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허구입니다

/
겨울 햇볕에 윤슬이 비춰지는 일렁이는 파도, 그 모래사장을 쓸쓸히 혼자
걷는 여주가 보인다. 바닷가라 그런지 두꺼운 코트를 입었지만 추위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이 바다는 연준과 자주 오던 곳, 에메랄드빛 바다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둘만의 추억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여기는 변한 게 없네
내가 변한 게 있다면 연준이와 헤어졌다는 거. 코끝이 시큰거려 괜히
훌쩍이며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계속 울려대는 휴대전화는 이미
전원을 끈 지 오래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보고 있으면 즐거웠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겨울바다에 와서 옷도 챙겨 오지 않아 매서운 파도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추운 게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했던 때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점점
어두워지는 여주의 얼굴이다. 왜 계속 생각나는 건데.. 우린 완전히 끝났잖아
나 그만 괴롭혀 최연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껴 있던 커플링은
코트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금세 눈물이 맺혀 떨어지고 조용히 흐느껴 울었고
그 옆엔 텅 빈 맥주 3캔이 모래사장에 나뒹굴고 있었다
/
늦은 밤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여주. 타자마자 버스 안이 따듯해서
그런지 술기운이 오른 건지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든 여주였다. 한참 잘 자고 있다가 머리가 창가에 부딪혀서는
아픈 듯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시계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는
여주다.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헐 대박 나 지금까지 잔 거야?
미쳤나 봐라며 혼잣말을 했고 그러다 서울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 밖으로 나가자
아까 바다에 있을 때보다 추워서 몸을 움츠려 실내로 옮겼다. 발걸음을 멈춘
여주, 누군가 인사를 하며 제 앞을 막아섰다. 위를 올려다본 여주는 어딘가 낯이
익었지만 그게 누구인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여주를 보며 보조개가
드러나도록 해맑게 웃는 사람은 태현이었다
" 어? 오늘은 안 우네요?"
" 네? 누구.."
대뜸 오늘은 안 우냐며 물어보는 태현에 경계하는 얼굴로 누구냐고 말하는
여주에게 실망한 태현은 큰 눈이 처지며 시무룩해진다. 진짜 저 몰라요?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코앞까지 눈을 마주친 덕분에 갈 곳을 잃은
여주의 눈동자,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 며칠 전 비 오는 날 호텔 앞에서 울고 있었잖아요"
" 아 우산 주인! 우산 돌려드릴게요. 연락처 주세요"
우산 얘기에 단번에 알아차린 여주가 귀엽게 보였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한
발언에 놀라움도 잠시 제 휴대폰을 태현에게 내밀고 여주에게도 폰을
건네준다. 태현은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폰번호를 눌러 강태현 이라고
저장했다
" 나 강태현이에요"
" 제 이름 서여주예요. 우산에 이니셜이 있어서
꼭 돌려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너무 다행이다"
그때 수빈의 모습이 보이고 태현과 얘기하는 여주를 발견하며 아는 체한다
" 여주야!"
" 어 수빈아!"
" 뭐야 왜 이렇게 춥게 입었어. 그리고 누가 너 혼자 바다 갔다 오래 어?"
그러다가 누가 너 잡아가면 어쩌려고 왜 전화도 꺼 놔
밤늦은 시간에 오는 게 어디 있어 어?"
" 치, 잔소리! 우리 아빠보다 더 한다니까 최수빈"
걱정시킨 연인에게 잔소리하듯 코트를 여며 주며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여주의 허전한 목에 칭칭 감아 주며 미간을 좁히지만 수빈은 여주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 모습을 놓칠 일 없는 태현은 수빈이가
신경 쓰였다. 최수빈? 뭐야? 그사이 새 애인이라도 생긴 건가??
" 어 연락할게요. 안녕히 가세요"
" 네 연락 기다릴게요"
태현과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여주가 사라질 때까지 넋 놓고 쳐다보는 태현
그러다가 손에 짐이 한가득인 태현의 친구 유신은 어이없이 쳐다본다
" 야 강태현 형님이 강원도에서 왔는데 나 픽업하러 온 거 아니였냐?
ㅈㄴ 실망스럽네 이새끼"
" 어? 유신아 언제 왔어?"
" 한참 전에 왔다. 지가 오라고 해놓고 한눈팔기냐?"
" 아 미안미안 누구 좀 만나 가지고 반가워서"
" 네 눈깔을 봤다. 사랑에 빠진 눈깔, 누군데"
" 주인 잃은 강아지"
" 응?"
" 그런 게 있단다 친구야. 가자 술 마시러"
어리둥절한 유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태현이다. 유신은
의아했다. 저런 사랑에 빠진 눈빛을 한 적은 신주아 이후로 처음이다. 유신이
아는 태현은 첫사랑을 실패해서 여자에게 관심도 눈길도 주지 않고 졸업 이후
여기저기 방황하며 떠돌이 생활하다가 본가로 들어간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수빈과 여주. 수빈은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눈이 큰
남자는 누구였으며 왜 여주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지 신경 쓰였다
" 최숩 무슨 생각하냐? 야식 뭐 먹을지 생각하는 거야?"
" 아니 아까 너를 보며 웃던 남자, 내가 모르는 남자도 있나 싶어서"
" 아! 나한테 우산 씌워줬던 우산 주인인 거 있지! 진짜 신기했어
이런 게 우연인가? 우산 돌려주기로 했어"
여주 신났구나. 작은 한숨을 쉬며 여주를 데려다 준 수빈이다
" 여주야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꼭 얘기하기
오늘같이 연락 없이 혼자 가면 혼난다아?"
" 아이구 최수빈 때문에 혼자 어디도 못 가겠네
바다 보고 오니까 속이 다 뻥 뚫리더라
친구로서 네가 걱정하는 일 안 할게. 약속!"
씩씩하게 얘기했어도 눈동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친구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계속 옆에 있어 줄 수 있으니까 너를
지켜주기로 결심한 날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너의 응석도
너의 눈물도 너의 잘못도 다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가 평생 나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렇지만 그건 내 욕심이겠지. 범규의 말이 떠올랐다
집착이라.. 너를 원하고 있는 내가 한편으로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 앞에
웃고 있는 그녀를 보자 미친 듯이 심장은 뛰고 있다. 그녀는 날 살게 해준 사람
내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었으면 하는 서여주, 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래도 오랫동안 나 좀 봐 줘. 나는 널 보고 있어도 매일 보고 싶으니까
넌 내게 유일무이한 존재야. 네가 아니면 안 돼
그의 씁쓸한 혼자만의 독백이었다
ㅡ
🫶
