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내 연애는 괜찮음
권순영 x 이지훈
[1. 호감어린 시선을 받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려 차마 손을 들어 올릴 생각도 못하고 속으로만 1번! 1번 선택지!! 하고 외쳐댔다. 순영이 손에 들어간 내 볼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절로 고개가 수그러드는 걸 보니 그렇게 속으로만 말해도 게임 진행은 되는 모양이었다.
"........."
말랑이 혹은 슬라임이라도 만지듯이 내 볼을 주물럭거리던 순영이의 손이 문득 멈췄다. 순영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귀엽다, 귀엽다, 쉴 새 없이 감탄하던 녀석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니 연습실은 너무나 조용했다. 너무 조용한 나머지 심장 뛰는 소리가 바깥으로 쿵, 쿵 하고 크게 들리는 것만 같아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어떡하지. 1번이 답이 아니었나.
그러고보니 아까 처음 승철을 만났을 때 떴던 선택지와는 다르게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문구가 있었던걸 보면 정확한 답을 골라야 진행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자꾸만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보니까 당황한 나머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젠장. 잘못 고른 선택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부터 차올랐다. 나는 항상 이게 문제다. 감정이 격해지면 눈물부터 나는거. 슬퍼도 좋아도 불안해도 행복해도 일단 눈물부터 난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에 더 힘을 주었다. 여기서 눈물까지 또르르 흘리는 날에는 나 진짜 감성충 또라이 되는거다.
순영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1분이 1초 같았고 이대로라면 순영이에게 볼이 붙들린 채로 영원히 이 세계에 갇혀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생각에 뒷덜미가 따끔거렸다. 이 망할 게임인지 뭔지. 나는 어쨌든 이 상황을 진행 시켜야만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순영이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결국 행동해야 하는 건 내 쪽이었다.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순영이의 운동화 끝만 바라보다 나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다시 눈이 마주친 순영이는 입을 작게 벌리고 약간 바보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닐 것이었다. 얼굴은 빨게져있는데 눈에는 힘이 바짝 들어가 있고, 그런데 또 눈물은 그렁그렁하고. 하....눈 마주치자마자 비웃지 않은게 어디냐.
그런데 순영이의 얼굴이 점점 붉은 물감을 푼 것처럼 서서히 색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귀까지 빨개진 순영이는 어쩔줄 모르겠다는 듯 내 눈을 피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너는 왜 빨개지고 그러냐. 사람 기분 더 이상해지게.
그러고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작게 헛기침하고선 한다는 말이,
"너.... 얼굴 빨개"
"........."
너도거든.
마음 같아선 받아쳐 주고 싶었는데 목 한가운데에 뭐가 꽉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않자 순영이의 얼굴은 점점 더 익어갔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예?
이건 또 무슨 상황이죠?
대략 10초에 한번 꼴로 나타나는 권순영의 호감도가 오른다는 상태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뭐, 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이놈의 호감도는 왜 자꾸 올라?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이것 봐, 또 올랐어.
"안녕하세요!!!저희 왔어요!!!"
"아, 이석민. 좀. 시끄럽다고."
그때 연습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딱 봐도 사고 많이 칠 것같은 키 큰 남자애와 그런 그를 상당히 시끄럽고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비실비실 마른 남자애가 함께 들어왔다. 그제야 내 볼을 감싸고있던 순영이의 손이 떨어졌다.
"야, 니들 오늘은 9시까지 오라고 했지. 지각이야 지각"
승철이 한마디 했지만 무서운 얼굴과 다르게 나긋나긋한 말투에 별로 기강을 잡겠다는 의도는 없어보였다. 생각보다 훨신 괜찮은 형인 것 같다. 아까 나이 듣고 얼마나 꼰대 짓을 하려나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플디 연습생 시절 가장 나이가 많았던 형을 떠올리고 있었다. 툭하면 기합이다 뭐다 하며 나이로 갑질했던 개또라이 새x. 결국 회사를 나가고 요새는 뭐하고 사는지는 모른다. 잠깐만. 나 그럼 플디에서 어떻게 되는거지?
원래의 현실과 지금 내가 있는 곳의 현실이 마구 뒤섞여 넋 빠져있는 나를 두고 소개의 말들이 오갔다.
"오, 형이에요? 완전 형처럼 안 생겼는데? 하긴 한살밖에 차이 안나니까."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려요. 얘 말은 귀담아 듣지 마시고요."
"하하....안녕하세요, 이지훈입니다아....."
어쩐지 힘 빠진 목소리가 나오자 나한테서 두발짝 정도 떨어져 서 있던 순영이가 이쪽을 힐끔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더 이상 호감도가 오른다는 상태창이 뜨지 않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자동으로 오르던게 왜 안 올라? 나는 대충 사회적인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깜빡이며 여러가지 복잡한 상념들 속에서 순영이와 관련된 것만을 끄집어내려 했다. 그러고보니 호감도가 계속 오르고 있었을 때는 순영이가 내 볼을 잡고있었을 때였다. 음, 설마.
이것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확인을 하고 싶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장난치는 22살들을 뒤로 이번엔 6명에 남자가 연이어 들어왔다. 승철이 다시 한번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동안 나는 순영이에게 한발짝 다가섰다. 그러고선 큰 용기를 낸 것 치고는 소심한 손짓으로 순영이의 손목을 슬쩍 끌어다 잡았다.
"어...?"
뒤돌아본 순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이거는, 일단. 왜그러냐고 묻는다면 아까 권순영이 자기 입으로 편하게 하라고 했으니까. 혹시나 순영이가 '왜 내 손 잡으며 친한 척이냐' 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변명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순영이의 손목을 고쳐 잡았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하, 미친. 설마설마했는데 진짠가보네.
얘, 나랑 스퀸십하면 호감도 올라가나 봐.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하 웃음을 흘렸다. 그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순영이는 손목을 가볍게 비틀어 빼내더니 덥석 내 손을 잡았다. 너무 놀라서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영이에게 잡힌 내 손을 한번 보고 순영이의 얼굴을 한번 보았다. 순영이는 칭찬 받고 싶어하는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뿌듯하게 씨익 웃어보였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와중에 착실하게 올라가는 호감도까지.
"뭐야, 권순영. 본지 몇 분이나 됐다고 친한 척이야."
"친한 척이 아니라 챙겨주는 거라고 해 줄래? 이 어린 애가 처음보는 형들 상대로 얼마나 뻘쭘하고 어색하겠어. 엉?"
"어린 애...?"
찬이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나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순영이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스물세살은 20대 초반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애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었다. 특히나 동갑이었던 권순영한테 들을 소리는 더더욱 아니고. 나의 구겨진 미간을 못 본 건지 순영이가 다시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얼마나 밝게 웃는지 눈이 끝까지 접혀 그야말로 완벽한 눈웃음이었다. 그렇게 제법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순영이의 까만 머리통 위로 승철에게서 본 것과 같은 작은 하트에 아주 조금 붉은색이 채워졌다.
[권순영 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호감도가 한 번 더 올라갔다. 그리고.
[호감도 10 달성!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주의! 히든 퀘스트 달성 시 1년 뒤 시상식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엔딩을 맞이합니다.]
[히든 퀘스트 성공 조건 :
호감도 100 달성한 멤버에게 사랑의 고백 받기!]
[히든 퀘스트 성공 보상 :
이지훈님의 귀환]
미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인 줄 알았는데 연애 시뮬레이션이었어? 이거 완전 분양 사기 아냐? 하, 어쩐지 호감도 어쩌고 뜰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아니, 그런데 나도 남자고 이....이 사람들도 다 남자인데요? 게다가 아이돌로 데뷔하라며. 아이돌로 데뷔해서 무슨 사랑 고백이야. 아, 아이돌은 연애는 안 되지만 그룹 내에서라면 뭐 상관 없나.
머리로는 닥치는대로 아무 생각이나 하면서 내 눈은 오직 한 곳에만 머물러 있었다.
'히든 퀘스트 성공 보상 : 이지훈님의 귀환.'
아이돌 그룹 내 연애는 괜찮음
권순영 x 이지훈
첫 날부터 빡세게 연습한 탓에 정오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여전히 내 방에는 플디 엔터테이먼트 연습생 동료와 함께 쓰던 이층침대가 아닌 싱글 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고 내 핸드폰은 태양!과 핫!을 외치면서 내 잠을 깨우고 있었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앉으며 어제 하루종일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악 소리 크게 Turn up 세상을 사정없이 달려~"
박자에 맞춰 몸이 저절로 까딱거려진다. 8년 연습생 짬바 어디 안 간다. 하루 연습한 건데도 내 몸은 금세 춤을 다 외운 모양이다. 이걸 뿌듯해해야 하는 건지.
지훈아 너 어디서 춤 배웠었어? 너도 혹시 아이돌 지망생이었어?
어제 멤버들은 빠르게 춤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동선까지 익히는 나를 보며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었다.
여기는 게임 속이고 너네는 죄다 게임 캐릭터고 내가 바로 진짜 아이돌 연습생이다!!
...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미소로만 답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제의 연습은 확일히 즐거웠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 커버만 하다가 진짜 내 노래라고 생각하니 연습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긴 했다. 오랜만에 땀 흘려 연습하는게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여기는 게임 속일 뿐. 솔직히 어제까지만해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건 지독한 꿈을 꾸는 중일 거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고 푹 자고 일어나면 원래의 내 방에 누워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아니네?
나 진짜...이거 게임...해야 하나 봐.
이제는 정말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빠져나갈 현실적인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나는 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속으로 '퀘스트' 하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눈앞에 내게 주어진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성공 조건 :
<세븐틴>으로 데뷔하여 1년 뒤 신인상 받기!]
[히든 퀘스트 성공 조건 :
호감도 100 달성한 멤버에게 사랑 고백받기!]
확정된 데뷔조라고는 해도 아직 데뷔까지는 2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심지어 데뷔하고나서 연말 시상식까지 1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그렇게 1년을 게임 속 신인 아이돌로 활동했는데 정작 신인상 받는 데에 실패한다면? 나는 빠르게 고개를 양 옆으로 가로 저었다.퀘스트창에는 성공 보상만 적혀 있을 뿐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 어쩌면, 실패하게 되면. 나는 그대로 이 게임 속에 갇히게 되는거 아닐까. 끔찍한 상상에 몸이 부르르 잘게 떨렸다.
역시. 히든 퀘스트를 노리는 게 좋겠지. 1년씩이나 시간 질질 끌 필요도 없고.
내가 스물세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해 본적 없다는 것은 지금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래, 나 이지훈. 지금까지 온갖 드라마와 영화, 웹툰을 허투루 본 게 아니라는걸 보여주겠어. 연습생 생활 하느라 바빠서 못한거지 나도 마음만 먹으면 말이야, 어엉? 남자건 여자건 다 꼬셔낼 수 있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나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다.
연애 시뮬레이션을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역시 이런건 괜히 이사람 저사람 집적거리는 것보다 내 마음 속 남주 한 놈 정해서 후딱 해치워 버리는게 정공법이겠지.
나는 메모장에 멤버들의 이름과 어제 만났을때 인상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갔다.
최승철(24)
-호감도 10
-생긴 것과 다르게 멤버들한테 엄청 치대고 들러붙는다.
-내가 햄버거를 한번에 세 개 먹는걸 보고 호감도가 한 번에 10까지 오름
-멤버들이 수시로 형 숙소 나랑 써야 돼~ 함. 무슨 마성의 매력이 있는 건가.
윤정한(24)
-호감도 50
-권순영보다 더 한 사람...귀여워 귀여워를 입에 달고산다. 내 이름이 궈여워인줄.
-정하니혀엉 한마디 했다고 귀엽다며 호감도가 쭉쭉 오름. 퇴근할때 이미 호감도 50 찍음.
-내가 '형 미친x 이세요?'라고 해도 귀엽다고 할 것 같은 사람
홍지수(24)
-호감도 15
-윤정한처럼 호들갑은 안 떠는데 이 사람도 나 귀엽다며 호감도가 한번에 5씩 쭉쭉 올랐음
...
권순영(23)
-호감도 15
-동갑일 주제에 자꾸 나 아기 취급하는 이상한 놈
-스퀸십할때 호감도가 1씩 야금야금 올라감
-스퀸십 안 하고 있으면 나한테 그다지 관심 없는 것 같기도하고?
...
김민규(22)
-호감도 10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인 듯 개인적으로 나랑 잘 맞을 것 같다.
-내가 입 열 때마다 사투리 신기해함.
...
부승관(21)
-호감도 10
-두 살이나 어린 주제에 은근슬쩍 친구 먹으려고 하는 놈
-노래부르는거 맘에 든다...쉬는시간에 같이 노래방 온 것처럼 노래 불렀는데 좀 즐거웠음
-찬이랑 눈만 마주쳐도 싸움
이 찬(20)
-호감도 5
-진짜 아이돌 그룹에 막내 같은 느낌의 사람
-승관이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은 걸 나는 뚫어져라 보았다.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호감도가 꽤 오른 상태였다. 게다가 한명은 무려 호감도 50. 호감도가 100까지인걸 감안하면 엄청난 진행도였다. 이 게임 제작자, 밸런스 패치 똥 같이 해놨네. 덕분에 나야 거저 먹고 좋지.
이제 공략할 대상을 골라야한다. 사실 이런 경우,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나는 '윤정한'이라 쓰여있는 부분을 손톱 끝으로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너로 정했다, 윤정한!
이미 게임 클리어라도 한 듯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
어제부터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내 눈으로 보기 두려워 애써 모른 척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핸드폰의 연락처를 열어보았다. 연락처에는 어제 저장한 멤버들의 핸드폰 번호와 하이브 엔터테이먼트의 신인개발팀 직원들 몇명의 연락처가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플디엔터를 거쳐간 수 많은 연습생 선후배들과 직원들의 연락처는 아주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엄마와 아빠의 번호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아니, 이미 알고있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는 걸 수도.
엄마의 번호를 하나하나 꾹꾹 눌러보았다. 통화를 눌러볼까 말까 고민하다 관뒀다. '없는 번호 입니다.'라던가 '연결할 수 없습니다.' 같은 멘트를 듣게 되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나는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안아 등을 둥글게 말아 웅크렸다.
핸드폰 안에는 새로 저장한 연락처들이 꽤 있었지만 그 중 내가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번호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문득 사무치도록 외로워졌다. 아이돌의 꿈을 안고 처음 서울로 상경했던 그 날보다 훨씬 더 많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