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사 : 아가씨를 부탁해!
시즌2 3화

타생지연
2021.10.01조회수 85
"아가.."
석진이도 자신의 말실수에 당황한 건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내 머리 위에 자신의 손을 턱하니 얹는다.
"아가야."
아가야? 내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석진이를 올려다보자 석진이는 내 책상 위에 수학교과서와 공책을 가지런히 펴주고 몸을 낮춰 내 책상에 두 팔을 올린 채 나를 다정한 눈으로 마주본다.
"수학 재미 없어도 졸지 말고 들어야 돼. 알았어요?"
"응."
석진이를 향해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자 석진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아가야래. 아가야."
"아니. 쟤네 단체로 뭐야 대체?"
반 아이들은 다행히 아가씨와 집사들의 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석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옆자리의 남준이 석진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석진은 남준의 손에 하이파이브로 답한다.
"아주 능글맞게 잘 넘기던데. 좀 느끼하긴 했어도. 으아. 닭살."
지민이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떤다. 태형이는 석진이를 놀릴 참인지 석진을 향해 윙크를 날린다.
"아가야. 수학 시간에 졸면 안 돼용?"
"야. 김태형. 죽을래?"
석진이 태형에게 응징을 하려는 순간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수학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온다. 태형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거참. 인사성 좋은 놈이 왔네."
젊어보이는 수학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태형에게 시선을 돌렸고 석진은 결국 태형에게 달려드는 것을 포기하고 이를 갈며 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하여간 김태형. 내가 석진을 괴롭히는 태형이를 말리려는 의도로 태형이 쪽을 돌아보자 태형이는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하트를 그려보인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태형이에게 웃음으로 답한 뒤 다시 앞을 보고 앉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김태형은 못 말리는 녀석이었다.
"오늘 이 반에 전학생이 많이 왔다고 들었는데 우리 전학생들 실력 좀 볼까?"
수학선생님은 칠판에 문제를 쓰고 나와 집사들이 앉아있는 쪽을 유심히 본다. 안 돼. 나 걸리면 안 돼. 설명을 듣긴 했지만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이야. 내가 최대한 선생님의 눈을 피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나를 콕 찝으셨다.
"김여주가 홍일점이니까 홍일점 기념으로 한 번 풀어봐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불안한 마음으로 칠판 앞에 섰다. 반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닿는 것이 느껴진다.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칠판 앞에 와서 칠판을 보고 있는데도 칠판이 보이지 않는다. 분필을 들긴 들었는데 숫자를 옮기는 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때 내 뒤로 다가온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준이가 분필을 쥔 내 손을 감싸 쥐어 칠판에 글을 써내려간다.
"어허. 너 이녀석."
선생님이 남준이에게 타박을 줬지만 남준이는 멈추지 않고 공식을 써내려갔다. 답까지 완벽하게 구해낸 남준이는 내 손을 놓아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뒤돌아섰다.
"어디를 그냥 들어가. 김남준. 다시 와."
선생님의 말씀에 남준이 순순히 수학선생님을 마주보고 선다.
"김여주. 넌 자리로 돌아가."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준을 봤지만 남준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수학 선생님은 딱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문제를 칠판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문제 칠판을 채웠을 때 선생님은 남준이에게 분필을 넘겼다.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른 학생 문제 뺏어풀 정도면 수학에 자신이 있다는 건데. 이것도 풀어봐."
선생님은 남준이 그 문제를 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집사들은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자신감에 찬 얼굴이었달까.
"남준이 어떡해. 문제 딱 봐도 어려워 보이는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어요."
뭐야? 다들 뭐가 이렇게 평온해! 남준이가 혼나게 생겼는데! 칠판에 분필이 부딪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남준이가 그 어려운 문제를 막힘없이 풀어내고 다시 분필을 선생님께 건네준다. 선생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문제집과 칠판에 쓰여있는 남준의 풀이과정과 답을 비교해보더니 그대로 몸이 굳은 듯이 뻣뻣하게 남준에게서 분필을 건네 받는다.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놀란 눈으로 남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부러 앞선 진도의 고난이도 문제를 냈는데. 선생님 조차 실수한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다니 함부로 건드리면 안되는 학생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수학 선생님이었다.
.
"우와. 남준이 멋있어."
쉬는 시간. 내가 집사들과 화단이 있는 쪽으로 걸어나오며 남준을 반짝 반짝 빛나는 눈으로 보자 남준이가 당연하다는 투로 말한다.
"아가씨의 집사인데 이 정도는 해야죠."
진짜 멋있어. 내가 남준이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며 졸졸 따라다니자 태형이가 토라진 얼굴로 남준을 본다.
"치. 나도 수학공부 할 거야."
"태형이는 뭔가."
내 입에서 태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태형이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마주본다.
"진짜 드라마에서 나오는 불량학생 같아."
"불량학생 같대."
"어쩐지 까불더라니."
태형이는 절망에 빠졌고 정국과 지민이는 태형이를 놀리기에 바빴다. 근데 윤기가 안 보이네.
"윤기!"
"네?"
"윤기가 없어!"
"윤기 형은 아무래도 아가씨 간식을 사러간 듯 해요."
정국이를 마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당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윤기가 빨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에 학교 건물에서 계단을 몇개 밟고 걸어내려오자 길게 뻗은 화단과 스탠드가 보인다. 나는 자연스럽게 화단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벽돌 부분에 올라섰고 살짝 눈을 감아내렸다.
'엄마. 엄마. 올거지?'
'여기서 기다리면 계속 엄마만 기다리면 나 데리러 와줄 거죠?'
매일 기다렸다. 학교에 오는 날이면 상처투성이인 채로 이 화단의 담벼락에 앉아서 멍하니 말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에 다시 울적해지려는데 누군가가 화단의 담벼락에 올라 있는 내 손을 조심스레 맞잡는다. 손의 주인은 정국이었다.
"아가씨, 그렇게 서 계시면 위험해요."
"그냥 좀 옛날 생각이나서. 예전에 늘 여기 담벼락 위를 걸어다니면서 놀았거든."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집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국이가 서있는 스탠드 위치에서 조금씩 거리를 두고 서기 시작했다. 집사들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데 정국이가 담벼락 위의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럼 같이 해볼까요? 아가씨가 즐겨하시던 놀이."
그래, 난 그 때처럼 혼자가 아니구나. 정국이의 눈을 맞추며 웃어보인 뒤 한발짝 한발짝 화단 담벼락을 정국이와 걸어나갔다. 따듯한 바람이 머릿결 사이를 흐트리며 지나간다.
"아가씨, 이번에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정국이가 석진이에게 내 손을 건네주고 나는 석진이와 손을 잡은 채로 담벼락을 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나간다.
``엄마 아빠도 없는 거지같은 년.``
머릿속에서 좋지 않은 기억들이 피어올랐다. 그때 나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가씨. 손!"
지민이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의 손은 석진의 손에서 지민의 손 위로 옮겨진다. 지민이는 나를 다정한 눈길로 봐주며 누구보다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수학, 필요하시면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민에게서 나의 손을 건내받은 남준이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춘다. 나는 그런 남준을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
"응. 나 바보라도 혼내면 안돼."
"아가씨를 혼내다니요. 이해가 되실때까지 친절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 남준아."
남준이는 내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호석이 차례죠."
호석이가 내 손을 건네받고 나를 향해 윙크를 날리며 눈웃음을 친다. 호석이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호석이는 내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는 웃는게 예뻐요."
"진짜?"
"네. 진짜요!"
"아가씨, 저 엄청 오래 기다렸어요."
호석이와 말장난을 치며 태형에게 도달하자 태형이 힘들다는 듯 울상을 지어보이다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는 태형의 손을 맞잡으며 화단의 담벼락을 걸어가고 어느새 내 뒤로 정국, 석진, 남준, 지민, 호석이가 뒤를 따르고 있다.
"아가씨는 모범생을 좋아하세요?"
"모범생? 그건 왜?"
태형의 질문에 내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태형을 보며 묻자 태형이 살짝 시선을 피한다.
"그냥 너무 까불고 그런거 싫어하시는 건 아닌가 하고."
혹시 마음에 담아둔 걸까. 불량스럽다고 말한 거. 내가 걸어가던걸 멈추고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태형을 보자 태형이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마주본다.
"난 태형이 그 자체가 좋아."
태형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태형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 채 내 손을 이끌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나간다.
"아가씨. 거기서 위험하게 뭐하고 계신거에요?"
윤기가 화단 담벼락의 끝부분을 향해 걸어내려오며 내 쪽을 보며 소리친다.
"태형아, 가자!"
태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태형이는 손을 맞잡은 채 빠른 걸음으로 윤기가 있는 쪽으로 나아간다. 손에 초코 우유를 든채로 나를 보고 있던 윤기가 초코우유를 앞서 걸어나오는 정국에게 던져주자 정국이 멋들어지게 한 손으로 받아낸다. 내가 태형이의 손을 잡고 윤기의 앞에 도달해 스탠드에 서있는 윤기를 쪼그려 앉아서 보고 있자 윤기가 나를 두 손으로 안아들어 자신의 앞에 내려놓는다. 자연스럽게 윤기를 올려다보자 윤기가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와줘서 고마워요. 아가씨."
윤기의 말에 잠깐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화단의 담벼락에 혼자 앉아있던 그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아가씨, 이제 집에 가셔야죠.``
혼자가 아니다.
홀로 화단의 담벼락에 앉아있는 어린 여주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앞에 일곱명의 집사들이 보인다. 집사들은 어린 여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