 범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여주는 범규에게 다시 슬픔이 담겼던 감정석을 돌려주었다. 무심코 감정석에서 범규로 시선을 올린 여주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범규를 보고는 깜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 이야기가 길어질 듯 하네요. " ((여주






 여주는 밖으로 나가 오픈이라고 써있는 펜말을 돌려 클로즈로 바꾸었다. 가게 문을 잠그고 조명도 조금 무드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모든 감정석을 막아 감정이 세어나오지 않게 만들고 범규에게 따뜻한 우유한잔을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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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의 대가로 당신의 사연을 들려주시겠어요? " ((여주


















민들레 홀씨되어

어서오세요, 감성물성입니다.

















 범규는 여전히 그 거지같은 날을 기억한다. 그날의 후회의 첫번째 기억은 잠수중이었던 여자친구, 오빈이로부터 거액의 돈이 들어온것으로 시작된다.








 '' 정오빈... 너 진짜 연락 안하지... '' ((범규







 범규는 술을 홀짝 마시며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숫자, 1을 보았다. 지쳤다는 감정을 느끼며 범규는 폰 화면을 껐다. '이젠 너가 톡을 보내도 안볼거야'라고 작게 다짐하며 말이다.

 아마 그 숫자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날 그리 충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처럼 사랑한다, 보고싶다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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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차단한것도 아니고 이게 뭔데 '' ((범규








 그때 범규의 폰이 울렸다. 알람은 [정오빈(님)으로 부터...]라고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정오빈. 아까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 세글자를 보자마자 범규는 황급히 알람을 눌렀다. 

 기다렸던 카톡이 아닌 송금 알람이었다. 그것도 거액의. 범규는 처음보는 액수에 놀라 0이 몇개있는지 두세번은 더 세어보았다. 0이 10개하고도 2개가 더 있었다.






 " 뭐해 범규야? " ((연준






 술에 잔뜩 취한 연준이가 범규의 어깨에 얼굴을 올렸다. 범규는 술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연준이를 꾹꾹 밀어냈지만 연준이는 미소만 지을뿐 밀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범규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감싸며 범규의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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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쫌! " ((범규

 " ㅋㅋㅋㅋㅋ " ((연준






 연준이는 범규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 범규의 허리에 감싼 손을 풀며 화면을 가르키며 물었다.






 " 누가보낸거야? " ((연준

 " ...여자친구요. " ((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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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래? 정말로 헤어지자고 보낸거야? " ((연준

 " 아니 뭐 그게... " ((범규






 범규가 확인도 하기 전에 연준이는 고개를 휙 돌려 범규의 잠수연애를 응원해주기 위한 아이들에게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모두 연준이를 봤지만 아무도 반응은 해주지 않았다. 연준이는 돌아오는 무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 야!! 끝났대 끝났어!!! " ((연준

 " 아 뭐래!! 그런거 아니에요 " ((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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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 내가 말했죠? 잠수탄게 아니라 잠수이별이라고 " ((태현

 " 뭐라고 왔는데? 진짜 헤어지자고 왔어? " ((수빈






 다들 하나 둘씩 범규의 곁으로 걸어왔다. 범규는 연준이를 노려보았다. 이 멍청한 자리를 만든것도 최연준씨 본인인데 이리 폭탄발언을 하시다니.







 " 갑자기 돈을 보냈어요. " ((범규

 " 너 오늘 여기서 우리랑 논다고 말 했어? " ((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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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헐, 민들레 누나한테 잘먹는다고 전해주세요 " ((휴닝

 " 엥? 왜 민들레 누나야? " ((연준

 " 오빈누나가 범규형한테 보낸 마지막 톡 내용이 민들레 사진이랑 봄이 온거 같다는 메시지여서요. " ((태현

 " 돌려줄거야 " ((범규

 " 아니 왜? 그냥 써 " ((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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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려주는게 맞는거 같아. 너무 터무니 없는 금액이라고. " ((범규






 얼마를 받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빈이는 범규의 표정을 보곤 참았다. 하긴, 범규의 입장에선 돈받고 헤어지자라는 느낌일테니. 수빈이는 범규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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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그냥 놀아. 놀려고 만난건데 이리 우울해하면 어떡해? " ((수빈







 수빈이의 말에 범규는 살짝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 " ((범규






 그때 범규의 폰이 울렸다. 전화가 온것이다. 범규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자신의 폰으로 옮겨 발신인을 확인했다. 오빈이였다.






 " 범규형, 민들레 누나 전화온다 " ((휴닝

 " 그냥 꺼 " ((범규

 " 계속 울리는데? " ((휴닝

 " 그러니까 폰을 끄라고. 지금 나는 폰 베터리가 방전되서 못받은 걸로 해. " ((범규






 휴닝이는 이미 3통의 부재중 전화가 뜬 범규의 폰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야, 줘. 내가 할게 " ((범규






 범규는 휴닝이에게서 자신의 폰을 가져간 다음 전원을 껐다. 사실 자신이 폰을 들고 있으면 그 전화를 자존심 없이 받을까봐 휴닝이에게 부탁한것인데 생각보다 전화를 의도적으로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그리 망설여지지 않았다.

 범규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연속된 동작으로 폰을 끄고 대충 푹신해 보이는 아무 곳에나 던져두었다. 폰은 쇼파위에서 두어번 통통 뛰가다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