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엑스트라는 셔틀을 사양한다
거처를 옮긴 지 딱 사흘째. 나는 인근 구청 대피소 구석탱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아주 이상적인 장소였다.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퀴퀴하며, 무엇보다 주인공 일행이 절대 오지 않을 법한 '비중 없는 곳'이었다. 대피소 관리원은 내게 얇은 담요 한 장과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생수 한 병을 던져주며 번호로 나를 불렀다. 바로 이거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완벽한 익명성.
하지만 평화는 30분도 가지 않았다.
## 1. 뜻밖의 재회

"야, 저기 최연준 아니야? 우리 학교 야구부 에이스!"
"옆에는 이여주잖아! 대박, 둘이 같이 살아남았나 봐."
나는 담요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설마. 아니겠지. 이 드넓은 서울 시내에서 굳이 이 좁아터진 구청 대피소로 주인공들이 찾아올 리가 없다. 하지만 불행은 언제나 엑스트라의 예상을 앞서간다.
"야, 모모아! 너 여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
최연준의 목소리였다. 담요 속에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떤 입방정 가벼운 놈이 나를 제보했단 말인가.
"모아야, 우리 다 봤어! 아까 편의점에서 너 날아다니는 거."
이여주까지 가세하자 나는 결국 담요를 걷어차며 일어났다.
"아, 진짜... 사람 잘못 봤다니까. 난 그냥 잠만 자러 온 거야."

"잠은 무슨. 너 아까 그 오우거 발목 분쇄하는 거 내가 똑똑히 봤어. 너 뭐야? 너 혹시 우리 몰래 각성했냐? 우리 학교에 이런 인재가 있었어?"
최연준이 내 어깨를 덥석 잡았다. 3학년 내내 말 한마디 안 섞어본 놈이 갑자기 절친이라도 된 양 구는 게 소름 돋았다.
### 2. 설정에도 없던 돌발 이벤트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대피소 천장의 전등이 깜빡거리더니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경고: 대피소 내부에 하급 악마 '쉐도우 스토커'가 침입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천장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대피소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여주, 내 뒤로 숨어!"
최연준이 야구방망이를 고쳐 잡으며 전방으로 나섰다. 평소라면 "오, 주인공 열일하네" 하고 구경했겠지만, 지금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 대피소는 지하라 너무 어둡다. 최연준의 마력은 빛 속성이라 어둠 속에서는 효율이 반토막 난다.
"저 멍청이, 그냥 휘두르면 어떡해!"
최연준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그림자 괴물들은 연기처럼 흩어졌다가 그의 등 뒤에서 다시 뭉쳤다.
"연준아, 뒤!"
이여주의 비명. 최연준의 당황한 눈동자. 나는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딱 한 번만이다. 진짜 이번 한 번만 도와주고 난 탈주할 거다.
나는 소화기 안전핀을 뽑고 그림자 괴물의 안면(으로 추정되는 곳)에 분말을 직사했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분말 가루는 물리적인 타격감은 없지만, 입자가 그림자의 결합을 방해한다. 괴물이 주춤하는 사이, 나는 최연준의 엉덩이를 발로 깠다.

"야! 최연준! 멍하니 있지 말고 천장에 비상 조명등 터뜨려! 빛이 필요하다고!"
"어? 어! 알았어!"
최연준이 내 지시에 따라 조명등을 향해 마력을 쏘았다. 펑! 소리와 함께 비상 발전기가 돌아가며 조명이 켜졌다. 빛이 쏟아지자 그림자 괴물들은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다.
## 3. 강제 퀘스트 수락
"야, 너 대박이다... 어떻게 소화기를 쓸 생각을 했냐?"
"그냥 상식이지... 너희는 공부 안 하냐?"
"야, 모아. 너 우리랑 같이 가자. 솔직히 나랑 여주만으로는 위험할 것 같아. 네가 있어야 해. 우리 같은 학년끼리 의리가 있지!"
그때, 내 눈앞에 불길한 반투명 창이 떠올랐다.
[메인 시나리오 강제 합류]
조건: 주인공 최연준의 신뢰도 100% 달성.
퀘스트: 최연준 일행과 함께 '강남 던전' 입구까지 동행하기.
보상: 생존 확률 +5%, 유통기한 없는 삼각김밥 세트.
거부 시: 작가의 '개연성 수정'으로 인한 의문의 추락사 발생 가능.
"...장난해?"
유통기한 없는 삼각김밥은 좀 끌리지만, '의문의 추락사'라니. 이건 협박이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야, 최연준. 딱 강남 던전 입구까지만이다. 그 이상은 나 절대 안 해."

"오케이!"
"야, 이여주. 너 발목 삔 거나 잘 챙겨. 민폐 끼치지 말고."
"어, 어? 아, 응! 고마워!"
그렇게 나는, 이 미친 소설의 '조연'으로 강제 승격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주인공들의 '전술 셔틀'이라는 포지션으로.
내 평화로운 엑스트라 인생이 진짜로 꼬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