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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조의 호수, 부장

*RPS, 연숩 주의










































전하께서도, 이제는 짝을 찾으셔야지요. 황후의 걱정이 다니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래서 뭐 어쩐다는 거야. 다니엘은 입에 맴도는 말을 꾹 삼키고 제 머리칼을 가볍게 쓸었다. 금발이 제 주인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도 원하신다면, 찾겠습니다. 제 운명을요. 다니엘이 황후궁을 벗어나는 소리와 함께 남색 제복에 달린 술이 흩날렸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SWAN LAKE

W. BuJang







다니엘이 한숨을 푹 쉬었다. 망했다. 그것도 엄청. 그럴 만도 한 것이 운명의 짝 어쩌고를 찾기 위한다며 밖으로 나가놓곤 손에 들린 건 활과 화살뿐이었다. 다니엘은 존경이나 청혼 같은 것 받기 싫으니까, 다음에는 노비로 태어나도 행복할 것 같았다. 다니엘이 검은 구두의 앞굽을 땅에다 비볐다. 마구 비벼댔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버려 온실에만 갇혀 사는 인생은 다 부질없다고 느껴진 그였다. 그때였다. 푸드덕, 다급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에는 별다른 생명체가 없었다. 어라, 분명 뭐가 있던 것 같았는데. 

“아, 깜짝야.” 

“······누구냐?” 

“그쪽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놀랐잖아요. 책임지세요. 그리고 왜 처음 봤으면서 말 놓으세요? 저 그런 거 안 좋아해요. 아, 누구냐고 하셨죠? 저는 라드몬트 공국의··· 헐, 혹시 제국의 첫 번째 별이세요? 세상에. 어떡해······. 저는 제국의 별이신 줄 몰랐어요. 용서해 주세요. 다시 인사드릴 테니 아까 일은 용서해 주세요. 꼭요. 제국의 첫 번째 별을 뵙습니다. 저는 라드몬트 공국의 제2 왕자 션 라드몬트라고 합니다.” 

갑자기 격식을 차린 말투에 다니엘이 자연스럽지 못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제국의 별이 아니면 어쩌려고.” 

다니엘의 말에 션이 당황했다. 

“어, 그러게요? 그렇게 되면 저 황족 모독죄로 잡혀가는 거 아니에요? 헐, 어떡해요. 저 사실 제국으로 잡혀 온 신세인데. 제 앞에 나타나 주셔서 감사해요.” 

갑자기 다니엘의 두 손을 꼬옥 잡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션이었다. 다니엘이 다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너는 어쩌다 이 호수까지 오게 된 거지?” 

다니엘의 질문을 들은 션이 잠시 멈칫했다. 

“아··· 실은 마왕에게 잡혀갔었어요. 제가 뭔 잘못을 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마왕이 얼렁뚱땅 저를 백조로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밤에만 사람이 될 수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돼버렸네요.” 

션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동안 다니엘의 심장은 고삐가 풀려 미쳐 날뛰는 말처럼 마구 뛰어댔다.


*


근데요. 전하께서는 왜 이런 외딴 곳에 나와 계세요? 산적이라도 만나시면 어쩌려고. 션이 물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혼인을 해야 한다며 얼레벌레 뛰쳐나왔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에 션도 살풋 웃었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설령 이게 사람이라 해도 믿지 못할 만큼. 한참 어두워진 하늘에 션이 입을 떡 벌렸다. 

“와아. 하늘 예쁘네요. 근데요, 이제 곧 돌아가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황족 사람들이 내가 좀 없어졌다고 미치고 날뛸 사람들 같아?” 

네. 정말 그럴 것 같은데요. 션이 오물거렸다. 황태자가 없어졌다 하면 대륙 전체를 뒤져서라도 찾으실 분들 같아요. 그런 황족들의 모습을 상상하기까지 한 션은 거의 울 것 같았다. 저 지하 감옥 가면 어떡해요. 

“죽을 일 없으니 걱정 말아. 아, 그런데 말이야.” 

“네?” 

동화는 항상 행복하게 끝난다던데, 너와의 사랑도 행복하게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다니엘이 션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난생 처음 들어본 이야기에 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니엘의 눈꼬리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아, 세레나데야. 세레나데. 마침 하늘도 캄캄하니 딱이군. 집 앞은 아니더라도 그대의 얼굴이 붉어질 수만 있다면야 언제든 불러드리도록 하지. 황태자도 이래야 살 맛이 나지. 안 그런가? 다니엘의 세레나데에 션이 멋쩍게 웃었다. 네에. 그렇겠네요. 정말 그렇겠어요. 

“내일 저녁, 황궁의 본궁에서 무도회가 열려. 혹 와줄 생각이 있는가?” 

“······네. 당연하죠. 황족 모독죄로 끌려가서 처형당할 뻔한 저를 구해주신 게 누구신데요!” 

션의 눈이 반짝거렸다. 무도회면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황태자가 무도회에 초청했다. 무엇보다, 무도회에 가면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을 수 있다! 설레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션을 뒤로 하고 다니엘은 웃었다. 드디어 내가 간섭을 벗어날 수 있겠구나. 비록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청혼할 수도 있겠구나. 다니엘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무도회 날이 다가왔다.
황궁으로 돌아온 다니엘은 오랜만에 번쩍이는 제복을 선택했다. 금색 술이 달린 흰 제복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션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아주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한 다니엘이 멍청이처럼 마구 웃어댔다. 그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션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 마침내 괜찮은 옷을 찾아냈다. 라드몬트 공국의 예복은 션에게 딱이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들이 나를 기다린다. 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제국의 첫 번째 별을 뵙습니다.” 

“···응. 그래.” 

다니엘은 초조한 기분을 느꼈다. 션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울상이 된 표정을 겨우 다잡은 다니엘이 제복을 두어 번 다듬었다.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그의 생각과 함께 누군가가 다니엘에게로 다가왔다. 드디어 션이 온 것인가? 다니엘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제국의 첫 번째 별을 뵙습니다.” 

아, 션. 드디어 왔구나. 다니엘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올 줄 알았어. 다니엘의 모습에 그도 웃었다. 그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 황후가 다니엘을 찾아 오자 다니엘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푸흡. 다니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푸흡, 푸학. 푸하하하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웃는 그에 다니엘은 그때에서야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전하께서는 완벽하실 줄 알았는데 부족한 게 있네요. 아니, 많네요. 참 웃겨요. 아, 제가 걥니다. 마왕.” 

션, 아니 마왕이 깔깔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다니엘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때마침 션이 얼굴을 비추는 듯하더니 다니엘의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아. 젠장할. 다니엘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다니엘의 외침이 연회장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