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결말

02. 너지? 그 음료수.

풀림 씀.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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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쪽이야 말로 누구신데요.”












“...아, 박지민이 아니구나?”













“박지민...? 누군지는 몰라도 사과나 하시죠.”











“아, 하하. 죄송합니다. 친구랑 헷갈려서 그랬네요.”

















 본인도 당황했는지 동공이 심히 흔들리는 휘인이었다. 그녀의 앞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의 남성이 서있었다. 한 쪽 눈썹만 올라가 불편함을 드러냈다. 하아,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고서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뗀 남성이었다만, 그녀의 이름을 세상 떠내려 가라 부르는 지민의 목소리에 눌린 남성이었다. 답이 없다는 듯 마냥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진짜 진짜 죄송합니다! 제 친구랑 비슷한 옷을 입고 계셔서 착각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무표정이라 더 무서워 보이는 남성의 기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던 휘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지민이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음료로 흥건히 젖은 남성의 옷을 보고도 어쩌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가슴 한 켠에 두고도 무서움이 더 컸는 것 같다. 남성에게 연거푸 사과를 하며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그리곤 귀신의 집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자신을 기다리는 셋에게 뛰어간 휘인이었다. 기 길에 혼자 남겨진 남성은 허, 어이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헛웃음을 흘렀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가 간 곳의 반대편으로 쭉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의 음료로 젖은 옷을 힐끔 쳐다 보았다. 밀리진 않았지만, 음료를 마시고 있었던지라 놀라긴 놀랐는 것 같다. 















“아이씨… 집에 들어가야 겠네. 야, ”















 그렇게 집으로 향한 남성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뛰어가 그들 속으로 들어간 휘인. 둘이 휘인을 반기며 등짝을 한 대씩 때린다. 도대체 어디있었길래 이제야 오냐며.


















“야, 정휘인! 너 왜 이제 나오냐?”







“나 화장실 갔다가 왔는데 너네가 없었잖아.”







“톡 보내놨는데 확인 안 했어?”








“아...?”










 휴대폰을 꺼내 알람을 확인하는 휘인과 메세지 확인 안 했냐는 별. 휘인이 화면을 스크롤해 알람을 확인하더니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알람창에는 오직 앱의 광고나 게임 이벤트 알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속사포 랩을 뱉으며 별과 지민에게 따지는 휘인에 둘은 머쩍이 웃고 넘기려 했다.




















“아오, 이것들이 진짜 죽고 싶냐? 어? 내가 몇 분 동안이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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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미안 미안. 그대신 음료수라도 하나 사줄게. 얼른 가자.”












“이씨.”


















 음료수를 사주겠다는 지민의 말에 조금은 화가 풀렸는지 순순히 따라가는 휘인이었다. 별은 지민에게 잘했다며 자연스레 휘인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선 앞으로 나아갔다. 곧 휘인의 얼굴에도 웃음이 폈다. 그래도 가슴 한 켠엔 찝찝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을 것 같다. 편히 웃지는 못하는 휘인이었지만, 그를 알아채지 못한 둘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다 지민이 살짝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휘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근데 너 아까 무슨 일 있었냐? 옆에 그 사람이랑. 처음보는 사람이던데.”










“...그게 아니라, 옷도 그렇고 전체적인 체구가 박지민, 너랑 비슷해서 너인 줄 알고 밀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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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야,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아니, 닥치고 들어봐, 좀.”










“…”










 휘인의 한 마디에 바로 기가 죽은 별을 본 지민이 혼자 조용히 끅끅대며 웃었다. 그의 옆에 있던 별이 지민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서야 지민의 웃음이 멈추었다. 휘인은 아까 하던 말을 이어 계속 붙여 나갔다.











“아무튼 그래서 그분 여름여름 음료 마시다가 옷에 푸악... 해버렸어... 너무 뻘쭘해가지고 죄송합니다, 말하고 튀었는데 하, 지금 심정으로는 집까지 찾아가서라도 옷 빨아주고 싶다. 너무 후회된다, 정말. 나 왜 그랬지. 미쳐버리겠다...”
















“에휴..., 어쩐다냐. 죄송하긴 하지만, 다신 못 볼 사람이다.”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그건 지민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별의 말에 그저 어깨를 들썩 올렸다 내렸다. 그에 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민을 응시했다. 별의 눈빛이 지민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둘은 말싸움을 시작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며 발끈한 지민과 그러는 너는 좋게 말한 것인지 나쁘게 말한 것인지 하나만 하라는 별. 그렇게 별과 지민이 티카티카하는 동안 휘인은 홀로 찝찝한 마음에 억눌려 있었다. 아까 그 남자의 옷을 어떻게라도 했어야 했다는 후회로 가득한 휘인의 속이었다. 둘은 웃고 있지만, 혼자 진지한 표정으로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휘인이 걱정된 별이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래도 휘인의 잘못이니 뭐라고 쉴드 쳐줄 수도 없는 이 뭐 같은 상황에 조금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잠시동안의 정적이 흐르던 셋의 공간에 지민의 목소리가 치고 나왔다. 










“미안한 마음이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와서 되돌릴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혹시라도 그럴 일 없겠지만 다시 볼 때 사과 한 번 더 하자.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걸으려 떨어져 나왔으니까.”










 이미 그 남성은 휘인에게서 멀리 떨어진지 오래, 지민의 말이 맞는 말이었다. 휘인이 작게 끄덕였다. 그 이후, 다시 한 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정적만이 그들의 곁은 맴돌았다. 나란히 어깨를 맞추고 걸어가는 셋. 지이잉- 누군가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벨소리가 진동이 아니라는 지민,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는 휘인과 별이었다. 휘인은 자신이 아니라는 표시로 휴대폰을 다시 넣었다. 별을 제외한 둘의 시선이 일제히 별에게 쏠렸다. 별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한 후에 살짝 떨어져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응. 알겠어. 들어갈게, 빠르면 5분 정도 걸릴 거야.”










 별이 통화를 끝내자 지민이 물었다. 











“누구야?”






“엄마. 친척분들 오셨다고 빨리 들어오래.”






“헐, 그래? 그럼 우리 다 들어가자. 어차피 이제 할 것도 없는데.”







“그래, 나 빨리 뛰어 가볼게!”










응, 잘가! 둘이 별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별은 어느새 희미해진 모습으로 그들의 눈동자에 비춰졌다. 









“야, 작짐. 잘 가. 학교에서 보자. 곧 개학이다, 인마.”







“벌써 개학이냐..., 하이고.”








한숨을 뱉으며 개학이 싫다며 앙탈부리는 지민에 휘인이 자신이 교육부도 아닌데 뭐 어쩌라는 거냐며 앙탈을 자른다. 개학까지 이틀 남았다며 현실을 주입해주는 휘인에 지민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잘 가라, 정휜.”







“엉야, 너도. 이틀 뒤에 보자.”










 인사를 끝으로 둘, 아니 셋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또 더 좁아졌다. 언제나 여러 대상의 거리는 조종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멀어지거나 좁아지겠지만, 그러한 대상들의 마음은 서로를 꽉 붙들고 있을 것이다. 자로 절대 잴 수 없는 그런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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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빛의 속도로 주말이 지나가고 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지독한 월요일이 찾아왔다. 월요일이자 개학일인 오늘, 휘인의 휴대폰에서 요란하게 알람음이 울렸다. 우음…, 잠이 덜 깼다는 것을 알리는 휘인의 갈라진 목소리가 방을 메웠고 휘인은 알람을 끄고서 다시 풀썩, 침대 위에 누웠다. 다시 잠드는가 싶더니 일어나 두 팔을 머리 위로 쭈욱 올려 기지개를 켰다. 부비적부비적- 눈을 비비다가 세게 감았다 떴다. 지민, 별과 함께 있을 때의 눈 크기의 약 0.75배 크기의 눈을 겨우 뜬 채로 방문을 열고 씻는 휘인이었다. 야무지게 헤어밴드를 머리에 쓰고 세수를 시작했다. 그때, 휘인의 방에서 지이잉 진동이 울려댔다. 물론, 화장실에 있던 휘인은 알아채지 못했다. 후딱 머리를 감고 나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던 휘인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 문별한테 전화 왔었네. 같이 가자고 전화했나.”









 전화 앱을 끄니 메세지 창에 남아있는 별의 말.









-야야야
-전화 안 받냐?
-에휴
-또 늦잠이냐
-아 작작 쳐자
-안 봐?
-아놔 증말
-아 빨리 좀 보세요 아줌마
-저기요?
-아 몰라
-오늘 개학이야 인마
-너 안 나오면 지각이야
-첫날부터 벌 설 건 아니잖아?
-이 아줌마가 정말
-아 됐고 10분만 더 기다리다가 간다










 별이 보낸 메세지로 가득 차 있는 화면이었다. 마지막 문자를 보낸 시각은 8시 17분. 그리고 현재시각 8시 21분. 남은 시간은 단 6분이다. 옷도 입어야 하고, 아침도 챙기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다. 휘인은 부랴부랴 부엌으로 달려가 토스트기에 식빵을 하나 넣고선 다시 방으로 돌아와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웃옷을 다 입고, 치마를 거의 다 입어갈 찰나에 방 밖에서 띵- 토스트가 다 되었다는 소리가 울렸다. 침대 옆에 놓인 가방을 낚아챈 후, 등에 걸치며 나가 토스트를 입에 물고선 신발에 발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탁탁- 발끝을 새워 마지막으로 꼭 맞게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니 보이는 별. 









“오, 생각보단 일찍 나왔네. 가자, 개학식 늦기엔 좀 그렇잖아?”







“그렇긴 하지. 지금 25분이니까..., 뛰어야 겠는데?”










 별이 작게 끄덕이곤 엘레베이터 쪽으로 향한 둘이었다. 마침 바로 윗층에 있던지라 금방 탈 수 있었다. 띵- 엘레베이터는 어느새 1층에 다다랐고 둘은 앞으로 나아가며 점점 속도를 붙였다. 아파트 현관을 나가자 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지민이 불쑥 나와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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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흡, 놀랐지?”







“어휴, 깜짝아. 너도 같이 가려고 여기 있었냐?”








“응. 당연하지. 아님 왜 있겠어?”










“그럼 빨리 학교나 쳐가자.”










 휘인의 말을 끝으로 평소보다 좀 더 빨리 뛰는 셋이었다. 가장 앞으로 달리는 지민이 둘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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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와라, 달팽이들아!”










 헐떡거리며 해맑고 얄미운 표정으로 지민을 쫓는 둘이었다. 지민은 그런 그들을 위해 길에 멈춰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지민의 옆에 도착한 둘이었고, 조금 앞에 교문이 뚜렷하지만은 않게 보였다. 아까보다는 덜 빠르게 학교로 향하는 셋은 28분에 교문을 지나게 되었다. 30분이 되기 2분 전, 아슬하게 지각을 면했다는 것이다. 셋은 곧바로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헐떡이며 3층까지 올라가 교실 안으로 들어간 셋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시곗바늘은 3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힘들었는지, 휘인은 책상 위에 엎드렸다. 나머지 둘은 오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SNS를 둘러보았다. 곧,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휴대폰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학교 내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끝나자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휘인, 별, 지민. 지민은 멍하니 그저 칠판만 응시할 뿐이었고, 별은 공책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휘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곤히 잠들었다. 쉬는 시간만 애타게 기다리는 셋에게는 수업 동안에 시간이 그렇게 달리지를 못하더라. 별의 공책의 한 페이지가 낙서로 가득 찰 때쯤에야 종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쭈욱- 수업에 집중이라곤 전혀 안 한 지민과 별이 기지개를 폈다. 곧바로 휘인의 자리로 달려가 자는 것을 확인하고는 푸욱 한숨을 쉬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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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잠만보. 또 자냐? 야, 일어나! 매점 가자.”























우음- 눈을 비비며 팔을 뒤로 뻗어 쭉 늘려준 휘인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그제서야 쉬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휘인의 자리 앞에 서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지민과 별. 휘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로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 교실 밖으로 나가는 별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셋이 복도 위를 걸었다. 그 도중, 고개를 들고 걷던 휘인이 무언가를 보자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남학생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너지? 그 음료수.”









 특유의 중저음이 휘인을 멈추게 했다. 확신에 찬 듯한 말투에 휘인이 뒤로 돌았다. 아하하, 멋쩍은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는 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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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하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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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도망칠 생각하지 말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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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작에 찬물 끼얹기.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