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사 : 아가씨를 부탁해!

5화

[5]

간밤에 꿈을 꿨다. 내가 여느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고 집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꿈 말이다. 점심시간에는 밥도 같이 먹고 쉬는 시간에는 장난도 치고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기도 하는 아주 달콤한 꿈이었다.

"일어나."

에이. 쉬는 시간이잖아. 좀 자자.

"일어나야지."

칭얼거리며 잠에서 덜 깬채로 몸을 일으켰다. 또렷하지 않은 시야를 두 눈으로 부비적 거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지. 이 잠꾸러기 아가씨야."

"명수오빠?"

눈 앞에는 새하얗고 잘생긴 명수오빠의 얼굴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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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일이야?"

대충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오면서 거실의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앉아있던 명수오빠를 향해 물음을 던지자 명수오빠가 나를 돌아본다.

"내 동생 보러 내가 오겠다는데 그걸 꼭 말하고 와야하나?"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오빠가 오는 걸 알았다면 준비하고 기다렸을 텐데."

"오빠 동생 사이에 준비할 게 뭐가 있어? 우리 공주님만 집에 얌전히 있으면 되지."

명수오빠의 곁에 나란히 앉자 때마침 거실로 내가 마실 차를 내오던 정국이가 다정한 명수의 모습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며 내 앞으로 차를 내려놓는다.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녹차로 준비했습니다."

"고마워. 정국아."

정국이는 내게 대답대신 미소로 답했다.

"우리 여주 몸도 차가운 편인데 녹차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화기애애한 정국이와 내 모습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지켜보던 명수가 정국이에게 태클을 걸었다.

"평소에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게 하는 차를 꾸준히 드리고 있으니 한 번 쯤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녹차를 드리고 싶어서 준비해봤습니다."

"그래서 약효가 나겠어?"

명수와 정국 사이에 신경전이 일어나고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된 나는 녹차를 식혀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입에 가져다댔다.

"앗 뜨거!"

"아가씨, 괜찮으세요? 뜨거운 차를 그렇게 바로 드시면 어떻게 해요?"

정국이가 곧장 거실에 있던 물 주전자에 차가운 물을 따라 나에게 건넨다. 나를 바라보는 정국이의 눈길에서 걱정스러움이 묻어난다.

"이제 좀 살겠네."

"정말 괜찮은 거야? 병원 안 가봐도 돼?"

명수오빠는 당장이라도 병원에 데려갈 기세였지만 나는 별 것 아니라며 명수오빠를 달랬다. 명수오빠는 여전히 내가 걱정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 오빠지만 정말 동생바보라니까. 물론 내 친오빠는 아니지만 말이야.

"아가씨, 도련님.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식사 하러오세요."

"밥 먹으러 가자."

"응!"

석진이 식사 준비를 마쳤다는 말에 명수오빠는 나를 식탁으로 데려 간다. 집사들과 오빠까지 함께하는 식사시간은 드문 일이다. 원래 명수오빠와 내가 식사를 다 마친 뒤에 집사들이 식사를 하는 게 규칙이나 오늘은 명수오빠의 특별지시로 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크게만 느껴졌던 테이블이 오늘은 가득 차 보인다. 태형이나 지민이는 별 달리 의식하는 것 없이 밥을 잘 먹지만 나머지 집사들은 같이 밥을 먹는 게 영 불편한가보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확인을 하기 위해서이다."

"뭘 확인하신다는 겁니까?"

남준의 물음에 명수가 들고 있던 식기를 놓고 와인잔을 들어 와인잔을 살짝 흔들며 말을 이어간다.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 올바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려고."

"환경이요? 환경이라고 하셔도 이 집뿐인데."

지민의 얼떨떨한 반응에 명수가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민을 마주본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명수의 눈동자에 지민은 움찔하고 만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 집안에서의 환경. 그 환경이 유해하지 않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 이곳에서 일박 이일을 함께 보낼 생각이다. 이곳의 아주 일상적인 분위기로 말이야."

"도련님이 같이요?"

정국은 명수의 일박 이일이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남자가 또 하나 느는 건가."

윤기는 정국과는 다른 이유에서 불만이 많아보였다.

"도련님도 오셨으니까 역시 도련님이 좋아하시는 포도주 파티를 하는게 어떠신가요?"

"포도주. 그래. 이 포도주!"

포도주라는 단어에 명수오빠는 지난 사건을 떠올렸는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윤기를 바라본다. 우리 윤기가 명수오빠에게는 꽤나 큰 충격을 안겨준 모양이었다.

"저는 좋은데."

윤기는 단순히 포도주가 좋아서 한 답이었는데 명수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 명수도련님께서 아가씨의 일상을 체험해보실 수 있도록 평소처럼 도련님과 아가씨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석진의 확실한 대답에 명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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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머리 손질을 하실 시간입니다."

식사 후 달콤한 디저트 타임을 가지고 있는 내 뒤에서 태형이와 정국이가 내 긴 머리카락을 반으로 나눠 잡아 가느다란 빗으로 내 머리카락을 빗어내리기 시작한다.

"아가씨, 린스하셨어요?"

"까먹었어."

"자꾸 빼먹으시면 안 되요. 머리가 상한단 말이에요."

"내일은 제가 머리를 감겨드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내가 해도 되는데. 누가 감겨주는 거 뭔가 불편하다는 말이야."

정국이가 머리를 감겨준다니 아무리 집사라고 하더라도 머리가 젖은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정국이는 불편하다는 말이 상처로 닿았는지 기가 죽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아가씨는 제가 불편하세요?"

"아니. 물에 머리에 젖으면 추해보이고 정국이한테 추한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내가 개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편하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하자 정국이는 그제야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계속해서 정성스럽게 머리를 빗어준다.

"아가씨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셔도 제게는 아름다워보이세요."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정국이의 자상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렇지만 역시 머리를 감는 건 내가 하는 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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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와 정국이의 다정한 대화를 못마땅한 얼굴로 듣고 있던 명수의 머리카락에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다. 명수는 반사적으로 화들짝 놀라며 손들의 주인을 돌아본다. 명수의 눈 앞에는 윤기와 지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다.

"뭐 하는 거야?"

"도련님께서 오늘 하루 아가씨의 일상을 체험해보기로 하셨잖아요. 머리를 빗겨드리려는 거죠."

"얌전히 계세요. 도련님. 머리 감겨드리기 전에."

친절한 집사들의 말과는 달리 지민과 윤기의 거친 손길에 의해 명수의 머리는 점점 오대오의 아저씨 머리로 형태를 바꾸고 있다.

"다 됐습니다."

"도련님, 오리지널하고 클래식한 머리스타일로 준비해봤습니다."

명수가 거울을 보는 순간 폭발할 거라고 생각했던 집사들의 예상과 달리 명수는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이 스타일도 괜찮네."

그렇다. 확실히 김명수는 잘생김 배면 시체인 남자였다. 뭘 한 들 안 어울리겠느냐. 윤기와 지민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아가씨, 양치질 하셔야죠."

"아. 맞다. 잊을 뻔했네."

지민이는 나에게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준다. 나는 칫솔을 입안에 넣고 지민이와 태형이를 마주봤다.

"너희는 이 안 따까? (너희는 이 안 닦아?)"

"저희도 닦아야죠."

나는 집사들과 함께 양치를 해왔던 터라 지민이와 태형이도 익숙하게 입에 칫솔을 물고 양치를 시작한다.

"아가씨, 제가 저의 터프함을 보여드릴게요."

내가 지민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지민이가 이가 날아갈 것 같이 세게 이를 닦기 시작한다.

"아가씨, 제가 더 터프해요! 보세요!"

지민이에게 밀리기 싫었던 태형이는 지민보다 더 힘을 주어서 이를 닦기 시작했고 칫솔이 엇나가는 바람에 칫솔이 잇몸을 가격하고 말았다. 태형은 비명도 내어지르지 못했고 태형의 입가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을 끌썽이는 태형이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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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국도 명수에게 치약이 묻은 칫솔을 건넸다. 명수는 물끄러미 정국이 내민 칫솔을 바라보고 있다.

"이쪽 저쪽 깨끗하게 이를 닦으시면 됩니다. 도련님."

"내가 설마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오늘은 아가씨의 일상 생활을 체험해 보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련님."

정국이 세상 맑은 미소를 지으며 명수를 대하자 명수가 한숨을 내쉬며 칫솔질을 하기 시작한다.

"윗쪽도 깨끗히 닦으십시오."

"

"아래쪽도요."

"알아. 나도 안다고!"

어쩐지 명수가 정국이에게 당하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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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족욕해드릴게요."

"족욕? 나 발 괜찮은데."

윤기가 미지근한 물을 떠와 내 앞에 두고 나에게 발을 달라며 손을 내민다. 내가 괜찮다고 말해도 윤기는 내 발목을 잡아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근다.

"아가씨는 뭐든 조심해야해요. 언제 아플지 모르는 여린 존재이니까 항상 소중하게요."

"고마워. 윤기야. 하지만 난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야."

"상대가 아가씨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이는 윤기의 모습이 오늘따라 멋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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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형도 명수의 족욕을 위해 물을 대령했다.

"도련님 족욕하시죠."

"뭔욕?"

"족욕이요."

명수가 못 미더운 얼굴로 태형에게 발을 내어주긴 하는데 태형이 발을 조물딱거리는 걸 참지 못하고 자꾸만 바둥거린다.

"그만!"

"

"그만 하라니까?"

명수는 그만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국과 호석이 명수의 양 팔을 붙잡아 속박한다.

"오늘은 도련님께서 아가씨의 일상생활을 체험해보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와학학! 살려줘!"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요상한 표정의 명수의 애처로운 비명이 공간을 가득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