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00
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침대에서 이불을 질질 끌고 와서 덮었지만 그럼에도 찬기운이 웃도는 13살의 어느날이었다.
'' 언니 보고싶어... 언니는 로미오 오빠만 좋아하고... 내가 언니를 더 많이 좋아하는데... ''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꿍얼거렸다. 그러나 곧 언니의 엄청난 계획을 제일 먼저 들은게 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풀렸다. 로미오보다 더 먼저 알았다는 사실에서 온 희열이자 우월감이었다.
역시 언니는 나를 더 좋아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젖어있었다. 이내 점점 노근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몸을 쭈그리고 불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이 난로 앞에 언니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아주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며 제일 완벽한 자세를 찾아나갔다. 운 좋게도 얼마 안가서 편한 자세를 찾았다. 물론 언니의 품보다는 포근하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스르르 눈을 감았다.
딱- 딱- 딱-
그러나 곧바로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소음에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럼에도 소음은 가시지 않았다. 좀처럼 그칠줄 모르는 소음에 못이겨 눈을 비비며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딱- 딱- 딱-
누군가 창문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한번더 비비며 그제서야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났다. 주섬주섬 이불을 어깨에 걸쳤다.
추운 겨울날 아직 따스한 기운이 돌지 못한 차가운 바닥에 천천히 천천히 한발한발 내딛으며 창문으로 걸어갔다. 몇걸음 안가서 나는 창문 앞에 도달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눈덩이가 하나 더 던져지더니 이내 더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창에 손을 살포시 얹어 눈덩이의 주인공을 찾아나섰다. 마치 내 손에 추운 겨울이 담겨있는 듯한 찬기운이 돌았다.
'' 어? 연준이다! ''
밖은 눈이 내리는 새하얀 밤이었고 그 눈밭 한기운데 내가 좋아하는 내 첫사랑, 연준이가 서있었다. 눈바람이 매서웠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을 힘껏 열었다.
창문을 열자 순간적으로 찬바람과 함께 눈송이가 훅,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찬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나는 추위에 봄을 바르르 떨며 이불을 꽉 쥐었다.
눈송이들이 천천히 바람을 타고 내 방 창가에 살포시 얹었고 몇몇은 안으로 더 들어와 내 얼굴과 머리에도 앉았다. 아름다운 관경에 감상에 젖어있는 찰나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정유화! 유화야! ''
나는 반가움에 몸을 창밖으로 힘껏 꺼내 나를 다급히 부르는 연준이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연준이와 눈이 마주치자 베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연준이는 꽤나 많은 눈을 맞으며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이 너무나 잘보였다. 그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조금 미안해진 찰나에 그는 내 인사를 보자마자 내게 손짓을 했다. 그건 내 인사를 받아주는 손짓도, 내게 인사를 하는 손짓도 아니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누가봐도 다급한 손짓이었다.
'' 빨리 내려와 유화야! ''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창밖을 휙휙 돌아보았다. 혹시 주변에 어른들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였다. 연준이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밖엔 연준이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자리하지 않았다.
'' 잠깐만 기다려! ''
나는 소곤소곤 소리치고 곧바로 옷장으로 달려갔다. 옷장엔 언니가 말해준대로 따뜻한 외투와 장갑, 목도리, 신발등이 있었고 나는 빠르게 옷을 껴입었다.
그리고 천천히 살금살금 연준이가 있는 밑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복도에 지나가는 어른들이 나를 볼까 조마조마했다.
혼자서는 처음인데 혹여 누군가를 만난다면 해야할 어떤 변명을 해야할지 걱정이었다. 이런 저런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흰 눈이 내리는 밖이었다.

00
그렇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죽었다.
나는 연준이의 품에 곧바로 폭 안겼다. 살짝 포옹을 한 다음 연준이의 얼굴을 보고 싶어 그의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천천히 풀었다. 그러나 연준이는 내 손을 잡고 나를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나는 다시 연준이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되었고 연준이는 그런 나를 꽉 안아주며 토닥여주었다.
'' 무슨 일이야? ''
내 물음에 연준이는 한참 머뭇거렸다. 그저 울음을 꾹 참는 듯 흐느끼며 나를 꽉 안아주었다. 울고있는 그가 위로받아야할거 같았지만 오히려 그는 나를 위로해주는 듯 했다.
'' 무슨일인데 연준아, 응? ''
" 어떻게 태연할 수가 있어? " " 왜? 도대체 무슨 일인데? "
'' 형한테 들었어. 줄리엣 누나가 죽었다는 걸 ''
'' 뭐...? 무슨 소리야?? ''
내 말에 연준이는 크게 충격을 받은 표정을 했다. 나는 오해가 점점 커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숨을 천천히 고르기 시작했고 내 숨소리에 맞추어 연준이의 숨소리도 차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 언니는 죽지 않았어. 딱 48시간 동안만 잠드는 물약을 먹었는걸? 내가 봤어! 정말 죽은 것처럼 잠드는 물약이야! ''

" 무, 물약? "
" 응! 언니가 아는 사람 중에 연금술에 능한 사람이 있더라고 그 분에게 부탁했어. 안전은 걱정마, 이미 실험을 해봤거든. ''
나는 결국 짜릿한 전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방방 뛰며 신나는 얼굴로 연준이에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숨을 크게 한번 더 쉬고 설명을 이어갔다.
'' 그는 완전 대단한 연금술사였어! 그걸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니! 완전 괴짜인줄 알았는데 그는 천재야 세기의 천재라고! "
내 말에 연준이는 벙찐 표정으로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어버버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 어... 엇 아니... 읏... 그게...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뭐...무, 무슨.... ''
나는 심호흡을 깊게 했다. 아무래도 내가 흥분한 듯하여 너무 많은 정보를 한번에 연준이에게 말해준 것같았다.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 로미오 오빠한테 서신을 보냈어! ''
'' ...정확해? " " 어? "
" 정말 정확하냐고 물었어. 너의 표정과 말을 들으면 너의 말처럼 누나는 죽은게 아니라 잠든 상태인데... ''
한층 진지한 표정으로 연준이는 내 팔을 부여잡고 물어보았다. 나를 붙잡은 그 손이 너무 꽉 쥐고있어 아팠지만 떨고있는 그의 손 때문에 그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응, 이 완벽한 계획을 내가 제일 처음으로 들었는걸?? ''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연준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의 손이 너무나 차가워 나는 연준이가 잡지 않은 손을 살포시 그의 손등 위에 얹었다.
" 나 못믿어? "
" 아니, 믿어. 넌 내가 의심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인걸? "

'' 형이 누나가 있는 곳으로 갔어. 우리도 빨리가자 ''
'' 어? 왜? ''
연준이는 머뭇거리다가 내 손을 더 힘을 주어 꼭 잡았다. 나는 그런 연준이의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러자 연준이는 내 볼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 내가 너 좋아하니까. 그래서 너랑 떨어지기 싫어 '' 나는 붉어진 볼을 부여잡으며 연준이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연준이는 새하얀 눈밭과는 어울리지 않은 불그스름한 양볼을 하고 내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 형이 줄리엣 누나와 함께 떠날 계획을 세웠어. 물론 난 형을 따라가지 않고 몬태규 가문의 일원으로써 가문에 남아 가문을 이어가는 방법도 있지. 하지만... ''
연준이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새끼 손가락부터 마디단위로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그의 손과 내 손이 완전히 포개질때 다시 말을 이어갔다.
'' 그러면 너를 다신 못보잖아. 몬태규와 캐플릿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가문을 버리기로 했어. "
너무 복잡한 고백이었지만 자신의 가문을 버리고 나를 선택한다는 그의 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나 역시 연준이와 헤어지기 싫고 언니가 떠나버린 캐플릿에 남고 싶지도 않았다.
" 나도 너 좋아해 연준아. 나도 언니랑 오빠처럼 너랑 결혼하고 싶어. 엄마 아빠같은 사이 말이야. "
연준이는 맞잡은 손을 더 움켜쥐고 언니가 잠들어있는 하르테르 성당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곧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처럼 깊은 잠에 빠져있던 언니가 깨어날 시간이 되었다.
...
거친숨을 몰아쉬며 성당에 도착했다. 불빛이 아직 성당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눈바람 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숨을 고른 연준이는 버거워하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 괜찮아? "
숨을 쉬고 있지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언제 어른들이 들어올지 몰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연준이는 그런 나에게 물을 건내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 힘이 들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자 숨은 빠르게 제 속도로 돌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언니가 깨어날 시간은 한참 지났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들려... "
" 누나가 아직 안일어났나? "
" 그럴리가 없어. 언니는 지금쯤이면 깨어있을거라고. 오빠가 아직 도착하지 못한게 아닐까? "
" 그럴리 없어. 형은 바로 누나한테로 달려간다고 했거든. "
" 그럼 우리를 두고 간건가? "
내 말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서로의 손을 꼭 맞잡았다. 함께 성당 문을 열었다.
" 언니랑... 오빤가? "
우리는 여전히 손을 마주잡고 안에 있는 두 사람의 형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빠르게 뛰어갔다.
" 언니, 언니! 우리 왔어! "
" 형!! 우리 빨리 가자!! "
언니와 로미오의 모습이 차츰 보일때 쯤. 우리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아주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그러다 반걸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 언니...? ''
제일 먼저 발견한건 로미오였다.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는 로미오는 언니가 누워있는 침대에 기대 잠들어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옮겨 언니에게로 향했다.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려 내 귓까지 울렸다. 시선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옮기자 그런 로미오를 껴안고 있던 피투성이인 내 언니 줄리엣이 보였다.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나는 기절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